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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기자가 쓴 책_젊은 세대가 읽은 잉여와 도구(MBC 임명현 기자 / 정한책방)_원용진 교수 (서강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부)

MBC 임명현 기자의 <잉여와 도구>를 수업시간 독후감 책으로 선정했다는 소식을 들은 모양이다. 방송기자연합회에서 젊은 독자들의 반응이 궁금했던지 독후감에 대한 독후감을 제안해왔다. 글을 위해 꼼꼼히 읽어냈다. 여러 주체의 심정이 얽히고설킨 <잉여와 도구>였지만 그를 읽어낸 젊은 심정은 의외로 명료했다. 두려움, 그리고 그를 극복할 사회적 연대의 갈망으로 갈무리할 수 있었다.

뉴 노멀New Normal 사회
대부분의 글은 죽은 노동을 강요당한 언론인에 대한 동정으로 넘쳤다. 폭압적 노동 정책을 편 경영진으로 향하는 분노도 폭발적이었다. 죽은 노동, 폭력 경영을 거슬러가는 저항엔 존경의 눈초리로 답했다. 동정심, 분노, 존경은 서로 다른 질감을 가진 사인이다. 하지만 퍼즐을 맞춰가듯 정리해 독해하면서 두려움으로 공약됨을 알았다. 독후감에서 표출된 이질적 감정의 밑바닥에 깔린 정서는 세상 모든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이미 언제나 비정상적인 것이 제 몫을 챙기는 세상이다. 아직은 학생이지만 이미 언제나 그를 경험하고 간파한 젊은 세대다. 그래서 제대로 바뀔까라는 두려움을 깔고 동정하고, 분노하고, 존경하고 있었던 게다. 두려움의 심정은 저널리즘의 죽음을 대하는 시선의 방향에도 영향을 미쳤다. 젊은 예비 언론인들은 저널리즘의 죽음 너머로 향하는 다른 시선을 지니고 있었다. 온 사회가 잿빛 죽음인데 유독 저널리즘에만 시선을 돌릴 여유를 갖고 있지 못했다.
네 꼴도 안쓰럽지만 당장 내 꼴도 말이 아니라는 투의 시선이었다. 두려움의 정서로 만들어진 시선이 갖는 함의는 명료했다. 저널리즘의 죽음에 민감하지 않은 사회를 힐난하기에 앞서 저널리즘은 스스로 사회의 죽음에 분노하지 않은 것을 질문해야 한다는 요청이었다. 참으로 오랫동안 서로의 두려움과 죽음을 인지하지 못하며 살아왔다. 그래서 애도의 예의도 갖추지 못한 채 서로를 힐난해 살아온 꼴을 그들의 글이 증언하고 있었다.

‘사회적인 것’의 요청
사회 내 개인 자신과 타자가 우애롭게 서로를 챙기며 살아가는 꼴을 가리켜 사회적인 것(the social)이라 말한다. 지금 우리는 말을 잃고 서로에게 무관심하며 살아가는 꼴을 연출하고 있다. ‘사회적인 것’의 실종 속에서 사는 셈이다. <잉여와 도구>의 저자도 ‘사회적인 것’의 실종으로 저널리즘도 죽어가고 있다고 설파한다. 사회가 빙산이라면 저널리즘은 그 위에 얹힌 얼음 조각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젊은 독자들은 푸념에서 멈추지 말며 한 걸음 더 나가길 요청하고 있었다. 얼음 조각의 운동이 수직 하강하며 ‘사회적인 것’을 복구할 것을 간청하고 있었다. 얼음조각으로 빙산을 바꾸라는 요청이랄까. 비정상이 정상인 것처럼 행세하며 두려움을 자아내는 스펙터클이 되어 버렸다. 그 스펙터클을 개인이 혁파해낼 순 없다. 언론의 운동도 그를 억누르는 경영책도 그 힘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모든 비정상을 정상인 것처럼 받아들이며 성장해온 젊은 세대에겐 그건 공포에 가까운 공리다.
‘사회적인 것’의 복원 없이 두려움도 떨칠 순 없다. 이번 독후감 제출의 앞자리엔 <공범자들>의 단체 관람이 있었다. 관람 후기 중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김민식 PD가 전한 아내의 말을 꼽았다. ‘만약 나서는 이가 당신 혼자여서 바보가 되면 어쩌지’라고 아내가 묻는 장면이었다. 사회적인 것을 가장 간명하게 설명한 장면이다. 만약 MBC가 바뀌고 세상의 언론이 바뀌면 가장 먼저 그 장면을 받들어야 하지 않을까. ‘사회적인 것’을 회복하고 그래서 개개인을 공포에서 벗어나게 도우며 언론의 정상화를 말해야 한다.
임명현 기자의 책을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과 겹쳐 읽었다. 주인공 일리치는 자신의 인생을 인정치 않고 죽음을 진정으로 걱정치 않는 세상을 원망한다. 죽음을 앞두고도 그 의미를 챙겨내지 못하다가 그처럼 의미 없는 죽음을 맞이할 찰나에 그의 손 등위로 떨어지는 막내아들의 눈물. 그제야 그는 알아차린다. 죽음은 사랑하는 것들과의 이별이다. 더 사랑하며 살아가는 삶을 만들지 못했음을 배우는 계기가 곧 죽음이다. 저널리즘은 죽어가던 그 순간에 무엇을 배웠을까. 세상을 더 사랑했어야 한다는 회한의 눈물을 흘렸을까. 서툴고 투박하고 겁에 질려 있는 젊은 세대의 글이 언론과 그 안에서 분투하는 이들에게 질문하고 요청하는 바였다.

 

Posted in 2017년 11.12월호, 격월간 방송기자, 방송기자가 쓴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