특집-저널리즘 혁신의 길 ⑧_미디어 스타트업의 실험_선배님이 쓴 기사는 누구의 삶을 어떻게 바꿨나요?_정인선 ‘디퍼’ 기자

“미디어 스타트업으로 사회는 못 바꾸지 않나요?” “미디어 스타트업이 미디어 생태계를 정말 흔들 수 있다고 생각해?”
지난해 3월 2030세대를 겨냥한 뉴스 미디어 스타트업 ‘디퍼’를 시작했습니다. 언제가 가장 뿌듯했는지 돌아보니 사소한 장면 하나가 떠오릅니다. 회사에 종속되지 않고 주도적으로 성장하기 위해 매일 새벽 일어나 공부하는 페이스북 그룹 ‘얼리 또라이’를 만든 한 30대 여성 개발자를 소개하는 기사를 발행한 다음날이었습니다. ‘얼리 또라이’ 그룹엔 디퍼의 기사를 읽고 가입했다는 사람들이 줄을 섰습니다.
특종은 아니지만 뿌듯했습니다. 독자들의 마음에 인 이 작은 변화가 모여서 그들의 일터에서, 가정에서, 기성세대가 만든 질서를 조금씩 흔들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기사에 등장하는 사람 말고, 기사를 읽은 사람 움직이기
제 경험만 갖고 미디어 스타트업이 무엇인지 한 마디로 정의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다만 몇 개월 동안 저희 팀과 다른 팀을 지켜보며 찾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미디어 스타트업은 기사에 등장하는 사람 혹은 사회 현상을 바꿀 수 있다고 자신하는 대신, 독자의 행동을 변화시키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고민하는 조직이라는 점입니다.

동영상 스타트업 매체인 ‘닷페이스’는 “#우리에겐_페미니스트_선생님이_필요하다”, “#가해자를_가해자로”와 같은 구호가 따라붙는 콘텐츠를 주로 제작합니다. 온라인 민주주의 플랫폼 ‘빠띠’와 협업해, 독자들이 자기 경험을 이야기하도록 유도합니다. 일말이초(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를 위한 ‘꿀잼 유익 콘텐츠’를 표방하는 동영상 뉴스 매체 ‘쥐픽쳐스’는 이제 막 성인이 된 독자들이 성에 대해 건강하게 토론하게 하는 카드 게임을 만들었습니다.
디퍼에서는 몇 달 전부터 기사 끝마다 박스 기사를 덧붙입니다. 우선 “기사를 다 읽으셨나요? 당신의 다음 반 발짝을 고민해 보세요”라고 독자에게 말을 건넵니다. 그다음엔 기사를 쓰면서 참고한 책, 논문, 영화, 유튜브 영상 등을 독자들도 한 번 보라고 추천합니다. 정치후원금을 보내거나 정당에 가입하는 등의 방법으로 ‘밀어 줄’만한 정치인을 추천하기도 했고요. 하이퍼링크를 걸어서 독자가 곧바로 행동에 옮길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도 잊지 않습니다.
목표가 다르니 아이템을 발굴하고 기사를 제작하는 과정도 큰 언론사의 뉴스룸과 다릅니다. 야마가 잡히는지가 기준이 아니라, 우리 독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지를 기준으로 뉴스 가치를 판단합니다. 디퍼에겐 지난 5월부터 9월까지 약 4개월간 실험한 주문형(On demand) 뉴스 생산 시스템 ‘디퍼야 취재를 부탁해’가 좋은 계기였습니다.
‘뭘 취재해 드릴까요?’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지자 “블루오션이 어디죠? 뭘 먹고살아야 하나요?” “우린 언제 꼰대가 되나요?” “한국에서도 작가로 먹고 살 수 있나요?”처럼 큰 언론사 뉴스룸에서라면 바로 ‘킬’됐을 주제들이 쏟아졌습니다. 처음엔 황당했죠. 하지만 질문을 해 준 독자를 인터뷰하면서 그 사람이 그걸 왜 궁금해 하는지 고민할 수 있었습니다. 정당이나 청와대를 출입처 삼아 드나들진 못해도, 대선 직후 노량진 공시촌으로 향해 새 정부의 일자리 정책을 둘러싼 취준생들의 혼란상을 들여다보는 걸로 정치권을 향해 나름의 목소리를 냈습니다. 정기 오프라인 모임 ‘디퍼살롱’도 독자들이 기사의 어떤 포인트에 반응하는지 가까이서 피드백을 받아보는 소중한 통로입니다.

독자를 움직이면 힘 있는 사람도 움직인다
샤이니 종현의 사망 소식이 들렸을 때, 많은 언론사는 자살의 방법을 자세히 묘사하고, 유서를 그대로 실었습니다. 한 언론사는 페이스북에서 도달이 잘 되는 동영상 포맷으로 유서 전문을 편집해 바이럴하기도 했습니다. ‘트래픽=광고 수익’으로 직결되는 언론 광고 생태계가 핑계였을 겁니다. 하지만 분명 참사였습니다. 정작 누구를 위해 기사를 쓰고 누구를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건너뛰어 일어난 참사였습니다.
반면 미디어 스타트업들은 성과를 숫자로만 판단하지 않습니다. 대신 광고주를 설득해 독자의 삶에 도움 되는 콘텐츠에 돈과 자원을 쓰도록 유도합니다. 지난달 열린 미디어 스타트업 대표들의 모임에서는 매체의 사회적 영향력을 측정할 새로운 지표를 개발해 보자는 아이디어가 나왔습니다. 우리가 보도한 주제를 갖고 온라인 커뮤니티의 독자들이 ‘얼마나 떠들었는지’, 그게 또 포털의 연관 검색어는 ‘어떻게 바꿔 놨는지’와 같이 사회적 영향력을 기준으로 매체의 역량을 평가하자는 아이디어입니다. 말하자면 돈과 힘을 가진 광고주의 영향력을 한 번 우리 식대로 활용해 보자는 거죠.

뉴스룸에서 통하던 핑계, 더 이상 안 통하게 해 보겠습니다
대학에서 나름 정치학을 4년이나 배웠는데도, 정치면 기사 읽는 게 힘들었습니다. 한 지인은 “20권짜리 대하소설 8권부터 읽는 기분”이라고 말하더라고요. 기사에 내가 등장하는 건, 어딘가 안 된 청년, 불행하거나 불운한 청년의 이미지를 전시할 때뿐이었습니다. ‘졸업 유예생’ 신분으로만 한 해에 세 번 각기 다른 매체에 인터뷰를 당한 적도 있을 정돕니다.
최근 MBC 뉴스의 전 인턴기자 인터뷰 논란을 보면서 기시감이 들었습니다. 저 역시 아르바이트나 인턴을 했던 언론사의 선배들로부터 ‘청년이 보는 OOOO에 대해 인터뷰 좀 해 줄 수 있니?’라는 부탁을 여러 번 받았습니다. 기자 선배들의 사정이 이해되는 측면도 없지 않았습니다. 모두 시간에 쫓겨서 혹은 숨어버린 청년 독자를 만나기 어려워서라는 핑계가 만든 취재 관행일 겁니다. 독자들이 어떤 뉴스를 원하는지 일일이 들은 뒤 뉴스를 만들기엔 ‘야마’가 잘 잡히지 않아서 그런 걸 수도 있겠고요.
미디어 스타트업이 뭔지 한 마디로 다시 정의해 보라면, 기존 뉴스룸에서 통하던 변명이 더는 안 통하게 만들어보려는 사람들이 모인 조직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 글을 읽으신 n년차 기자 선배님, 당신은 오늘 만든 그 기사를 읽고 어떤 독자의 삶이 어떻게 변했는지, 체감하고 계신가요?

Posted in 2018년 1.2월 호, 격월간 방송기자, 특집_저널리즘 혁신의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