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방송기자 11.12월 호_발행인 칼럼_4차 산업혁명 단상_김현철 방송기자연합회장

우리 사회에는 지금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신화적 믿음 같은 게 있는 것 같다. ‘변화하는 세상에 맞춰 진화하라’는 4차 산업혁명의 선구자 내지 전도사인 클라우스 슈밥의 외침이 하나의 복음처럼 인식된다. 사회 변동을 설명할 때 기술 결정론자들은 ‘기술은 편향적이다’란 말을 즐겨 쓴다. 기술은 관성을 가지고 있어 기술의 발전 추이가 시장의 방향성을 결정한다는 것인데, 클라우스 슈밥은 우리가 오늘이 아닌 내일을 어떻게 읽어내야 할지, 그 단초를 과학과 기술에서 찾고 있다.
우리는 이미 비슷한 경험을 했다. 1995년으로 기억된다. MIT의 미디어랩 설립자이자 저명한 미래학자인 니콜라스 네그로폰테가 <디지털이다(Being Digital)>라는 책을 출간했을 때다. 당시 전 세계를 휩쓴 이 책의 인기와 영향력은 지금 클라우스 슈밥의 <4차 산업혁명>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네그로폰테가 <디지털이다>를 쓴 배경에는 인터넷이라는 신기술이 있었고, 그래픽 기반 웹브라우저 ‘넷스케이프 네비게이터’가 무료로 공개됨으로써 인터넷 대중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하던 때였다. 그는 인터넷의 미래에 대해 수많은 예언을 남겼는데, 그중 하나가 민족주의의 종말이었다.
그는 당시 이렇게 단언했다.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클릭 한 번으로 다른 나라를 경험할 수 있게 되기 때문에 민족주의는 사라질 수밖에 없는 팔자라고. 앞으로 20년 후, 아이들은 ‘민족주의’라는 단어의 의미조차 모르게 될 것이라고. 하지만 20년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그로부터 10년 뒤, <이코노미스트>지는 ‘사이버 민족주의: 인터넷 혐오의 신세계’라는 기사에서 인터넷이 극단적 민족주의의 온상이 되었다고 한탄했다.
총론적인 측면에서 낙엽이 지면 겨울이 오는 것은 맞다. 하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겨울이 오는 건 맞아도 어떤 겨울이 올지 솔직히 예상하기 힘들다. 미래학자들이 거시적인 큰 흐름의 변화는 짚어도 미시적인 양상까지 정확하게 진단한 적은 많지 않다. 4차 산업혁명의 예언을 우리가 무조건적으로 순순히 받아들이기 힘든 이유다.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신화적 믿음은 맹목적이고 강박적인 대응을 부르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기술적 변화는 스스로 진행하는 절대적 힘도, 가치 중립적인 진화의 과정도 아니기 때문이다.
기술의 진화 방식을 설명할 때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고 했다. 기술이 사람의 노동력을 대체하기보다 노동의 형태와 질을 변화시킬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 사람을 위한, 사람이 중심이 되는 기술 발전을 어떻게 이끌 것인가? 아마도 그것이 풀어야 할 가장 큰 숙제가 아닐까 한다. 4차 산업혁명의 키워드가 ‘융합’이고, 이는 전문가의 시대가 가고 앞으론 융합형 지식인이 더 필요한 시대가 도래한다는 의미라면, 어떻게 그러한 인재를 육성할 것인가? 방송 기자들이 몸담고 있는 뉴스 미디어가 새로운 기술보다 먼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은 바로 이 대목이다.

Posted in 2017년 11.12월호, 격월간 방송기자,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