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 논문 읽기_“순응하지 않았고, 굴종하지 않았다”_MBC 임명현 기자 (뉴스QC팀 / 본지 편집위원)

왜 ‘이들’이 해직됐을까?
노종면, 조승호, 현덕수, 강지웅, 박성제, 박성호, 이용마, 정영하, 최승호. 왜 이들이 해직됐을까? 낙하산 사장 반대투쟁이나 파업에 참가한 여러 언론인들 가운데 하필 이들이 해직된 이유는 무엇일까?
논문을 쓴 김세은 강원대 신문방송학과 교수(이하 저자)는 이 질문에서부터 시작하고 있다. 표면적으로 이들이 해고된 것은 대부분 공식적인 노조 간부직을 맡는 등 주도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하필 ‘그런’ 시절에 노조 간부를 맡게 되었는가? 이들은 과연 어떤 언론인이었으며, 해직 이전에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회사 생활을 하고 있었는가? 이들에게 ‘공정방송’ 혹은 ‘자유언론’은 언제부터 중요한 가치가 되었는가? 저자는 이러한 물음에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21세기 한국 정치권력의 언론 통제 특징을 가시화하는 중요한 전략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저자는 해직 언론인 8명에 대한 심층인터뷰(투병 중인 이용마 기자 제외)를 실시했고, 이를 통해 이들의 생애사를 압축적으로 재구성했다.

“민주화, 자유, 사회, 역사”
해직 언론인들이 당초 언론사 입사를 결심한 이유는 저마다 달랐지만 어떤 지점에서는 공통의 키워드 추출이 가능했다. 우선 대체로 이들은 87년 민주화 항쟁의 세례 또는 영향을 받은 세대로 스스로를 규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진로 결정 과정에서 고시 합격을 통한 관료의 길, 또는 ‘평범한’ 직장인의 길에 대해서는 좀처럼 매력을 느끼지 못했음을 내비쳤다. 가령 “사시 공부를 주저주저하다가 잠깐은 했습니다. 그러다 이건 아니다.. 영화감독을 해야지 하다가 용기가 좀 없어서, 찾아보니 PD라는 직종이 있더라고요. 과목이 비슷하니까 기자 시험도 봤던 거고요”(노종면), “넥타이 매고 그렇게 회사 다니는 게 되게 싫더라고요”(정영하) 같은 인식이다. 보다 덜 틀 지워진 삶, 출세보다는 가치나 자유를 내면적으로 지향했음을 읽을 수 있다.
‘골수 운동권’이었다는 이는 아무도 없었지만, 공통적으로 ‘사회’에 대해 고민하던 바가 있었음도 관찰할 수 있었다.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은데, 언론인이 되면 그런 게 나을 것 같다”(조승호), “현실과 사회에 대한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직업적인 역할도 할 수 있는 게 뭘까”(현덕수) 같은 고민이었다. 이와 함께 “학교 다닐 때부터 역사를 무척 좋아했다”(강지웅), “역사를 매일 기록하는, 사초를 쓰는 사관의 일이 될 수 있겠다”(박성호) 같은, 역사에 대한 감수성도 함께 관찰할 수 있었다.

“맡은 부분에 최선을 다하자”
이들은 입사 이후 언론인으로서의 거창하고 남다른 의식을 갖고 일했다기보다, 자신이 맡은 부분에 최선을 다하자는 소신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고 회상한다. “기자라는 게 특별히 엄청난 게 아니라 자기가 맡은 파트만 잘 하면 전체적으로는 잘 굴러간다. 내 몫만 열심히 하자 생각했었어요”(조승호), “일에 푹 빠져서 살았어요. 일이 굉장히 적성에 잘 맞았거든요”(정영하), “입사해서 6년 동안 휴가를 간 적이 없어요. 일이 많으니까. 그리고 즐겁잖아요. PD 일은 정말 재미있잖아요”(강지웅) 같은 기억이다. 실제로 이들과 업무 현장에서 손발을 맞췄던 다수 후배들은 해직 언론인들이 ‘워커홀릭’에 가까울 정도로 일에 열정과 열심을 보였으며 그 점에서 모범을 보여줬던 이들이라고 기억하고 있다. 그렇게 이들은 언론인으로서 성장해 가는 동시에, 자신의 업무에 대한 확고한 전문성과 책임의식을 형성했다. “(1,2년차 시절) 적성에 사회부 기자가 안 맞는다”며 고민하던 기자가 이후 “시경 캡들이 다 그렇지만 제가 굉장히 하드하게 (후배들을) 조련한 편에 속하거든요”(박성호)라고 술회하게 된 것은 하나의 사례다.

‘마음이 약했기에’ 투사가 되다
그렇게 일에 중독되었다시피 했던 이들이 어느 날 노동조합의 중심에 서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들은 대체로 이명박 정권의 등장을 전후로 노조 위원장 또는 집행부 일을 맡게 되었는데, 당시를 기억하는 이들의 언어에서는 유독 ‘마음이 약해서’ 같은 말이 자주 등장한다. 보통 노조 일을 하게 되면 해당 임기 동안 현업에서 떠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선뜻 수락하지 않는 것이 대부분인데, 이들은 이명박 정권의 등장을 전후로 더욱 ‘어려워진’ 상황에서 자신을 향했던 제안을 거절하지 못한 것이다. “결국 마음 약한 사람이 하는 거예요”(강지웅), “뻔히 사정을 다 아는데 ‘그래도 못 하겠습니다’가 안 나오더라고요”(정영하), “내가 연수 먼저 갔다 왔으니까 내가 해야지”(박성제) 같은 마음가짐에 바탕을 둔 결심이었다.
여기서 이들의 ‘약함’은 어려움을 겪는 동료와 공동체에 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오히려 자신의 욕망과 속물성에 대해 이들은 ‘강한’ 모습을 보였다. 다시 말해 ‘마음이 약하다’는 말은 자신에 대해서는 강하지만 타자를 향해서는 약하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래서 마음이 약한 사람들은 자신 내부에 고립되지 않고 고통 속의 타인들을 향해 스스로를 확장해 나갈 수 있다. 고립을 넘어 연대하는 것이다.
그렇게 이들은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방송 장악에 대응해 싸웠다. ‘이길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의식적, 무의식적 불안감 속에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리고 상처투성이가 된 몸으로 해직이라는 권력의 보복을 오랜 기간 겪어내야 했으며 지금도 겪고 있다. 반면 타자의 고통과 어려움에 대해 쉽게 눈을 감는 강심장이면서, 자신의 욕망의 호명에는 취약했던 이들은 이 기간 동안 출세 가도를 달렸다. 저자가 주목한 YTN의 배석규, 윤두현, 홍상표 같은 사례에서 그것을 읽을 수 있다. 마음 약한 후배들을 탄압한 보상으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청와대 홍보수석으로 진출하고, 국회에도 기웃거리고 관련 요직에도 오르는 것이다. MBC 본사와 자회사, 지방사의 임원 등 요직을 독식하며 저항하는 구성원들을 탄압한 김재철과 김장겸, 안광한 같은 인물들 역시 마찬가지다.

상처의 극복
YTN 해직자들은 6인 전원 해고 무효 판결이 나왔던 1심이 뒤집히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 1심 판결을 뒤집은 고등법원 재판장은 부산 여중생 살해범 김길태에 대한 1심의 사형선고를 무기징역으로 감경한 이력이 있었다. “우리가 김길태보다 우리 사회에서 보호받을 가치가 없는가”(조승호)라는 충격이 그래서 컸다. MBC의 해직자들은 회사에 남아 탄압받는 동료들을 보면서 느낀 미안함이 컸다고 한다. “후배들을 만날 때마다, 나치 치하의 유태인 같기도 하고, 말할 수 없이 힘들어하는 걸 봐오니까 그런 미안함이 있어요”(박성호) 같은 고백이 그래서 나왔다.
무엇보다 해직자들은 정신적, 육체적 상태의 악화를 피할 수 없었다. 분노와 피해 의식, 우울감과 외로움 등 부정적인 감정이 커졌다. “혼자서 스피커 만든답시고 이렇게 하고 있으면 굉장히 힘들어요. 막 내가 뭐 하는 짓인가 생각도 하고. 약간 조울증 비슷한 상황을 겪었어요”(박성제) 같은 술회가 그렇다. 육체적 건강 역시 해쳤다. 이용마 기자는 복막암을 앓고 있으며, 조승호 기자는 당뇨가 생겼고 또 조승호 기자의 부인은 뇌출혈로 쓰러졌다가 극적으로 회복하기도 했다. 해직 사태가 당사자는 물론 그 가족의 정신적, 육체적 상태까지도 심각하게 악화시킨 것이다. “집사람이 (차기) 노조위원장을 못 구하면 노조가 문을 닫을 수도 있냐고 물어보더라고요.. 월급은 어떻게 되냐고 물어보는 거예요”(정영하) “YTN 노조는 400명이 좀 안 돼요. 노조 기금으로는 해직자 6명, 정직자 6명, 감봉자 등의 보전이 불가능해요. 그래서 희망펀드를 만들었어요”(노종면) 같은 술회에서도 나타나듯 경제적 압박과 불안 역시 이들이 겪어내야 할 문제였다.
그럼에도 이들은 해직의 장기화라는 고통 속에서도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유의미한 삶을 회복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대안 미디어 활동에 투신하거나, 학업에 열중하거나, 기술을 배우거나 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예외 없이 취재와 제작에 대한 갈증을 잊지 않으며 언론인으로서의 역할과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회사 안에서나 밖에서나, 이들은 언론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힘겨운 싸움을 계속한 것이다.

다시, 자율적인 공공의 언론을 위해
지난 시절 공영방송은 ‘최소한의 사실에 입각한 합리적 주장조차 제대로 구성해내지 못하는 비非언론’이었다. 해고와 정직, 부당전보 등이 남발된 공영방송에서 정권 비판적 보도는 자취를 감추다시피 했다. 저항하는 언론인은 ‘잉여’화되고, 남은 언론인은 ‘도구’화되기를 강제하는 권력의 강력한 지배를 경험하면서 언론인들은 자신들의 저항을 ‘유예’해왔다.
이제 촛불 혁명의 연장 속에 진행돼 온 양대 공영방송의 총파업 투쟁이 조금씩 열매를 맺고 있다. 그동안 탄압받아 온 공영방송 종사자들이 소망해 마지않았던 ‘방송 재건’의 출발점이 서서히 보이는 것도 같다. 이 지점에서 ‘순응하지 않았고, 굴종하지 않았던’ 선배들은 다시 한 번 가장 중요한 원칙을 환기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에게 있어 성역 없이 보도할 수 있는 자유, 거리낌 없이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자율성과 전문성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말 그대로 공공의 이익을 위해(현덕수), 진실을 말하는 언론이 되기 위함이며(최승호), 그 전제조건은 방송의 공영적 지배 구조이다(박성제). 그야말로 다시는 무너져서는 안 될 원칙일 것이다. 선배들의 명예로운 복직을 시작으로 재건될 공영방송에서는 언론인의 전문성과 자율성, 독립성이 ‘강물처럼’ ‘불가역적으로’ 흘러야 한다.

Posted in 2017년 11.12월호, 격월간 방송기자, 저널리즘 논문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