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저널리즘 혁신의 길 ④_혁신 트렌드_BBC 디지털 혁신, 이면을 들여다보다-통찰력과 지속 투자로 변화_KBS 이혜준 기획자 (매체전략부)

격변의 미디어 시장에서 기성 언론사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혁신을 추구해 오고 있습니다. ‘혁신 보고서’로 잘 알려진 뉴욕타임스와 아마존에 인수돼 뉴미디어 DNA를 직접 이식받고 있는 워싱턴포스트 등은 이제 너무나 잘 알려진 디지털 혁신 언론사죠. 그런데 이러한 신문사들에 비해 방송사는 디지털 혁신이 상대적으로 더디게 진행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는 아무래도 신문사들이 방송사보다 더 절박한 상황에 처해있기 때문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2016년에 발표된 국내 ‘여론집중도 조사’ 결과를 보면 TV방송부문의 영향력 가중치는 54.2%인 반면 신문부문은 10.1%였습니다. 이는 인터넷부문 영향력 32.7%에도 한참 못 미치는 결과입니다.1)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가 발표한 ‘2017년 방송통신광고비 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신문 부문 광고비는 1조 5,246억 원으로 방송 부문 4조 1,417억 원은 물론 온라인 부문 4조 4,213억 원의 절반에도 못 미치고 있습니다. 미디어 영향력을 상실해 가면서 광고 수입 역시 줄고 있는 신문사가 방송사보다 혁신 의지가 더 큰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방송사들에게 디지털 혁신이 남의 이야기는 아닐 것입니다. 엄밀히 말해 작년 방송 부문 광고비는 지상파TV와 케이블, 라디오 등의 매체를 합산한 것이며, 이 중 지상파 TV의 광고비는 작년 대비 6.6% 하락하였습니다. 해외에서도 TV 영향력이 점차 하락해 그 지배적 위치를 뉴미디어 플랫폼에 빼앗길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습니다. 영국의 방송통신 규제기관 오프콤에서는 젊은이들의 실시간 TV시청 시간이 감소하고 있다는 보고서2)를 내놓았고, 가디언은 기성 방송사들이 장악하고 있는 방송 시장에서 10년 내 유튜브와 같은 온라인 플랫폼의 지배력이 강화될 것이라고 보도하기도 했습니다.3) 방송사 역시 디지털 혁신은 당연히 거쳐야 할 길이라는 사실을 여러 데이터들이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방송사가 당면한 디지털 혁신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 BBC의 사례를 통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자체 디지털 플랫폼 강화
BBC는 오래전부터 디지털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해온 대표적인 공영방송사입니다. 그리고 그 디지털 전략에서 iPlayer를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iPlayer는 BBC의 모든 콘텐츠를 PC, 모바일 기기 등에서 소비할 수 있는 동영상 플랫폼으로 2007년에 공개되었습니다. 이미 10년 전부터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에 대응할 자체 디지털 플랫폼을 구축한 것입니다. 이 플랫폼을 통해 BBC는 TV뿐만 아니라 다양한 디지털 매체에서도 그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최근 전 세계를 장악하고 있는 넷플릭스조차도 영국에서는 iPlayer에 밀리고 있다고 하니, 10년을 내다본 BBC의 준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이었는지 새삼 느끼게 됩니다.
BBC는 현재도 iPlayer를 끊임없이 발전시켜나가고 있습니다. 2017년 초 토니 홀 사장은 iPlayer가 인공지능, 음성인식, 개인화 같은 새로운 기술과 함께 완전히 새로워져야 한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4) 그리고 같은 해 8월, 음성을 통해 BBC 디지털 서비스에 로그인 하고, 원하는 프로그램을 선택해 시청할 수 있는 인공지능 기술을 선보였습니다.5) 마이크로소프트와 함께 실험 중인 이 기술은 거실에서 TV를 보는 사람들의 음성을 모두 인식하고 기억해, 그들이 선호하는 콘텐츠를 골고루 보여줄 수 있다는 군요. 혹자는 iPlayer의 독주가 수신료 기반의 무료 서비스이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하지만, 넷플릭스 같은 기술 기반 기업에 밀리지 않는 신기술 연구 및 개발 능력이 없었다면 불가능 했을 것입니다.
덧붙여 BBC가 뉴미디어 기업에 뒤지지 않는 기술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핵심 개발 인력을 내재화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2013년 BBC Information Policy & Compliance 자료에 의하면, BBC 총인원 19,632명 중 IT 관련 부문 인력이 2,096명으로 전체 인력의 10.7%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는 BBC에서 방송 기술을 담당하는 인력과 비슷한 수준의 규모입니다. 방송 기술만큼 디지털 부문의 기술 개발에도 얼마나 투자를 하고 있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대부분의 디지털 사업을 외주 업체에 맡기는 국내 방송사와도 극명하게 대비되는 모습이지요.

젊은 사용자 대상 투자 강화
최근의 미디어 환경 변화의 중심에는 젊은 디지털 소비자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앞서 언급했듯 영국 실시간 TV 시청 시간 감소도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확연히 드러나고 있지요. 그렇다 보니 BBC의 혁신 전략에서 10대부터 20대에 이르는 젊은 세대를 강조하는 내용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BBC가 어린이 콘텐츠 사업에 전체 온라인 서비스 예산의 1/4에 해당되는 금액을 투자하기로 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가디언에 의하면 BBC는 2019-20년까지 어린이 전문 채널인 CBeebies, CBBC뿐만 아니라 디지털 플랫폼에서 서비스할 어린이 콘텐츠 개발에 약 1억 2,400만 달러를 투자한다고 합니다.6) 영국의 6세-12세 어린이 중 70%가 유튜브에서 콘텐츠를 소비하는 상황을 고려해 본다면, 수신료 기반의 공영방송사로서 미래 재원이 될 어린 세대의 미디어 소비 행태를 적극 반영하려는 움직임은 당연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BBC3 TV채널을 온라인 전용으로 전환한 사례도 유사한 목적의 파격 실험이라 할 수 있습니다.7) 2016년 초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BBC3 채널의 콘텐츠를 더 이상 TV가 아닌 iPlayer 등의 디지털 플랫폼에서만 볼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콘텐츠 소비자가 주로 이용하는 디지털 매체에만 집중하는 전략인 셈이죠. TV 채널 종료로 인해 연간 약 526억 원의 비용을 절감했다고 하니, 이 선택과 집중 전략이 일단 소기의 성과는 거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돈 좀 아껴보겠다고 이 과감한 실행을 한 것은 아닐 터, 보다 더 의미 있는 결과는 좀 더 지켜봐야 할 듯합니다.

장기적 관점의 전략 실행
BBC 디지털 혁신 과정에서 또 하나 짚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미래를 바라보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전략을 수립하고 꾸준히 추진해 왔다는 것입니다. BBC는 2008년부터 자신들의 다양한 온라인 서비스에 대한 평가를 정기적으로 진행해 그 결과를 공개하고 있습니다.8) 디지털 서비스를 한 번 출시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객관적 기준으로 평가하면서 발전시켜나가는 것입니다. 국내 방송사 홈페이지나 모바일앱들이 한 번 출시되고 나면 이후에는 대부분 방치(?)되고 마는 상황을 보며, 디지털 혁신이라는 것이 단순히 겉모습만을 바꾸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BBC의 미래 재원’이란 보고서에는 10년 뒤의 미디어 환경 변화를 예측해 놓은 부분이 있습니다.9) 2010년에는 TV프로그램을 다운받아서 보고, 퇴근길 기차에서 좋아하는 드라마를 볼 것이라고 예상한 건데, 오늘날 이미 현실이 된 익숙한 모습들이죠. 이 보고서의 발간 시점은 1999년 7월. 2000년이 되기도 전에 BBC는 지금의 디지털 미디어 세상을 정확히 예상한 것입니다. 그 예측에 기반해 차근차근 미래를 준비해온 BBC였기에 넷플릭스 같은 뉴미디어 공룡들의 공세에도 끄떡없는 오늘의 BBC가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BBC가 디지털 혁신의 사례로 자주 언급되지 않는 것은 빠른 미디어 환경의 변화 속에도 흔들림 없이 공영방송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이는 아주 오래전부터 미래의 변화를 예측하고 충분히 대비했기에 가능했던 것이고요.
디지털 혁신을 꿈꾸는 많은 방송사들이 BBC를 롤 모델로 삼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주목해야 할 것은 현재 BBC 혁신의 성과 자체보다는 그 뒤를 받쳐왔던 장기적 관점의 통찰과 전략이라는 사실을 꼭 기억했으면 합니다.

 


1) http://www.journalist.or.kr/news/article.html?no=38346
2) Public Service Broadcasting Annual Research Report 2017(2017.7.7., ofcom)
3) https://www.theguardian.com/media/2017/aug/27/uk-tv-industry-1bn-amazon-youtube-facebook

4) https://www.theguardian.com/media/2017/jan/10/bbc-iplayer-faces-complete-overhaul-in-tony-halls-future-proofing-plans
5) http://www.bbc.co.uk/blogs/internet/entries/ea9e1c3b-d588-4ff8-bfd0-3685bdcba456

6) ‘실시간 TV 시청 시간 감소와 BBC의 대응’, <신문과방송> 2017년 8월 호
7) http://www.bbc.co.uk/mediacentre/latestnews/2016/bbc-three-switchover

8) http://www.bbc.co.uk/bbctrust/our_work/services/online/service_reviews.html
9) The Future Funding of the BBC(1999.7)

Posted in 2018년 1.2월 호, 격월간 방송기자, 특집_저널리즘 혁신의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