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물러나라’ 이후의 과제 ⑥_‘물러나라’ 이후, 무엇을 할 것인가(자율성 확보와 편집권 독립)_김세은 교수 (강원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왜 편집권인가
언론에 대한 외부로부터의 압력과 통제가 저항과 투쟁의 대상이라는 점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그 누구도 헌법적 가치로 보장되는 언론의 자유를 (왜곡할 수는 있어도) 부정할 수 없으며, 그에 대한 도전은 곧 민주주의의 기본을 위협하는 것으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당위적 정당성을 갖는다. 문제는 언론 내부로부터의 압력이다. 편집권 독립을 위한 적합한 장치가 자율적으로 마련되지 않는 경우 타율적으로 그러한 장치를 제도화할 수도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인데(한국언론2000년위원회),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방송법 개정안 가운데 노사 동수 편성위원회 구성이 포함되어 있고, 방통위 역시 방송의 공공성과 독립성을 위한 두 축으로 지배구조 개선과 제작·편성 자율성 문제를 접근하는 것은 그런 점에서 당면한 방송 현실을 잘 반영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언론의 독립성이 지배구조 문제와 직결된다면, 언론인의 자율성은 공정성의 기본이며 전제조건이다. 자율성은 뉴스나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전과정에 걸쳐 확보되어야 한다는 데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이러한 자율성은 “언론인들이 외부의 간섭 없이 자유롭게 신문이나 뉴스프로그램을 제작할 권리”로서, 언론사 외부는 물론 내부 경영진의 부당한 간섭이나 압력으로부터도 자유로워야 한다는 ‘편집권’으로 개념화될 수 있다(장호순, 2001, 72쪽). 다시 말해, 편집권은 언론의 독립성과 언론인의 자율성을 훼손하려는 내외부의 다양한 압력에 대한 일차적이자 직접적인 방어막인 것이다. 그 상대가 국가권력이든, 사주나 경영진이든, 보직 간부든, 뉴스와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일선의 언론인들의 직업적 자율성과 전문성을 존중하고 확인해주는 효율적 장치로 기능할 수 있다.

‘언론사’의 자유, ‘언론인’의 자유
우리나라에서 편집권의 문제는 언론 자유의 역사와 결을 같이한다. 언론 자유 개념은 정치권력으로부터의 자유뿐 아니라 언론사 내부의 다양한 압력으로부터의 자유라는 이중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박진우·김설아, 2014). 정치권력으로부터 오랜 통제를 겪었던 현실에서 편집권 개념은 “정치권력을 포함한 외부세력에 대한 언론조직의 자율성”이 강조된 측면이 있지만, 상업주의가 강화되면서는 “언론조직 내부에서 자행되는 경영부문의 부당한 간섭에 대한 편집종사자들의 자율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되어 왔다(박홍원, 2011, 127-128쪽).

1988년 이후 편집권 독립을 위한 제도들이 도입됐지만, 오늘날 한국 언론의 현실은 정치권력과 자본, 그리고 그 대리인으로서의 경영진으로부터 편집권 침해가 심각하게 우려되고 있다. 언론인 사찰, PD수첩 아이템 개입과 보도가이드라인 등 최근 줄줄이 터져 나오는 문건들은 우리 언론의 상황이 다시금 70, 80년대로 회귀했음을 보여주는 일련의 사례들이며, 이러한 시점에서 편집권은 언론의 독립성과 언론인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확인해주는 중요한 개념이다.

외부로부터 통제뿐 아니라 조직 내 경영진의 우월적 지위를 감안할 때 편집권은 언론 내부의 민주주의 문제로 연결된다. 그런 점에서 독일의 ‘내적 언론 자유(innere Pressfreitheit, internal press freedom)’ 개념은 매우 유용하다. 1971년 독일 뮌헨에서 채택된 ‘언론인의 권리와 의무 선언’은 언론인의 법적 지위와 권리, 저널리즘 윤리강령의 유럽 공동 협약으로, 내적 언론 자유의 이념이 적극 반영되어 있다(박진우·김설아, 2014, 419쪽).

제3조. 기자는 강제적으로 직업적 행위를 수행할 필요가 없고 자신의 신념과 양심에 반대되는 의견을 표현하도록 강요당할 수도 없다.
제4조. 편집국은 회사의 운영방향에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결정에 대해 보고를 받을 권리가 있다.또한 회사는 최종 결정을 내리기 전 채용, 해임, 인사이동, 승진 등의 편집국 구성에 대한 모든 조치에 대해 편집국과 의논해야 한다.
제5조. 기자라는 직업의 기능과 책임성을 고려하여,기자는 집단적 협약의 특혜를 받을 권리가 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물질적ㆍ정신적 안전을 보장해줄 수 있는 계약을 체결할 권리가 있고,기자가 갖는 사회적 역할에 걸맞으며 경제적 독립을 보장해주는 충분한 보상을 받을 권리가 있다.

영국의 경우도 유사한데, 권위주의적인 신문사 구조를 민주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의미에서 ‘언론 내부 민주주의(press internal democracy)’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다(박홍원, 142쪽). 미국은 편집권에 상응하는 ‘편집방침’ 결정권 개념이 있지만 잘 쓰이지 않고 있는데, 그만큼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미국은 언론 자유라는 기본권을 재산권이나 소유권과 밀접하게 보지만, 언론의 편집 기능의 자율성이 잘 보장돼 있어서 경영자는 일반적인 편집방침을 정할 뿐이고 개개의 편집 업무는 편집진의 자율적 결정에 맡겨지는 사회적 관행이자 전통의 형태로 지켜지고 있다(임영호, 2001, 224쪽).

양심의 자유 수호를 위한 장치
내적 언론 자유의 핵심은 언론기업 내부에서 편집인이 발행인에 대해 편집의 독립 및 자유를 주장할 수 있는지의 여부에 관한 것이며, 그 기본정신은 정치적인 소유주의 압력에서 편집의 독립과 기자의 양심의 자유를 보호함으로써 언론의 자유를 신장한다는 것(Ascherdon, 1978, pp. 124-125. 박홍원, 140쪽에서 재인)이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프랑스에서는 언론인의 양심 수호를 우선순위에 두고 편집권이나 내적 언론 자유를 이를 구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의 차원으로 간주한다(박진우·김설아, 2014, 412쪽).

우리가 절절하게 경험했던 바와 같이, 언론에 대한 각종 압력은 결국 무엇을 어떻게 보도할 것인지에 대한 것과 직결된다. 그 과정은 시민의 알권리와 관련되지만, 그 결과는 시민의 알권리를 넘어 여론의 조작이나 왜곡으로 나타난다. 그간 사주나 경영진이 정치·경제적 권력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는 점은 경험적으로 ‘충분히’ 입증되었으며, 그러한 유착 혹은 굴종으로 인한 폐해는 언론의 신뢰 저하로 이어진다. KBS나 MBC, YTN, 연합뉴스 등 정치권력이 사장을 임명하는 언론사뿐 아니라 사주가 있는 SBS도 예외가 되지 못했음이 증명되었다.

편집권은 경영진의 전유물 아니다
편집권이 누구에게 속하는가 하는 문제는 오랫동안 논쟁의 대상이 되어왔다. 일반적으로 외부의 압력에 대해 발행인 혹은 사주나 경영진과 기자의 공동협력으로 실현해야 한다는 규범이 성립하지만, 현실적으로 노사간의 협력이 자율적으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에 내적 언론자유를 실현할 방법으로 독일에서는 편집규약을 법률로 규정하는 방안이 제시된 것이다(박홍원, 147쪽). 더욱이 정치권력, 자본권력과 유착된 경영진의 언론 망가트리기 행태가 끊이지 않았던 한국 언론에서 누구에게 편집권이 있느냐 하는 것은 더 이상 논쟁의 대상이 되기 어려우며, “일반 기업과 달리 방송사 등 언론매체의 경우 방송의 객관성·공정성을 유지할 의무가 있으며, 이 의무는 헌법이나 방송법에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공정방송의 의무는 기초적인 근로조건에 해당한다”, “방송의 공정성은 방송의 결과가 아니라 그 방송의 제작과 편성 과정에서 구성원의 자유로운 의견 제시와 참여 아래 민주적으로 의사결정이 이뤄졌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될 수밖에 없다”라는 법원의 판결문은 이러한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다.

민주주의에서 언론이 중요한 이유는 여론 형성에 있고, 여론은 제대로 된 정보 전달을 기본으로 한다. 우리 언론의 역사는 경영진이 외부의 압력에 맞서 스스로 공정방송을 지키는 노력을 포기하고 그에 저항하는 구성원들을 부당하게 억압한 대가를 취해왔음을 증명하고 있다. 이는 언론 자유를 수호하는 책임과 권한이 경영진이 아닌 구성원들에 있음을 주장이 아닌 명확한 당위로 만들기에 이르렀다.

이 시점에서 편집권 독립에 주목하고 주장하는 것은, 기자를 ‘기레기’로 호명하는 현실에서 언론인이 자괴감과 무력감으로 고통을 받고 있지만 정작 그들을 ‘기레기’로 만든 자들은 정권이 바뀌지 않는 한 그저 끼리끼리 어울리며 “잘들 사는” 세상을 결코 다시는 만들지 않겠다는 의지의 구현으로 이해할 수 있다. 수많은 언론인들이 파업까지 마다하지 않으며 그토록 갈구하던 공정방송은 과연 무엇이었나? 어떤 방송이었나? 이제 언론인들 스스로 그것을 증명하도록 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 언론 자유 수호의 주체로서의 지위를 인정하고 자율성을 보장하는 각종 제도와 방안을 마련하고 실행해야 한다. 나아가 자율성 침해 사례는 철저하게 기록으로 남기고 공유해야 하며, 나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기자 전체의 문제, 언론 자유의 위협으로 인식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려면 나의 취재와 보도가 언론을 구성하고 대표한다는 자신감과 책임감이 수반되어야 하며, 그 기반은 철저한 전문성에 두어져야 한다. 공부하는 기자, 토론하는 언론인이 되어야 하는 이유다.

참고문헌
박진우·김설아 (2014). 언론인의 양심 보호 조항을 통한 편집권 독립 및 내적 언론자유의 재검토.
  <커뮤니케이션이론>, 10권 4호, 404-442.
박홍원 (2011). 편집권 독립과 언론의 자유. <언론과학연구>, 11권 1호, 123-156.
임영호 (2001). 언론자유와 편집권. <관훈저널>, 82호, 217-225.
장호순 (2001). 편집권과 경영권은 분리돼야. <관훈저널>, 80호, 72-78.
한국언론2000년위원회 (2000). <한국 언론의 좌표>. 서울: 관훈클럽.

 

Posted in 2017년 11.12월호, 격월간 방송기자, 특집_물러나라 이후의 과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