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물러나라’ 이후의 과제 ⑤_MBC 제작 자율성 확보 위한 두터운 시스템’_MBC 남상호 기자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민실위 간사)

이번 파업 기간 동안 언론노조 MBC본부는 MBC 기자협회, 영상기자회와 함께 지난 5년간 MBC 뉴스를 돌아보고 있다. 제작 자율성을 심각하게 침해당한 상황에서도 왜 구성원들이 계속 후퇴하고 무너질 수밖에 없었는지를 되돌아보고 반성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는 길을 찾기 위해서이다. 임명현 기자가 분석했듯 이 과정에서 많은 기자들이 취재 현장에서 배제되거나, 기사를 쓰는 도구로 전락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사측이 일방적으로 단협을 파기하면서 공중분해된 공정방송협의회(공방협)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거의 유일했던, 공정방송을 위한 공적이며 구성원들을 대표하는 장치가 사라지면서 구성원들은 개인적인 저항으로 몸부림치다가 한계에 부딪히고 말았다. 제작 자율성을 되살리고 MBC를 재건하기 위해서는 이제 공방협 말고도 더욱 두터운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편집회의 투명하게 공개
먼저 ‘정책 설명회’의 부활이 필요하다. 보도국장 등 보도프로그램의 책임자가 저널리즘에 대한 자신의 소신을 밝히고 임기 중 어떤 뉴스를 지향할 것인지를 구성원들에게 공식적으로 밝혀야 한다. 정책 설명회 과정에서 나온 구성원들의 제안이나 의견이 수용 가능한지도 일정 기한 내에 공개해야 한다. 그래야 구성원들이 보도 책임자가 자신의 청사진을 이행하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매일 아침 그날의 주요 뉴스를 정하는 ‘편집회의’ 공개도 필요하다. 이는 밀실에서 이뤄지는 뉴스 사유화나 편향적 보도 지침을 막기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상명하달 방식의 아이템 제작을 막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회의 내용이 공개되고 기록돼야 부서에서 먼저 아이템을 적극적으로 발굴해서 편집회의에서 논의하도록 하는 인센티브가 될 수 있다. 다뤄야 할 가치가 있는 아이템이 발제되지 않았다면 구성원들이 직접 편집회의에 아이템을 발제할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보도국장 책임제 도입
임원들의 부당한 간섭을 봉쇄하기 위해 프로그램에 대한 ‘국장 책임제’가 필요하다. 그리고 국장 역시 이 책임과 권한을 각 부서와 구성원들에 위임을 해야 한다. 법원은 MBC라는 방송사에서 ‘공정방송’이라는 가치는 어느 한 쪽의 몫이 아니라 구성원 모두의 책임이자 권리인 노동조건이라고 일관되게 인정해 왔다. 프로그램의 책임자를 직원 단계에 두는 것이 이런 가치를 구현하는 길이다.
업무의 특성상 취재와 제작은 개인 또는 소규모 팀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수많은 구성원들의 업무 진행 상황을 일일이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할뿐더러 비효율적인 일이다. 구성원 각자가 스스로 부담 없이 역량을 발휘하도록 권한을 위임해야 시청자를 위한 양질의 콘텐츠, 양질의 보도가 만들어진다. 상급자들은 이 보도가 사실과 진실에 근거한 것인지를 확인하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다만 심각한 오보나 왜곡 등으로 위임받은 책임과 권한을 견제 없이 남용한 행위에 대해서는 엄중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

구성원 의사 물어 본부장·국장 선임
이런 인사제도는 대표이사와 임원, 간부들에게까지 모두 적용되는 원칙이어야 한다. 현재 MBC의 사장 선임 절차는 방송문화진흥회의 주도로 이뤄진다. 그러나 방문진 이사를 행정부에서 임명하고, 그 과정에서 정치권의 추천이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입법부와 행정부가 MBC의 대주주를 임명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국민과 시청자의 의사는 제한적이고 간접적으로 반영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앞으로는 MBC 사장 선임에 국민들의 의사가 직접적으로 반영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런 장치가 있다면 김장겸 사장 선임처럼 탄핵당한 정권의 사장 알박기도, 시청자가 아닌 특정 정치 세력을 보위하는 뉴스도 불가능해질 것이다.

본부장이나 국장 임명에는 구성원들의 의견이 적극적으로 반영돼야 한다. ‘임명 동의제’나 ‘추천제’가 구체적인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불신임 제도 역시 도입해야 한다. 앞서 말한 정책 설명회의 공약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거나 부당하고 불공정한 방향으로 뉴스를 이끄는 상황을 강력하게 견제해야 하기 때문이다.
‘상향 평가’ 같은 다면 평가도 부활시킬 필요가 있다. 부서원들로부터 평가는 받지 않고, 국장이나 임원들에게만 평가를 받는 상황은 각 부서장들이 임원과 수뇌부에게만 충성하게 만들도록 작용했다. 아래로부터 올라오는 의견은 부담 없이 묵살할 수 있었다. 이는 결국 현장에 있는 기자들의 자율성과 아이디어를 차츰차츰 위축시켜왔다. 상향 평가의 결과를 부서장 인사에도 반영해 아래로부터의 의견을 묵살하지 않고 존중하게 만들어야 한다.

순서를 붙이기는 했지만 이런 제도적 장치들에 우선순위가 있거나 일부만 도입되면 충분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어느 하나 포기할 수 없는 필수적인 조건들이다. 제작 자율성을 보호하기 위한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모든 제안들이 유기적으로 작동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이런 장치들은 어느 한 쪽이 마음대로 파기할 수 없는 수준의 규약이 되어야 한다. 관련 법률과 사규, 단협, 강령, 준칙의 모든 단계에 이런 내용과 목적이 포함되도록 개정해야 한다. 물론 지난하고 시간이 걸리는 일일 수 있다. 승리의 첫 단추를 끼웠다고는 하지만 MBC 구성원들이 ‘우리의 싸움은 이제 시작’이라고 다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Posted in 2017년 11.12월호, 격월간 방송기자, 특집_물러나라 이후의 과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