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저널리즘 혁신의 길 ③_혁신의 원칙_2018년 뉴스 경쟁의 관건_박재영 고려대학교 교수 (미디어학부)

올해 방송사들의 뉴스 경쟁은 어느 때보다 더 치열할 것이다. MBC는 새 이사진과 경영진이 들어서면서 곧바로 뉴스의 정상화를 선언했으며 SBS는 처음으로 직원들의 동의를 얻어 사장과 보도본부장을 임명하며 분위기를 쇄신했다. 종합편성채널들은 6년간 경험을 쌓고 근성을 기른 덕에 뉴스에 대한 자신감에 차 있다. 이런 올해 상황은 과거와 사뭇 다르다. 새로운 뉴스 경쟁에 대비하려고 묘약 같은 아이디어를 원한다면, 애써 멀리서 찾지 않아도 된다. 회사 기획실이나 전략팀의 서랍장과 컴퓨터에 잘 정리되어 고이 모셔져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뒤져보면서 “우리가 이처럼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이렇게 많이 냈던가?”라며 크게 놀랄지 모른다. 좋은 아이디어는 거기에 다 있을 것이므로 여기서 재론하지 않는다. 그 대신, 몇 가지 생각해볼만한 포인트를 짚어볼 것이다.

도발적인 발상 전환
총론으로, 도발적인 발상 전환을 제안한다. 예를 들어, 누구나 정책 뉴스가 정쟁 뉴스보다 더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여서 정쟁 뉴스는 넘쳐나고 정책 뉴스는 안 보인다. 정책 뉴스를 만들어본 사람은 시청률이 안 나오고 재미도 없다고 말한다. 반면에 정쟁 뉴스는 언제나 어느 정도의 시청률을 보장하며 재미도 있다. 시청자도 정쟁 뉴스를 더 선호한다. 그래서 정책 뉴스는 좋지만 재미없고 시청률이 낮고, 정쟁 뉴스는 별로 안 좋지만 재미있고 시청률이 높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이런 이분법은 전혀 유용하지 않으며 과학적으로 검증되지도 않았다. 이는 빅뉴스는 눈길을 붙잡아 두기 어렵다거나 내러티브 스토리텔링 기사는 정보를 훼손하기 쉽다는 주장만큼 터무니없다.
정책 뉴스와 정쟁 뉴스의 장점을 모두 살려보자는 식으로 발상을 바꾸어보면 어떨까? 정쟁 뉴스 같은 정책 뉴스! 그간에 기자들은 이게 가능하다고 여기지 않았기 때문에 목표로 삼지 않았으며, 따라서 그 방안을 모색하지 않았고 찾아내지 못했다. 이제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정책 뉴스를 재미있게 만들 수 있으며 정책 뉴스로 시청률도 올릴 수 있다. 이 목표를 철석같이 믿어야 한다. 그래야 여하한 장애물에도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의욕적으로 실천할 수 있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해봐야 한다. 과거에 그렇게 하지 않아서 실패했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라도.

스스로 불편해지자
각론으로 들어가서 생각해볼 포인트 중 하나는 시민 취재원이다. 시민 취재원이 많아야 좋은 기사라고 교과서에 적혀있지만 실제로 그런 기사는 별로 없다. (방송뉴스에 시민 취재원은 놀라울 정도로 적다!) 정부는 시민을 위해 정책을 만들며 정치인은 시민들 들으라고 말을 한다. 이들이 하는 일은 모두 시민을 위한 것이므로 “이들이 무엇을 하는가?”보다 “그것을 시민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가?”가 더 중요하다. 시민 반응은 시민 자신뿐 아니라 정부와 정치인에게도 긴요하다. 시민 반응에 따라 정책을 조정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반드시 시민의 반응을 들어야하며, 원치 않더라도 누군가 그것을 들려줘야 한다. 그 일을 뉴스가 한다. 이것이 언론이 민주주의에 기여하는 방식이다. 시민 취재원의 의미란 이런 것이다. 하지만 이를 이해하고 실천하는 기자는 많지 않다. 대통령이 아무리 중요한 말을 해도 시민의 반응이 더 중요하므로 뉴스에 대통령의 코멘트 못지않게 시민의 코멘트가 많이 실려야 하지만 그런 뉴스는 거의 없다. (시민의 코멘트를 대통령의 코멘트보다 더 많이 싣는 아주 모범적인 도발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렇게 했던 미국 신문이 있다.)
기사에 시민이 많이 등장해야 좋다고 믿는 기자는 시민을 찾아 나설 것이다. 정치부 기자라면 국회나 정당을 벗어나서 거리로 나가야 한다. 이제 기자는 정치인의 입보다 시민의 입에 더 주목한다. 이는 취재습관을 뒤바꾸는 것이어서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다. 해왔던 대로 해서는 아무 것도 바꿀 수 없다. 무엇이든지 변화를 꾀하려면 몸에 익은 방식을 버리고 스스로 불편해져야 한다.

함축적 문장
더 세부적으로는 표현과 문장이 있다. 1분 30초짜리 방송뉴스는 10개 남짓한 문장으로 구성된다. (3분짜리라고 해봐야 문장 20여 개다.) 뉴스를 잘 만들고 싶은데, 쓸 수 있는 문장이 10개 밖에 없다. 그 한도에서 사안을 소개하고, 얽힌 부분을 풀어서 설명하고, 당사자의 육성을 들려주고, 반응을 덧붙이고, 평가도 해야 한다. 문장 하나하나가 정말 소중해서 어느 하나도 허투루 쓸 수 없다. 축구에서 패스를 아끼듯이 방송뉴스에서 문장을 아껴 써야 한다. 문장을 이루는 단어도 마찬가지다. 모든 단어는 각자 오롯이 제 역할을 해야 한다. 따라서 의미가 별로 없거나, 불분명하거나, 중복되거나, 심지어 있으나마나한 단어는 모조리 덜어내야 한다. 그런 것 중의 하나가 상투적인 표현이다. 이들은 기사를 멋지게 해주기는커녕 식상케 한다. 의미를 모호하게 만들고 이해를 방해한다. 오죽했으면, 언론학자 마이클 셔드선이 상투적인 표현을 범죄행위라고 했을까. 이것만 없애도 방송뉴스는 몰라보게 달라진다. 기자가 상투적인 표현을 안 쓰고 대체 표현을 찾을수록 뉴스는 신선해지고 차별화된다. 이렇게 방송뉴스의 모든 문장이 함축적인 문장으로 바뀌어야 한다. 기자들은 잊었을지 몰라도, 사람들은 여전히 기자는 언어를 조탁하는 말과 글의 달인이라고 믿고 있다.

무엇이든지 실천하라
그간에 무언가를 하지 못했다면, 장애물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정부 통제, 광고주 압력, 인력 부족, 시청률 걱정, 재원 부족. 심지어 네이버 때문에 안 된다는 말도 많이 했다. 그러나 정부나 광고주에서 자유롭고, 인력이 충분하고, 시청률 걱정 안 해도 되고, 돈이 많으면, 좋은 뉴스는 만들어지는 것일까? 반대로, 통제를 받고 사람과 돈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좋은 뉴스를 만들 수 있는 것일까? 혹시 매사를 장애물 탓으로 돌리는 바람에 실천할 수 있었던 것조차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이제 도상 훈련은 그만하고 여건 탓도 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실천해야 한다. 그간에 많은 것을 시도했겠지만 끝장 볼 때까지 밀어붙인 적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래서 다행히 해볼 만한 게 많이 남아 있다. 아예 손대지 않은 것도 있다. 뉴스를 잘게 쪼개는 대신 합치고, 공직자 대신 시민 중심으로 보도하고, 사안이 복잡하면 제치는 대신 복잡한 주제를 개발해보고, 호흡 긴 리포트를 시도하고, 복수의 주제를 한 뉴스에 넣어도 보고. 이런 일에는 실험정신이 요구된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과감하게 실험해 보자. 실패하면 오히려 더 좋다. 메이저리거 크리스 매튜스의 말처럼 “승리하면 조금 배울 수 있다. 하지만 패배하면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다.”
과도하게 들리겠지만, 한국 방송저널리즘은 제대로 구축된 적이 없다. 그간에 잘하지 못했다는 문제의식이 있고 잘해보려는 의욕이 있다면, 지금 당장 무엇이든지 해야 한다. 뉴스 바꾸기는 보도국 바꾸기이고 기자 바꾸기이다. 기자가 바뀌지 않는데 여건이 바뀐들 뭐가 달라지겠는가? 혁신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이디어나 돈이 없어서라기보다 혁신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좋은 뉴스는 그간에 해왔던 것과 전혀 다른 발상에서, 전혀 새로운 시각과 철학에서 시작한다.

Posted in 2018년 1.2월 호, 격월간 방송기자, 특집_저널리즘 혁신의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