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_신고리 공론화, ‘숙의 민주주의’ 실험의 득과 실_SBS 정구희 기상전문 기자

신고리 5·6호기의 건설 재개가 결정됐다. 시민 471명이 깊이 고민해 원전의 앞날을 결정한 것이다. 이른바 ‘숙의 민주주의’로 불리는 실험적 과정을 통해 극심한 갈등을 해결했다. 이로써 우리는 새로운 원전을 통해 또 한 번 원자력발전 시대를 열게 됐다. 관점을 바꿔보면, 신고리 5·6호기의 수명이 다하는 2082년까지 ‘탈원전’은 불가능해졌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하는 건 결과가 아닌 과정일 것이다. 일부에선 ‘국민의 승리’라며 공론화 과정 자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또 다른 곳에선 대의제 민주주의를 우회한 ‘여론정치’란 비판도 함께 나왔다. 하지만 한 가지 사실은 분명하다. 이번 공론화 과정은 앞으로 찬반이 갈리는 갈등을 해결하는 데 중요한 시범사례로 활용될 거란 점이다. 얻은 것과 잃은 것을 냉정하게 평가해 봐야 할 이유이다.

대체재 마땅치 않은 원자력
원자력을 포함한 과학 분야를 취재해온 전문기자 입장에서 볼 때, 원전은 결코 이상적인 에너지가 아니다. 후쿠시마나 체르노빌 사고가 떠올라서가 아니다. (두 사고처럼 극단적인 사고가 우리나라 원전에서 발생할 확률은 사실 높지 않다) 그보다는 ‘원전 사용 후 핵연료’가 처리가 진짜 문제다.
사실, 원전에 사용되는 우라늄은 사용 전엔 사람이 만져도 될 만큼 전혀 위험하지 않다. 문제는 원자력 발전을 하고 나서 생긴 플루토늄과 세슘이다. 이것을 ‘사용 후 핵연료’라고 하는데 다가가는 것만으로 목숨을 잃을 수 있을 만큼 위험하다. 이 사용 후 핵연료 수백 개는 지금 12m 깊이 수조에 임시 보관돼 있다. 사용 후 핵연료가 안전해지려면 무려 30만 년이 걸린다. 사실상 안전해지지 않는다. 결국, 지하 500m 땅속에 묻는 게 현실적으로 유일한 대안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파묻을 부지조차 정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현실적으로 원자력을 포기하기 어려운 건 대체재가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기상 과학학적 관점에서 우리나라는 태양열이나 풍력, 조력, 수력 등 다른 종류의 에너지를 전력수급에 충분할 만큼 생산하기 쉽지 않다. 원자력이 좋아서가 아니라 다른 대안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원자력에 목을 맬 수밖에 없다.

객관적 정보 제공·학습과 토론
원전에 관심을 두기 전에는 이런 내용을 알기 어렵다. 이 같은 원전의 실제도 모른 채 정책을 결정하는 건 비합리적이지 않을 뿐 아니라 위험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시민 471명이 공부하고 또 고민한 뒤 정책을 결정했다라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다.
그동안 우리 정부는 일단 정책 방향을 정한 뒤, 그것에 동의하는 전문가를 내세워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경향을 보여 왔다. 그런 일방적인 정책 결정은 정작 그 정책으로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이들의 참여를 배제한다는 결정적인 한계가 있다. 이번 공론화 과정은 그런 권위주의 정책이 가져올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희망적 가능성을 제시했다.
더욱이 ‘여론’은 무작위로 뽑힌 시민들의 직감적인 의견인 반면, ‘공론’은 학습과 토론을 통해 정보와 지식을 갖춘 시민들의 이성적 의견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결과를 떠나 원전에 관한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됐고, 또 다수의 시민들이 객관적으로 그 정보를 따져볼 기회를 얻었다는 점은 이번 공론화 과정의 가장 큰 소득이다.

책임 회피, 우리 세대의 ‘이기심’ 반영
반면, 한계도 드러났다. 선거를 통해 선출된 국민의 대표자들에게 부여한 결정권을 다시 유권자에게 돌린다는, 이른바 외주화 문제가 그것이다. 다수가 깊이 고민하는 건 좋지만, 정부가 공론조사에 모든 의사 결정을 위임한 건 책임 회피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정책 결정권을 위임받은 국회가 아니라 대표성이 결여된 시민참여단이 결과를 내고, 정부는 그대로 따르겠다고 발표한 것은 결과에 대한 책임을 미루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관점에 따라선, 현재 세대의 ‘이기적 선택’으로 비칠 소지도 있다. 시민참여단의 59.5%가 “신고리를 건설해야한다.”라고 답했는데, ‘에너지 공급’과 ‘안전성’을 찬성의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원전이 생산하는 에너지가 지금은 절실하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앞으로의 원전 정책에 대해선 시민참여단의 53.2%가 “원전을 줄여나가야 한다.”라고 답했다. 당장 우리는 원전 없이는 못 살겠다면서, 미래 세대는 원전을 쓰지 말라는 뜻으로 읽힐 수 있다. 앞서 말했듯 신고리를 지으면, 우리는 2082년까지 원자력을 통해 전기를 손쉽게 생산할 수 있다. 적어도 우리 세대는 탈원전을 미루고 부담과 책임을 지지 않게 된 것이다. 미래 세대 입장에서는 이번 공론화 결정을 ‘역사적인 현장’이라고 평가하진 않을 수도 있다.

시험대에 오른 ‘숙의 민주주의’
3개월간 진행된 ‘실험’은 마무리됐다.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도, 한계를 지적하는 사람도, 이번 공론화 작업이 앞으로도 자주 활용될 것이라는 전망에는 이견이 없다. 그래서 그 선례를 어떻게 평가하고 보완하느냐는 숙제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 숙제에 대해 깊은 고민 없다면 이번 공론화 결정은 ‘역사적인 현장’이 될 수 없다. 그저 ‘현실적 선택’ 사례로만 남을 뿐이다.

Posted in 2017년 11.12월호, 격월간 방송기자, 현장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