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해외 연수_저널리즘의 현장 떠나 아카데미즘의 중심으로_KBS 이정민 기자

어쩌다 다시 학생
별거 없이 지낸다. 아침에 일어나면 학교에 간다. 시간만 좀 늦을 뿐 출근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저녁 되면 퇴근하듯 집으로 돌아온다. 밥 먹는다. 책을 본다. 진도가 잘 안 나간다. 잔다. 또 일어나 학교에 간다. 대학 취재 갈 때마다 지나다니는 학생들을 부러워했던 기억도 난다. ‘저 때는 참 좋았지’ 생각했다. 요즘 책가방 메고 걷다 보면 진짜 학생으로 돌아간 기분이 썩 나쁘지는 않다. 몇 가지 빼고는. 그래도 그럭저럭 돌아가는 줄 알았던 머리가 영 잘 안 돌아가는 것 빼고는. 소싯적 날밤도 척척 새던 내가 수업 몇 시간만 들으면 피곤에 절어버리는 저질체력이 된 것 빼고는. 동급생인 20대 초중반 친구들에 비해 뭘 해도 한 박자 느리다는 것 빼고는. 대학 졸업한 지 벌써 십수 년, 좋았지 싶었던 건 ‘학생’이라는 신분이 아니라 그냥 지나간 어린 시절이었다는 걸 깨닫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학생들도 힘들다. 지나는 시절마다 그때만 겪는 어려움이 있다. 이미 ‘좋은 시절 어쩌고’나 읊을 정도로 꼰대 충분조건 연령에 진입한 주제에 주책맞게 그때를 거스르기까지 하다니 이게 무슨 미련한 짓인가.

어쩌다 돼 버린 학생
영국 연수를 마친 뒤 복귀를 앞두고 이곳 대학원에 진학하겠다며 휴직계를 냈다. 솔직히 이런저런 공부 한 번 해보고 싶다는 그간의 희망이 동력의 30%쯤이었다면, 나머지 70%는 대학 캠퍼스를 오가다 보니 스멀스멀 생긴 학위 하나 따두고 싶다는 막연한 사심, 지금 회사 가봐야 뭔 보람찬 일을 하겠느냐는 자기합리화, “일찍 복귀해봐야 뭐 해. 더 있다 천천히 와” 하던 몇몇 동료들의 부추김, 떨어진 파운드화 환율(이게 제일 컸다) 등이었다. 다 참 불순한 사유들이다.
그래도 딴에는 고민도 꽤 했다. 갈까 말까. 민완기자까지는 아니어도 십수년 출근도장 하나만큼은 열심히 찍어온 내게 휴직자 신분은 적응 안 되는 그 무엇이었다. 업무에 직접 써먹을 것 같지도 않고 새 직업 찾을 것도 아닌데 돈만 날리고 사서 고생 아닐까, 합격증 쥐고 나서도 몇 달을 고민하던 어느 날 영국 정치상황 때문에 환율이 급락했고, 나는 그날 통장에 큰 구멍을 내면서 등록금을 내버렸다. 어차피 딱 1년, 회사 가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을 것 같았고 그러느니 학위라도 하나 따는 게 남는 장사처럼 느껴졌다. 싱거운 결론이었다.

기자생활의 유일한 강점, ‘멘탈 갑’ 정신
첫날 오리엔테이션에서 교수는 학생들에게 ‘앞으로 너무 좌절하지 말라’며 심각할 경우 어떻게 정신상담을 받아야 하는지 안내해 줬다. ‘저게 웬 오버인가’ 하고 우습게 봤는데 엄청난 학업을 무언으로 강제당하는 분위기라 다들 스트레스가 크다고들 말한다. 논리적으로만 따지면 공부하는 법도 다 까먹고 외국 친구들에 비해 어학 실력도 부족한 나는 스트레스를 두 배로 받아야 하는데 의외로 넋 놓고 지내고 있다. 타고난 성격보다는 오랜 기자생활이 준 맷집 때문일 게다. 방송 직전에도 ‘아, 된다니까요.’ 하던 대책 없는 ‘멘탈 갑’ 정신. ‘설마 마감이야 넘기겠나’ 하는 습관적 낙천성이 한 주마다 수백 페이지 씩 내주는 읽을거리 숙제가 매주 소화가 안 돼도 의외로 잘 버티게 한다. 일생에 다시없다는 휴직 기회를 학교와 집만 열심히 오가며 서울과 별다르지 않은 건조한 생활을 해도 큰 불만이 없는 것도 그래서 일 거다.
소소한 즐거움도 있다. 수업과 세미나마다 교수들은 ‘그대로 외우지 말고 생각하고 비판하라’고 강조한다(그래도 결국 다 외워야 숙제도 하고 시험도 보겠지만). 유명한 책의 저자와 저명한 이론들이 매일 도마 위에 올라 난도질 당하기를 기다린다. 가장 요구되는 건 ‘비판하고 오류를 잡아내는 능력’이다. 속된 말로 ‘쪼이는’ 기분이 들면 동시에 조금 헛웃음이 난다. 비판과 검증이라. 아, 요거 원래 내 직업인데. 정작 회사 분위기는 안 이랬는데. 한국에서 열심히 하고 있었어야 할 걸 10,000km나 떨어진 곳, 엉뚱한 상황에서 더 열심히 하고 있는 나는 재미있으면서도 좀 부끄럽고 좀 화날 때도 있고 그렇다.

휴직해서 한 공부, 큰 쓸모는 없다 하더라도…
회사 휴직 신청서에는 휴직해서 한 공부를 직무에 어떻게 활용할지 묻는 란이 있었다. ‘네 돈 깨서 공부해서 그 결과는 회사에 바쳐라’니 고용보장 대가 치고는 좀 센 거 아닌가 웃기도 했다. 와서 보니 직무 활용은 몰라도 이것저것 달리 생각하는 습관만큼은 조금 더 늘어가겠구나 싶기도 하다. 어차피 공부는 공부고 일은 일, 남는 게 뭐라도 있으면 다행이다. 써먹을 게 있어 회사일에 갖다 바칠 수 있다면 더 좋을 거다. 정작 그런 것 부끄럽지 않게 하겠다고 파업 중인 동료들의 소식은 이 와중에도 자주 본다, 아니 보인다. 유일하게 ‘멘탈 갑’ 정신이 잘 발휘되지 않는 부분이다. 멀리 떨어져 있어 응원하면서도 말 한마디 보태기가 동료들에게 송구했다. 선후배들이 이 글을 읽을 때쯤이면 성공해서 ‘나라에 큰일 있을 때 떠나있더니 글마저도 타이밍 못 맞추는구나’ 구박이라도 반갑게 들었으면 싶다.

 

Posted in 2017년 11.12월호, 격월간 방송기자, 나의 해외연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