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물러나라’ 이후의 과제 ①_SBS, ‘사장 임명동의제’_SBS 심영구 기자 (언론노조 SBS본부 공정방송실천위원장)

SBS에 한국 방송사상 처음으로 사장 임명동의제가 도입된다.
SBS 노사는 석 달에 걸친 밀고 당기기, 기싸움, 진검승부 끝에 사장 임명동의제 실시를 포함한 ‘RESET! SBS!!’ 방안에 합의했다. 이에 따라 당장 오는 12월 정기인사부터 임명동의 투표를 시행한다. 대상은 대표이사 사장과 편성·시사교양·보도 부문 최고책임자, 자회사인 SBS A&T 사장이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 대주주가 사장으로 지목한다 해도 SBS 전체 구성원의 60% 이상이 반대하면 사장이 될 수 없다. 또 편성과 시사교양 최고책임자와 SBS A&T 사장도 각 부문 인원의 60%, 보도 최고책임자는 50% 이상이 반대하면 역시 임명될 수 없다.

방송 망가뜨린 인사 기용 방지
SBS의 대주주가 사장 후보를 추천한다는 건 임명동의제 시행 이전과 같다. 하지만 사장 후보의 공개 검증과 구성원의 동의 절차를 반드시 거치도록 함으로써 대주주가 일방적으로 지명하면 사장이 되는 과거와 같은 폐단을 제도적으로 차단하게 됐다. 전 구성원이 나서 퇴진을 요구할 정도로 방송을 망가뜨려온 지상파 방송사의 전현직 사장 같은 극단적 인사가 SBS의 사장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 과거처럼 사장을 하다 청와대로 직행했다든가 대주주의 이익과 심기 경호에만 충실했던 인사가 사장을 맡기도 어려울 것이다.
이는 애초 노조가 요구했던 대주주의 의결권 신탁과 사장추천제 같은 수준에는 물론 못 미친다. 노조는 SBS 창사 이래 27년간 대주주의 공도 크지만 전횡으로 인한 폐해가 훨씬 더 커졌다고 판단해 이를 견제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하고자 했다. 아쉬움은 있으나 이번에 합의한 제도를 잘 운영하면 최초 요구 수준에 버금가는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SBS 노사는 공정방송과 직결되는 편성과 시사교양, 보도 부문 최고책임자, 그리고 SBS A&T 사장 또한 임명동의 대상에 포함시켰다. 보도의 경우 공정성과 독립성이 더 높은 수준으로 보장돼야 하는 만큼 50% 이상만 반대해도 임명될 수 없도록 좀더 강화된 조건으로 합의했다.
노사는 ‘RESET! SBS!!’의 중요한 축이었던 수익구조 정상화 방안에 대해서도 의미있는 합의를 이뤄냈다. SBS의 수익이 지속적으로 다른 계열사로 유출되는 구조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 했으며 일시적인 요율 조정 같은 소극적 방식이 아니라 구조적,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한다는 대원칙에 합의했다. 구체적인 방안은 올해 말까지 노사가 협의해 정하기로 했다.

노사 합의문, 방통위 재허가 심사위에 제출
대주주와 노사 대표 서명까지 마쳤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남는다. 어느 쪽이든 합의를 지키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저런 상황 논리와 편법을 동원해 합의를 깰 가능성이 없다고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그래서 합의문 말미에 이런 조항을 넣었다. “올해 방송통신위원회의 재허가 심사위원회에 노사 합의문을 제출해 성실한 이행을 사회적으로 약속하고 보증한다”라고 말이다.
합의 사실을 내외부에 알리자 과분할 정도로 덕담이 쏟아졌다. “정말 큰일을 해냈다” “협상의 달인이다” “면면을 보고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등등. 그럴 때마다 우리의 대답은 “감사하다, 하지만 이제부터 시작이다”였다.

사문화 막기 위해 철저한 실천 필요
겸양의 표현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다. SBS에는 1998년 노동조합 설립 이래 공정방송을 위한 많은 제도가 만들어졌다. 단체협약을 비롯해 SBS 윤리강령, 보도준칙, 방송편성규약, 공정방송 실천을 위한 협약 등 어떻게 보면 중첩된다고 할 정도로 여러 제도를 도입하고 시행해 왔다. 문제는 그럼에도 SBS는 망가져왔다는 데 있다. 실제 내용으로 제도의 취지를 담보할 수 있도록 실천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었고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대주주의 방송 사유화 그늘에는 그들의 손발이 돼온 적폐 인사들, 그리고 그 지시를 때로는 적극적으로, 때로는 소극적으로 이행했던 나를 비롯한 SBS 구성원들이 있다. 책임의 경중은 있으나 SBS의 오늘을 만든 건 우리 모두이다. 그래서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SBS 노사는 지난 10월 27일 오랜만에 공정방송실천협의회를 열어 이른바 ‘논두렁 시계’ 보도의 진상조사에 합의했다. 8년 전 보도이긴 하나, 최근 국정원 개혁위의 발표로 당시 보도 배경에 대한 의구심이 또다시 증폭된 데 따른 것이다. 과거지사이든 지금 벌어지는 사안이든 철저한 성찰과 반성이 전제돼야 비로소 SBS는 거듭날 수 있다고 믿는다. 여전히 우리의 구호는 ‘RESET! SBS!!’이다.

 

Posted in 2017년 11.12월호, 격월간 방송기자, 특집_물러나라 이후의 과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