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물러나라’ 이후의 과제 ②_“거부권 행사장치..KBS·MBC도 마련해야”-윤창현 언론노조 SBS 본부장_SBS 한세현 기자

 

일시  2017년 10월 25일  
장소  서울 목동 SBS 사옥 
인터뷰  SBS 한세현 기자(경제부, 본지 편집위윈)

 

KBS와 MBC 총파업이 한창이던 지난 10월 13일, 충격적인(!) 희소식이 전해졌다. SBS가 언론사 최초로 ‘사장 임명동의제’를 도입하기로 한 것이다. 조직을 잘 이끌기 위해선 구성원들의 동의가 필요하다라는 명제는 상식이다. 하지만 이런 상식이 지켜지지 않았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그동안 우리는 숱하게 목격해 왔다. 이 상식을 지켜내려고 노력한 SBS 윤창현 노조위원장을 만났다.

무너진 신뢰

언론사 최초로 ‘사장 임명동의제’를 이끌어냈습니다. 새로운 제도가 왜 필요했다는 건, 역설적으로 그만큼 현실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반증하기도 합니다. 오늘날 우리 언론을 어떻게 진단하셨나요?
최근 몇 년 동안 방송보도에 대한 국민 신뢰가 무너졌습니다. 처참히 무너졌죠. 특히, 지상파 방송사에 대한 불신은 정말 심각한 수준입니다. 원인이 뭘까? 많은 분석이 있을 수 있지만, 전 궁극적으로는 언론이 정치권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정치권력이 언론사 인사에 개입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이 갖춰져 있고, 그 틀을 통해 조직 구성의 동의를 받지 않은 이른바http://reportplus.kr/wp/wp-admin/post.php?post=21120&action=edit# 낙하산 인사들이 내려왔습니다. 그들은 방송을 권력의 시녀로 만들어 바치고, 그렇게 우리는 서서히 무너져갔던 거죠.

사실, 정치권력이 언론에 지나치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문제는 어제 오늘의 문제는 아니긴 합니다. 최근 들어 그런 문제가 더 심해졌다고 보신 건가요?
그렇죠. 당장 최근 9년 동안 KBS와 MBC가 어떻게 됐는지를 보세요. 보통 문제가 아니란 게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이미 기사도 수없이 나왔지만, 권력에 아첨하는 편향된 보도와 프로그램들이 쏟아졌잖아요. 민영방송인 SBS도 예외가 아닙니다. 저희 노동조합이 노보를 통해 문제를 제기했던 ‘4대강 보도’도, 그 건은 물론 대주주의 사적 이익과도 관계가 있었지만, 어쨌든 SBS는 당시 정부가 밀어붙였던 국책사업을 무비판적으로 따라갔던 겁니다. 내부의 반발과 비판적 취재가 무력화됐죠. 이런 과정들을 보면서 우리 언론이 처참하게 무너져가고 있다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었죠.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신다면요?
제가 직접 경험한 SBS에 대해서만 얘기하자면, 카이로 특파원으로 갔다가 복귀하고 나서 가장 느낀 큰 변화는 최소한의 문제제기나 토론조차 사라져버린 보도국 내 문화였습니다. 상식적인 문제 제기와 토론조차 사라져갔죠. 굉장히 놀랐습니다. 그런 과정들이 반복되면서, 조직문화 자체가 완전히 망가져 버린 거죠. 문제제기하는 것 자체를 문제라고 지적하고, 문제제기한 사람들은 한직으로 보내버리고…. 그렇다 보니, 편향된 기사와 방송들이 아무런 견제 없이 마구 돌아다녔죠. 이걸 내버려 두다가는 큰일 나겠다 싶어서 노동조합에 온 뒤로 지속적으로 문제제기를 했지만, 좀처럼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모든 문제는 ‘사람’으로 귀결”

사장 임명동의제를 내세운 것도, 이 모든 문제의 출발점이 ‘사람’이라고 보신 거죠?
맞습니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인사라는 도구를 통해 정치권력은 매우 정교하게 언론을 통제해왔습니다. SBS는 제도적으로는 민영방송이기에 정치권력이 직접 개입할 수 있는 길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최고경영자들은 알아서 정치권력과 대주주의 사익에 맞춰 움직였습니다. 대주주 스스로 퇴임 전 밝혔듯 대주주는 정권의 눈치를 봤었고, 책임감을 가져야 할 경영진은 숨죽이며 따라가기에 급급했습니다. 민영방송인 SBS도 이런데, 하물며 KBS와 MBC는 말할 것도 없겠죠. 어쨌든 결국 사장을 선임하는 권리가 정치권력과 대주주에 의해 일방적으로 행사됐고, 사장을 포함한 임원들 상당수가 거기에 부역한 거죠. 이런 과정이 무렵 9년 동안이나 반복됐습니다. 언론으로서 가져야 할 비판 기능과 방송의 독립성, 자율성, 이런 것들을 자신의 영달을 위한 뇌물처럼 써먹어버린 거예요. 그래서 사장 선임 절차를 바꿀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측 반발도 적지 않았을 거 같은데요?
당연히 반대가 심했죠. “대주주가 대표이사를 임명하는 건 상법상 권리다” “그건 절대 포기할 수 없다”라고 했죠. 그래도 계속 당당하게 설명했고 또 당당하게 요구했습니다. 이사 임명권을 대주주가 100% 행사하면, 그렇게 뽑힌 인사들은 공익보다는 대주주의 단기적 사익을 위해 움직일 가능성이 있다는 거죠. 실제로도 그랬고요. 결국, SBS는 대주주가 일방적으로 임원을 임명하는 시스템을 깨지 않으면 안 된다고 판단했습니다.

노조는 구체적으로 어떤 대안을 제시했었나요?
우리는 가장 완벽한 방법으로 이사 임명권을 내놓으라고 요구했죠. 그렇다고 이사 임명권 자체를 노동조합에 맡기라는 건 아니, SBS 법인에 맡기라는 거예요. 그럼, 의결권은 누가 행사하느냐? SBS 대표이사가 하겠죠. ‘그 대표이사를 그러면 독립적으로 뽑자. 사장추진위원회를 구성해서 조직 구성원들의 동의를 받는 사람을 대표이사로 뽑자, 그 사장이 SBS와 시청자 권익만을 위해 일하는 그런 시스템을 만들자’라는 거죠. 그 부분에 대해 밀고 당기는 협상을 하다가 사장을 포함해 보도 공정성 및 방송 독립성과 직접 연관이 있는 부분(보도·교양·편성본부장) 대해서는 임명동의안을 시행하자 합의한 겁니다. ‘대주주가 사장을 임명하되 구성원들 동의를 받아라. 대주주 마음에 드는 사람, 대주주 이해를 대변할 수 있는 사람만 선임해 조직을 망가트린다면, 우리는 그것에 대해서 명백하게 거부권을 행사하겠다.’라는 제도적 합의를 이뤄낸 겁니다.

정치권력의 방송 사유화 막아야

SBS뿐 아니라 다른 방송사에 전하는 의미도 적지 않을 듯합니다.
KBS, MBC 동지들이 파업하며 나온 구호 중에 하나가 ‘방송 사유화 철폐’예요. 그럼, 그 사유화의 주체가 누구냐? 그건 정치권력이죠. SBS처럼 중간에 대주주라는 매개체가 하나 더 있느냐 혹은 정치권력의 직접적인 영향 아래 있느냐, 그 차이밖에 없지 문제는 본질적으로 한 뿌리였던 거죠. 고대영·김장겸 사장 때문에 상대적으로 SBS가 덜 드러나 보인 것 뿐이죠. 지난 9년 동안 청와대로 건너가서 부패한 권력의 입 노릇하며 언론사 장악하려고 했던 이들도 다 SBS 보도국 출신이에요. 방송이 망가지고, 권력 편향적으로 쏠린 건 결국 다 마찬가집니다.

KBS와 MBC 두 언론사도 이제 새로운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습니다. 두 회사, 더 나아가 우리 언론계와 정치권에 어떤 점을 강조하고 싶으세요?
책임 있는 방송사라면 이번에 SBS가 마련한 임명동의제에 준하는 제도들을 서둘러 도입해야 합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향후 방송법 개정과정에서 법제화도 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저희가 굉장히 중요한 의미와 의지를 담아 합의문에 반영한 게, 9번 항 ‘재허가 심사위원회에 제출해서 재허가 조건으로 만들겠다’였습니다. 진짜 주인인 국민을 위해 방송의 공공성과 독립성을 지켜낼 수 있는 견고한 제도적 틀을 마련하는 게 필요합니다.

끝으로, 우리는 앞으로는 어떤 노력을 더 해야 할까요?
민주주의와 언론자유가 잘 갖춰진 선진국을 보면, 민간 기업뿐 아니라 언론사도 노동자의 경영 참여가 일반화돼 있습니다. 또 그런 기업이 대부분 장수합니다. 저는 그런 모델로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주주만이 경영에 참여할 수 있다’라는 낡은 논리를 이제는 버려야 한다는 거죠. 그래서 사실 저는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습니다. 솔직히 부담과 걱정이 적지 않은데요, 이전에는 대주주와 경영진이 잘못했고, 모든 책임은 그들이 져야 한다고 비판하면 됐는데, 이제는 우리도 공동책임을 져야 합니다. 자기 이름으로 콘텐츠를 만들고, 자기 이름으로 방송을 하고, 자기 이름을 걸고 보도하고, 이제 모든 구성원이 공동책임을 져야 하는 거죠. 짐을 같이 지게 됐다는 의미가 전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핑계 댈 것도 없어진 거죠. (웃음) 그만큼 ‘내가 주인’이라는 마음을 갖고 책임감 있게 행동하는 게, 언론 개혁의 첫걸음이 될 거로 생각합니다.

Posted in 2017년 11.12월호, 격월간 방송기자, 특집_물러나라 이후의 과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