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기고_노조가 왜 ‘정치적 투쟁’ 하냐 묻기 전에_조항제 교수 (부산대학교 신문방송학과)

KBS, MBC 한국 공영방송의 양대 노조의 투쟁이 성공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드디어 10일에는 MBC 김장겸 사장의 해임안이 상정된다고 한다. 서서히 끝이 보이는듯하다. 그러나 이런 방송 노조의 투쟁에도 여러 비판의 말들이 같이 따라다닌다. 너무 정치적이라든가, 너무 자주 한다든가 또는 너무 진보적이라든가 등등. 이 짧은 글은 이런 말들이 과연 얼마나 의미가 있나, 과연 진실인가를 추적해보고자 하는데 목적이 있다.
우선 가장 많이 나오는 정치성 부분부터 보도록 하자. 노동조합은 이름만으로 보면 ‘노동’ 조건과 관련된 경제적 부분에 주력(해야)하는 그런 조직이다. 이 때문에 노동조합이 정치적 주장을 하면 무언가 어울리지 않는 행위를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이런 비판은 한국 공영방송의 노동조합이 왜 생겼는지를 전혀 모르는 무지의 발로다. 그 과정을 알게 되면 이런 비판은 할 수 없다는 뜻이다.

방송사 노조의 기원
민주화 과정에서 한국의 방송인들은 기쁘기보다는 참담했다. 평화의 댐 건설비를 모금하면서 ‘앵벌이’를 하는 기분이었다는 손석희의 술회에서 본 바대로 그들은 부역자에 가까웠다. 시위 현장에서 방송인들은 외면과 지탄을 한꺼번에 받았다. 심지어 중계차가 불타는 일도 있었다. 민주화가 되자 이들은 자신의 모습을 심각하게 반성했다.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수 있는 방안을 고민했다. 군부의 재집권 때문에 이 고민은 더욱 절박해졌다. 외부에서 부당한 압력이 들어와도 내부가 흔들리지 않아야 했다. 그러려면 힘이 필요했다. 단체행동권을 비롯해 노동3권이 법적으로 보장된 노동조합은 이 경우 최적의 조직이었다. 기자협회나 프로듀서협회 같은 동업자조직으로는 법적 권리를 보장받을 수 없었다. 한국 공영방송의 노동조합은 방송인 스스로 독재 정권의 부역자가 되지 않기 위해 만든 자구책이었던 것이다.

방송사 노조, 산업적 노조와 다르다
이런 노조가 정치행위를 하는 것은 다분히 외압이 개시되고 난 ‘사후의’ 일이다. 지금까지 KBS와 MBC의 노동조합이 파업을 한 사유나 일수를 보면, 대부분이 사장의 거취나 공정방송과 관련되어 있고 이 경우에 시일 또한 길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정치(대통령)와 직간접적 연관이 있어 뚜렷하게 외압의 대행인 역할을 할 것 같거나, 공정방송과 관련된 단체협상을 이유 없이 무시했거나, 보도를 포함한 해당 부서에 부당한 인사·압력을 행사한 사장들을 거부할 때, 노조들은 파업권을 행사했다. 임금 같은 처우 개선에 신경을 쓰는 ‘산업적 노조주의’와는 다른 ‘전문직적 노조주의’야말로 이들이 추구하는 방향이었다. 전문직적 노조주의에서 중요한 것은 생산물의 질이다. 기자 노동으로 말하면 보도의 공정성과 심층성이다. 이를 실현하는데 사장이 장애가 된다면, 이들은 파업도 불사했던 것이다.

방송을 ‘정치’로 만든 건 정권
나는 이 부분에 한국사회의 합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경위는 이렇다. 민주화가 되면서 공영방송도 도마 위에 올랐다. 제도 또한 당시 정부가 방송을 지배하는데 중요한 명분으로 동원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우리 사회는 민영·상업방송보다 공영방송이 좀 더 방송의 민주화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다. 여기에는 당시 어렵사리 결성된 노동조합이 크게 일조했다. 이제는 설사 정치권이 무언가를 의도한다 해도 내부가 쉽게 따라가지는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를 잘 보여준 것은 MBC와 KBS의 사장 거부 투쟁이었다. 과거와 같은 노골적 지배가 어렵게 된 정부는 자기 사람 심기를 통해 정부가 후견인이 되고 사장이 피후견인이 되는 후견주의를 시도했고, 공영방송들이 이에 저항하면서 수십 년간 파업투쟁이 이어졌다. 파업의 원인 제공자는 그런 사장을 임명하는 정부인 것이다.
왜 그렇게 파업이 잦을까? 왜 꼭 시기가 정치적으로 특정한 때일까? 잦은 이유는 간단하다. 그만큼 후견주의의 시도가 많고 뿌리 깊었던 것이다.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야말로 후견주의의 창궐기이다. 당시 방문진 이사장이었던 김우룡의 증언이나 민정수석이었던 김영한의 비망록이 웅변하듯 KBS나 MBC의 일은 정치 바깥의 것이 아니라 정치 안, 그것도 매우 핵심적인 것으로 청와대는 이를 일상적으로 챙겼다. 왜 그런 민감한 시기에 벌어지느냐는 질문에도 쉽게 답할 수 있다. ‘민감한’이란 선거를 가리키는데, 그렇다면 이전에는 어떠했는지를 보면 된다. 자료를 살펴보면, 거의 예외 없이 선거 이전에도 공정방송협의회가 수차례 문제를 제기한다. 선거마저 이런 불공정에 묻혀버리면 다시 한 번 역사의 누累가 될지도 모른다는 절박함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그러니까 민감한 때의 파업은 이전부터 곪아왔던 병증을 막기 위한 결과이지 결코 건강했던 몸을 해치는 자해행위가 아니다.

헌법 가치 수호가 진보편향 인가
마지막으로 정치적으로 중립적이지 않다, 진보적이라는 비판이다. ‘보수정부와 진보노조 사이의 대립’은 꽤 많이 퍼져있는 관점인 듯하다. ‘진보적’이라는 말이 뜻하는 게 분명하지는 않지만, 내가 봐도 약간은 그런 요소가 있다. 이에는 노동조합의 조직 특성도 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왜냐하면 노조이므로 노동3권을 좀 더 잘 보장해주고, 이와 친화적인 민주주의와 인권에 좀 더 관심을 기울이는 이념이나 정당과 가까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때문에 중립적이지 않다는 비판은 어불성설이다. 왜냐하면 노동권과 민주주의, 인권은 모두 헌법이 규정하는, 대한민국의 국민이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권리이기 때문이다. 이런 권리를 주장하기 때문에 진보적이라면, 차라리 헌법을 진보적이라고 해야 한다.
물론 노조에 문제가 없지는 않다. 그러나 적어도 항간에 떠도는 것들은 아니다. 정당한 비판을 하고 정당하게 논쟁을 벌여야 노조도 성장하고 한국의 방송도 성장한다. 2017년이 한국의 방송과 노조가 민주적 방송의 성숙기에 진입하는 원년이 되길 기대한다.

Posted in 2017년 11.12월호, 격월간 방송기자, 특별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