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저널리즘 혁신의 길 ①_인터뷰-본부장에게 듣는다_“언론의 존재 이유, 그것에 답해야 합니다”_SBS 심석태 보도본부장_SBS 한세현 기자

일시  2017년 12월 28일
인터뷰 및 정리  SBS 한세현 기자(기획 취재부, 본지 편집위원)

 

말 그대로 ‘언론 수난시대’다. ‘기레기’라는 신조어는 이제 전혀 낯설지 않다. 해외에서 공적인 취재과정에서 집단폭행을 당하고도, 자국민에게서 더한 뭇매를 맞는 게 오늘 우리 언론의 모습이다. 상처받은 언론의 목소리는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다. 최고의 위기관리자로 평가받는 킨들러 미국 화이자 회장은 “왜 우리가 존재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되새겨야 생존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왜 존재해야 할까? 또, 무엇을 바꿔야 할까? SBS 심석태 본부장에게 저널리즘 혁신의 길을 물었다.

 

“저널리즘 혁신에 앞서 저널리즘의 존재 이유 물어야”

오늘 우리 언론이 처한 현실이 녹록하지 않습니다. 언론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 말 그대로 바닥입니다. 저널리즘의 혁신이 필요하단 지적이 많습니다. 어떻게 보시나요?
‘저널리즘 혁신의 길’을 저한테 묻는다면, 저는 먼저 되묻고 싶습니다. “‘저널리즘’은 무엇일까요?” ‘저널리즘 혁신의 길’을 묻기에 앞서, ‘저널리즘’이 무엇인지부터 따져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저널리즘의 회복’이라는 말도 썼는데, 회복이든 혁신이든 하려면, 일단 저널리즘부터 존재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 사회에 제대로 된 저널리즘이 존재한 시기는 언제였을까?’ 냉정하게 말하자면, 저는 언론이 모범적으로 활동했던 시기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봅니다. 따라서 저널리즘의 혁신을 논하기에 앞서, 저널리즘 자체에 대해 먼저 고민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바꿔서 질문드리겠습니다. 우리 사회에는 왜 모범적인 저널리즘이 없었을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가 왜 이 일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존재 이유’에 천착하지 않으면, 조직과 개인의 이익 등에 따라 쉽게 타협해버리게 됩니다. 권력이란 흔히 말하는 정치권력만 있는 건 아닙니다. 경제 권력이든, 시민사회 권력이든, 심지어 댓글 부대도 권력입니다. 이들 권력은 언론을 공격하고, 때로는 위협하고 또 압박하기도 하죠. 우리 스스로 이 업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그 권력에 밀리지 않을 수 있는데, 27년째 기자 생활하며 느낀 건 ‘왜 우리가 이 일을 하는지에 대한 확신’이 철저하지 않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쉽게 타협하고, 양보하고, 물러서는 것 같았습니다. 소비자들은 이런 모습에 익숙해지다 보니 언론을 외면하게 되는 거죠.

언론이 존재 이유를 소비자에게 보여주지 못했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렇죠. 저널리즘의 본질은 비판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기본적으로 감시하는 것이고, 그렇다 보니 필연적으로 대상이 되는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 수밖에 없죠.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편 들어줄 때는 환호하고, 비판할 때는 ‘나쁜 놈’이라고 비판합니다. 그래서 언론인은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를 치열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중심이 바로 서 있으면 누가 공격을 해오더라도 흔들리지 않는데, 중심이 취약하다 보니 여기서 욱하면 저쪽으로 쏠리고, 저기서 공격이 오면 또 반대로 또 쏠립니다. 소비자들이 볼 때는 줏대 없이 이리 갔다가 저리 갔다 하는 거죠. 그렇다 보니 ‘기레기’라는 비판도 나오는 거라고 봅니다.

말씀을 들으니 우리 스스로 기레기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겠는데요?
사실, 저도 동업자들을 보며 저렇게 하면 또 ‘기레기’라는 소리를 듣겠다고 생각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왜냐하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경제권력은 물론 시민단체나 이익단체들이 치고 들어올 때마다 이쪽으로 때로는 저쪽으로 일관성 없이 반복적으로 흔들렸으니까요. 갈수록 언론에 대한 비판은 커지는데, 언론은 그만큼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으니 분명히 문제가 있는 거죠. 결국, 기준과 원칙에 따라 일정하게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합니다. 눈치 보면서 어느 한쪽에서 목소리를 내면 그것에 과도하게 반응해 버리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때문에 그동안 우리는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제대로 입증하지 못한 겁니다.

 

“기준과 원칙을 지켜야 신뢰 회복 가능”

우리가 중심을 잡으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건 민주주의와도 비슷한 건데, 절차에 합의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것이 아니라, 논란을 빚는 사안이 있을 때 적어도 기준과 원칙에 맞게 취재하고 보도했는가를 따져볼 수 있도록, 합당한 취재 보도의 절차에 대해 충분히 논의하고 합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부터라도 그렇게 기준과 원칙을 따져보고 지켜가려는 사례들을 하나씩 쌓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그동안 그런 기준과 원칙에 대해서 충분히 논의하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면요?
세월호 보도도 그렇죠. 세월호 보도와 관련해서도 비난은 엄청나게 쏟아졌지만 당시 보도가 무엇이 문제였는지, 아직 제대로 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혹자는 팩트도 확인 안 하고 받아쓰기를 했다고 비판하고 혹자는 무책임하게 추측 보도를 했다고 비판합니다. 한쪽에서는 언론이 정부 눈치 보는 게 문제라고 하고, 또 다른 곳에선 유가족의 눈치를 본 게 문제라고 하죠. 정작 현실 속에서의 우리는 그냥 뭉뚱그려서 ‘유족의 아픔을 어쨌든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안 된다.’ 이런 식으로 어정쩡하게 결론 내고 끝내버리죠. 일종의 경험적 교훈은 얻었는데, 그것을 어떻게 현실에서 지켜나갈지 충분히 고민하지 않다 보니, 이후에 발상한 참사에서도 비슷한 보도를 계속하는 문제를 보이고 있습니다. 방법론적으로는 이 사안에서 우리가 위반한 것은 무엇이고, 우리가 다시 이런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한다고 정확하게 또 지속적으로 논의하고 합의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우리가 지키려고 노력해야 하는 기준과 원칙은 어떤 게 있을까요?
자랑 같지만 제가 참여했던 방송기자연합회 저널리즘특위에서 만들었던 ‘방송보도 7가지 원칙’이 그 예가 될 수 있습니다. 즉 ‘사실관계 확인 부족’ ‘정치적 편향’ ‘광고주 편향’ ‘출입처 동화’ ‘자사 이기주의’ ‘시청률 집착’ ‘관습적 기사 작성’ 같은 문제들을 고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대단히 일상적이고 상식적인 원칙들이 실제로 언론을 바로 세우는 데 유효합니다. 설사, 결론적으로 그것이 오보였을지라도, 기본적으로 사실관계를 얼마나 꼼꼼하게 확인하려고 노력했느냐, 복수의 취재원을 취재했느냐, 이런 것들은 매우 중요합니다. ‘샤이니 종현’ 자살 때도 편집회의에서 자살보도준칙을 지켜야 한다는 논의가 제기되었는데, 과거의 우리를 보면 자살보도를 막 하다가 나중에 “어, 보도가 과했네.”라며 어느 순간 반성한다는 말이에요. 제천 참사의 경우도 마찬가지고요. 우리가 자살, 재난 관련 보도 준칙을 만들었지만 그것을 숙지하고 지키려고 얼마나 노력했느냐 곱씹어 봐야 합니다. 적어도 이런 원칙을 지키지 않은 언론은 제대로 된 언론이 아니라고 우리 스스로 선언할 수 있는 그런 수준의 공감대도 필요합니다.

“언론 소비자도 함께 변해야…그러기 위해선 과정을 충실히 설명해야 한다.”

언론이 그런 기준에 합의하고 노력한다고 소비자들이 받아들이는 건 또 별개 문제입니다.
그렇죠. 베이징에서 일어났던 기자단 집단폭행 사건만 봐도 언론 소비자들이 언론을 대하는 태도가 얼마나 심각한지 고스란히 나타납니다. 공적인 취재과정에서 집단 폭행을 당했는데도 “잘 맞았다. 맞을 만하니까 맞았다”라는 식의 인식을 당당하게 표출할 수 있다면 정상적인 사회는 아닌 거죠. 그런 점에서, 언론과 함께 언론 소비자도 같이 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소비자도 어떤 언론사든, 진보 성향이든 보수 성향이든 앞서 설명한 기준과 원칙에 따라 언론의 잘잘못을 따져보고 비판해야 합니다. 자기 편을 들어주면 좋은 언론이라고 칭찬하다가 조금이라도 자기가 지지하는 진영을 비판하면 금방 기레기라고 공격하는 소비자가 제대로 된 언론을 가질 수는 없는 거죠.

하지만 현실적으로 공급자가 소비자를 이해시키고 나아가 실질적인 변화까지 이끌어 내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맞습니다. 그래서 결과뿐 아니라 취재와 보도과정까지 세밀하고 또 지속적으로 소비자들에게 알려줄 필요가 있습니다. ‘판사가 판결문으로 말하듯 기자는 기사로 말한다.’ 이런 식의 공급자 중심의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끊임없이 교류하고 교감해야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가 조금씩 사회 속으로 퍼져 나갈 수 있습니다. 그 보도는 왜 했는지 혹은 왜 안 했는지, 그런 의사결정을 하는 과정에서 어떤 고민을 어떻게 거쳤는지 설명해주고 소통해야, 소비자들도 “아, 그런 쟁점이 있구나” “그런 고민과 선택이 있었구나”라고 인식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저희 취재기자가 앞서 얘기한 ‘샤이니 종현’ 자살과 관련해서 유서를 왜 보도하지 않았는지에 대해 <취재파일>로 자세히 설명했는데, 소비자들과 교감하려 노력한 좋은 사례입니다. 꼭 방송리포트가 아니더라도 본부장, 국장도 인터넷에 편지 형태라도 관련 내용을 직접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소비자들도 “언론사, 언론인을 신뢰할 수 있구나. 믿고 의지해도 되겠구나.”라고 마음을 갖게 됩니다. 우리끼리 “잘했어~”하고 넘어가서는 결코 소비자의 마음을 얻을 수 없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제 다른 방송사들도 이른바 정상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어떤 마음가짐이신지요?
MBC가 보여주고 있는 변화를 저는 대단히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KBS도 곧 그 변화의 대열에 동참하겠지요. ‘깨진 유리창 이론’이라고 있잖아요. 마찬가지로 언론계 자체가 정상화되지 않으면, 기형적인 언론들이 주변에 있으면,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소비자들은 언론계 자체를 불신할 수밖에 없습니다. 언론계 전체가 신뢰를 회복해야 각각의 언론사도 생명력을 부여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같은 언론 종사자로서 매우 환영하고 또 고맙게 생각합니다. 우리는 경쟁상대를 의식하기 보다 앞서 말한 우리 저널리즘의 원칙, 그것을 고수해 나가는 데 모든 정성을 다하겠습니다.

Posted in 2018년 1.2월 호, 격월간 방송기자, 특집_저널리즘 혁신의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