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9회 뉴스부문_집 앞에서 돌아간 경찰… 초동수사 부실 의혹_MBN 조창훈 기자

 

 ‘이야기 안 되는 사건의 서러움

강력범죄 피의자들이 발생 직후 척척 검거되는 걸 보며 ‘이제 완전범죄는 없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사회부 사건팀에 배치 받은 첫 해 미제 사건을 찾아 전국을 돌았고 개인적인 믿음(?)은 더 굳어졌습니다. 하지만 그 때는 ‘사건’이 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담당 수사관의 ‘감’이 작동하지 않는 사건은 후순위로 밀리기 일쑤였습니다. 지난 8월 보도한 전남 장흥 여중생 집단성폭행 사건이 그랬습니다. 서울과 전라남도의 경찰관들은 한 여학생의 증거 없는 성폭행 주장을 관심 있게 듣지 않았습니다. 경찰관의 사건 처리가 규정을 준수했는지 보게 된 건 그 때부터입니다. 이영학에 의해 숨진 여중생 사체가 발견됐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곧바로 경찰의 초동조치가 적절했는지 검증에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경찰은 신()이 아니라지만

취재에 나서고 처음으로 접한 내용은 ‘실종 당일인 지난 9월 30일 밤, 경찰이 피해 학생을 찾아 이영학의 집을 찾았지만 이영학 형의 항의로 외부에서 사다리차만 대고 되돌아갔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영학이 시신이 담긴 가방을 차에 실은 게 다음 날인 10월 1일 오후였으니, 취재 내용이 사실이라면 경찰이 피해자가 집 안에 있는데 문 앞에서 돌아섰다는 얘기가 되는 셈이었습니다.

다양한 경로를 통해 확인해 보니 경찰이 처음 이영학의 집을 찾은 건 피해 학생이 실종된 9월 30일이 아닌 10월 2일이었습니다. 이번엔 이영학 딸을 만난 사실을 아는 경찰이 이영학 집에 가는데 꼬박 이틀이나 걸린 점이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영학 집 현관문이 잠겨있자 그대로 돌아간 뒤, 집 안에 불이 켜져 있자 문을 여는 대신 사다리차를 올려 밖에서 집안을 살펴본 소극적 대처도 석연치 않았습니다.

담당수사팀장은 당당했습니다. ‘경찰이 사다리차까지 대고 집을 들여다보려 했으니 오히려 칭찬해줘야 하는 게 아니냐’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어‘대부분의 실종 신고는 단순 가출’이라며 ‘며칠 뒤 돌아오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습니다. 경찰관이 신(神)이 아닌데 어떻게 모든 범죄 피해를 막을 수 있냐는 그의 항변이 이해가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과연 이들이 이번 사건 초동대처에 최선을 다했는지에 대해선 여전히 의문이 남습니다.

 

 안일한 판단이 부른 화

결국 이번에도 경찰은 안일한 판단으로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이나 처음부터 이영학과 그의 딸을 용의선상에 올려놓고 수색에 나섰다면 피해 학생은 목숨을 잃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이번 보도로 인해 경찰은 여성과 아동의 실종 사건에 대한 대응 규정을 전면 개정했습니다. MBN은 앞으로도 개정된 실종자 수사 규칙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 또 다른 사건이 터져도 대처에 미흡한 점이 없었는지 확인하는 감시자 역할을 게을리 하지 않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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