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직 언론인, 이렇게 삽니다_이런 글은 이제 마지막_박성호 MBC 해직기자

박사 논문을 쓰던 막판 몇 달은 기계처럼 살았다. 아침 7시면 모 교수님의 연구실 바닥에서 녹색 비상구 등을 올려다보며 눈을 떴다. 접이식 침대에 겨우 펼쳐놓았던 몸뚱이를 일으켜 세우고, ◯◯ 건강랜드라는 사우나로 바삐 향했다. 쑥탕, 온탕, 열탕, 냉탕 등을 오가며 그날 작성할 내용들을 떠올리고 가르고 늘어놓았다. 탕 안에서 솟구치는 거품처럼 아이디어와 질문이 하루 중 가장 넘치는 시간이었다. 그것들을 흩어진 포말처럼 흘려버리지 않으려면 뇌와 입이 부지런해야 했다. 머릿속을 채우고 나면 샌드위치로 배를 채웠다. 열람실 창가 자리에 홀로 앉아,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각도로 들어오는 태양광선 혹은 아침 냄새를 확인하고 본격적인 집필 시작. 중간에 수시로 졸긴 했지만 새벽 1시까지 같은 자리에 14시간 정도 엉덩이를 붙였다가 접이식 침대로 복귀해도 시간은 모자랐다. 그러다 보니 논문 제출 전 3개월 동안 집에서 잔 날은 닷새를 넘기지 않았다.

박사가 되고 보니
나의 해직기간 대부분을 차지한 대학원 생활은 (깨놓고 말해) 기자 생활에 비해 전혀 느슨하지 않았다. 밤샘은 스무 번을 넘겼고, 휴일 등교는 당연했으며, 방학은 기억에 없다. 모든 수업과 모든 과제에 전력투구했다. 그래도 고달프지 않고 힘이 솟았다. ‘워커홀릭’ 습관을 버리지 못했다는 회사 선후배들의 핀잔도 있었다. 하지만 빼앗긴 ‘일’ 대신하는 것이니 허투루 하고 싶지 않았고, 행여 복직이 되지 않으면 시간강사로 제2의 인생을 출발해야 할지 모르니 설렁설렁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해서 지난여름 나는 언론학 박사가 됐고, 학위논문은 생각지도 않았던 관심과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뿌듯함보다는 허전함이 컸다. 편안한 침대에서 일어나고 점심 식사에 두 시간씩 쓰는 이완된 삶이 편치 않았다. 치열했던 전장에서 평온한 고향 마을로 돌아오니 적응 못하는, ‘디어 헌터’나 ‘허트 로커’ 같은 영화의 참전군인 캐릭터 흉내라도 내듯 말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다시 ‘백수’가 된 것이 편치 않았던 모양이다. 황량한 현실을 대신해 뭔가에 열정적으로 미치도록 했던 ‘약’이 떨어지자, 금단 증세를 느끼게 된 모양이다. 그러던 차에 내 몸은 정신적 망명지였던 안암동을 떠나 총파업의 현장인 상암동으로 자석처럼 끌려갔다.

안암에서 상암으로
5년 만에 다시 하는 파업은 퍽 달랐다. 날마다 화두를 받아드는 느낌이었다. 더 이상 뉴스를 진행하면 자기들도 부역자가 되는 것 같다며 사표를 낸 20대 중반의 비정규직 AD 5명을 보며, 금요일 밤마다 돌마고 집회에 참석해 함께 ‘김장겸은 물러나라’고 구호를 외쳤던 시민들을 보며, 합동분향소로 찾아뵈었을 때 ‘당신들은 쓰레기였다’라며 치를 떨던 세월호 가족들이 집회장을 방문해 파업 지지 선언을 해 주시는 것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우리는 이렇게 받기만 해도 괜찮은가? 우리는 그들의 눈물과 응원과 용서에 어떻게 값할 것인가?
나는 그 해답을 시민의 목소리에서 찾았다. 공영방송 정상화를 주제로 한 세미나 자리에서 노년의 한 신사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공영방송이 무엇이다, 라는 걸 다시 보여줘야 합니다.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공영방송의 위상과 지향을 정립해야 합니다. 노사 갈등의 문제가 아니라 방송사 내부에서 견제와 균형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을 보여줘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시민들의 눈은 돌아가지 않습니다. 이제는 MBC와 KBS를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습니다. 공영방송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줘야 합니다.” 이렇게 집회장에서, 거리에서, 세미나에서 듣고 생각할 기회를 가지면서 나의 언론학 공부는 학교 아닌 곳에서도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나는 이번 파업을 성찰적 파업이라고 부르고 싶다.

나는 김재철에 분노하지 않는다
그 때문일까? 검찰청사에 불려나온 김재철 전 사장을 현장에서 봤을 때 그리 통쾌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흔히들 말하는 사필귀정事必歸正을 인용하고 싶지도 않았다. 악인에 대한 응징으로 개인화할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김재철은 MBC를 다시는 일어설 수 없도록 흠씬 두들겨 팬 ‘망치’이고 김장겸은 의식불명에 빠진 MBC를 난자한 ‘칼’이다. 그러니까 개인의 몰락이 아니라 정치권에 빚지고 그 자리에 앉았던 ‘도구’들의 말로로 봐야 한다.
만신창이가 된 피해자를 보며 슬퍼하고, 범행도구에 섬뜩함을 느꼈다면, 망치와 칼을 ‘집어 든 손’에도 시선을 고정시켜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권력과 언론의 관계, 정치권력의 언론 장악이라는 문제가 핵심이다. 그러니 김재철과 김장겸이라는 둔기와 흉기가 최후를 맞더라도, 문제는 종결되지 않는다. 정치권력이 공영방송 사장에 자기 편한 사람을 앉히려는 ‘정치적 후견주의’가 함께 청산돼야 한다.
다행히 ‘공범자들’의 퇴장이 시작됐고, MBC가 국민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리고 있다. 해직 언론인들이 돌아가며 써 왔던 이 코너도 이제는 작별을 고하고자 한다. 며칠 뒤면 나도 해고 2000일이다.

Posted in 2017년 11.12월호, 격월간 방송기자, 해직언론인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