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미디어 생태계_포털과 언론사, 미묘한 역학 관계_KBS 이혜준 기획자 (디지털서비스국)

 

국내 뉴미디어 동향을 살피다 보면 언론사와 포털 사이의 미묘한 관계를 느끼게 하는 일들을 종종 발견합니다. 뉴미디어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영향력을 확대해 온 포털과 이를 뒤늦게 견제하려는 언론사 간의 신경전, 또 한 편으로는 포털과 협력하면서 그들의 IT 유전자를 이식하고 변화하려는 언론사의 움직임 등이 바로 그것인데요. 이는 15년여 이상의 기간에 걸쳐 국내 언론사와 포털 간에 형성된 독특한 역학 관계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도 이러한 관계를 엿볼 수 있는 몇 가지 일들이 있었는데,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통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네이버 뉴스 편집 조작 논란
지난 10월 네이버가 외부의 청탁을 받고 뉴스 배열을 조작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프로축구연맹 관계자가 네이버 임원에게 문자를 보내 자신들에게 불리한 기사를 내려달라는 요청을 하였고, 실제로 해당 기사가 사라진 정황이 확인된 것이었습니다.
포털은 매일 사용자 수천만 명에게 뉴스를 노출하며 사회 여론의 움직임에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언론사들은 포털의 뉴스 편집에 민감하게 반응해 왔습니다. 포털이 편집을 통해 사실상 언론 역할을 하고 있다며 언론사에 준하는 규제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도 내놓았죠. 이런 견제에 대해 포털은 뉴스 편집권을 언론사에 넘기거나(네이버 뉴스스탠드) 아예 인공지능에 편집을 맡기는(네이버 AiRS, 카카오 루빅스) 등의 대안을 발표하며 대응해 왔습니다. 언론으로서의 역할에 거리를 두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랬기에 이번 뉴스 편집 조작 사건의 충격은 더 크게 다가왔는지도 모릅니다.

결국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한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는 국회의원들의 질타 속에 직접 사과를 하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동안 포털의 영향력에 기를 못 폈던 언론사들은 터질 것이 터졌다는 식의 비판 기사를 쏟아냈죠. 그러나 비판만 하는 언론사들 역시 그 책임에서 마냥 자유롭지는 못할 것입니다. 거대해진 포털의 영향력에 언론사가 종속되었던 것은 미디어 환경의 변화를 외면하고 안주했던 언론사 스스로에게도 원인이 있기 때문입니다.

중앙일보 이석우 디지털총괄 사임

중앙일보의 디지털 혁신을 이끌어 온 이석우 디지털 총괄이 지난 9월 말 사임했다는 소식도 관련 업계의 큰 관심을 불러 모았습니다.
이석우 총괄은 창간 50주년을 맞은 중앙일보가 2015년 전격 영입한 인물로 중앙일보의 다양한 디지털 실험과 개혁을 진두지휘 해왔습니다. 특히 그는 카카오의 대표이사를 관둔 지 얼마 되지 않아 중앙일보에 합류한 터라 영입 당시에도 비상한 관심을 모은 바 있었습니다. 디지털 혁신을 구호로만 외치던 여러 언론사들과 달리 중앙일보는 자신들이 종속되었던 포털에서 ‘뉴미디어 DNA’를 직접 수혈한 것과 다름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석우 총괄은 전문가로 구성된 큰 규모의 디지털 조직을 세팅하며 통합 CMS를 구축하는 등 디지털 인프라 관련해 여러 성과를 냈다고 합니다. 자체 디지털 플랫폼 강화를 위해 그 기반을 탄탄히 다져놓은 것입니다. 이는 대부분 언론사들이 디지털 분야에서 뭔가를 하려고 할 때 겉에 보이는 부분에만 집중하며 모래성을 쌓고 마는 것과 대조됩니다. 진정한 디지털 혁신의 초석을 다졌다고도 할 수 있겠죠.
그렇기에 그의 갑작스러운 사임은 궁금증을 낳기에 충분합니다. 일부 언론은 그의 사임이 기존 신문사 내부 조직과의 갈등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석우 디지털 총괄의 사임은 올드미디어와 뉴미디어가 여전히 쉽게 융합되기 어려운 관계라는 것을 확인하게 해준 상징적인 사건으로 남을 수도 있을 것 같네요.

스스로 언론이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언론의 역할을 하고 있는 포털과, 이를 비판하며 견제하는 언론사들. 그러나 그 비판 기사 역시 포털에 노출되지 않으면 파급력을 갖지 못하는 언론사의 여전한 종속 관계. 이런 관계에서 벗어나고자 국내 최고의 뉴미디어 기업 수장까지 영입했지만 결국 미완에 그친 중앙일보의 디지털 개혁. 현재 우리나라 언론사들이 처한 미디어 환경의 단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들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Posted in 2017년 11.12월호, 격월간 방송기자, 뉴미디어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