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8회 뉴스부문_세월호 침몰 순간의 목격자, 블랙박스_뉴스타파 김성수 기자

세월호 침몰 원인 규명’…음모론과 사실판단 사이에서

지난 3월 22일, 동거차도 정상에서 밤을 새웠다. 3년간 바다에 잠겨 있던 세월호가 조금씩 떠오르고 있었다. 새벽녘에 세월호 우현 스태빌라이저가 물 위로 드러났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마침내 동이 트자 우측면 상당 부분이 육안으로도 보이기 시작했다. ‘이젠 됐구나’하는 안도감과 함께 두 가지 절실한 바람을 품었다. ‘제발 저 안에 미수습자 9명이 모두 있기를’, 그리고 ‘저 안에 있을 차량 블랙박스와 승객들의 휴대전화 메모리들이 꼭 복구되기를’. 전자는 설명이 필요 없는 세월호 인양의 핵심 이유였고, 후자는 누구도 목격한 적이 없는 세월호 침몰 순간의 모습이 담겨진 유일한 증거물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미수습자 4명의 귀환, 그리고 블랙박스 4대의 복구

4월 초 목포신항에 세월호가 거치되고 미수습자 수색이 시작됐다. 고창석 교사, 조은화 양, 허다윤 양, 이영숙 씨의 유해가 순차적으로 수습됐다. 동시에 객실에선 휴대전화들이, 화물칸에선 차량 블랙박스들이 쏟아져 나왔다. 세월호선체조사위원회는 민간 포렌식업체에 이 메모리들의 복구를 의뢰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6월 초 김민지 양과 전수영 교사의 휴대전화 복구 발표 이후로는 진전 상황이 알려지지 않고 있었다.

그러던 8월 초, 참사 이후 온갖 가설이 난무했던 세월호 침몰 원인에 대한 합리적 조사 방향을 제시하는 취지의 기획리포트 취재차 목포신항으로 갔다. 선조위 관계자 몇 명과 세월호 침몰 원인을 놓고 일종의 토론을 벌였다. 그때 한 관계자가 화물칸 차량 블랙박스 영상에 포착된 장면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들었다. 당장 확인 취재에 나섰다. 블랙박스 메모리 8개가 복구됐고 그중 4개에 세월호가 기울어지는 순간의 장면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그러나 그 영상파일을 즉각 입수할 방법은 없었다. 여러 경로를 타진한 끝에 8월 말에야 복수 취재원의 도움으로 간신히 영상을 ‘열람’할 기회를 얻었다. 3년간 세월호를 취재하며 축적한 자료들을 모두 싸들고 가 영상들을 분석했다. 외부충격 존재 여부, 추정만 가능했던 초기 횡경사 각도, 표류 중 급격한 침수가 발생한 이유를 추론할 단초 등이 담겨 있었다. 일각에서 제기돼온 고의침몰설과 외부충돌설 등이 반박될 수 있는 강력한 ‘팩트’들이었다.

보도를 위해선 어떻게든 파일을 입수해야 했다. 그러나 영상을 열람하게 해준 취재원들은, 지난 3년간 세월호 취재에 집중해온 뉴스타파의 분석 능력을 신뢰해 선조위 조사 활동에 도움을 받고자 하는 취지로 도움을 준 것이었다. 마땅히 이들이 불이익을 당하지 않는 방식으로 파일을 입수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고심 끝에 한 여당 국회의원실을 찾아 취재 내용을 설명하고 해당 영상파일들을 국정감사 자료로 공식 제출받도록 협조를 구했다. 이렇게 블랙박스 복원 사실을 확인하고 공식 입수한 뒤 보도를 내놓기까지 꼬박 한 달 반이 걸렸다.

 

비합리적 침몰 가설들의 책임자는 박근혜 정권과 기성 언론

 

보도가 나가자 사흘 만에 유투브 조회수 100만을 넘길 정도로 관심은 폭발적이었지만 반응은 엇갈렸다. 치밀한 취재와 분석으로 기존의 비상식적 음모론들을 일거에 정리했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박근혜 정부 검찰이 내놓은 침몰 원인 발표를 정당화시키는 방향의 보도라는 지적도 있었다. 세월호 침몰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어떤 거대한 음모 때문이라는 대중적 확신은 생각보다 광범위하고도 확고했다.

 

이런 상황을 야기한 1차 책임자는 당연히 박근혜 정권이다. 어떻게든 세월호 정국을 조기 종식시키기 위해 검찰을 압박해 불과 6개월 만에 수사 결과를 발표하도록 했다. 에스토니아호 참사의 경우 스웨덴 정부의 전폭적 지원 아래 3년 가까이 조사가 진행됐던 것과 비교하면 제대로 된 수사를 진행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그 결과 실제로 세월호에 실린 철근 중량이 검찰 수사보다 124톤이나 많았고 다른 화물들의 중량과 배치도 오류 투성이였음 지난해 뉴스타파 보도로 드러나기도 했다. 잘못된 1차 자료를 전문가들에게 넘겨 세월호의 복원성을 계산하도록 했으니 제대로 된 해석이 나올 리 만무했다. 이러다보니 침몰 원인을 배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외부적 요인에서 찾는 온갖 가설과 주장들이 우후죽순처럼 제기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문제를 가중시킨 건 기성 언론들이었다. 최근 백일하에 드러나고 있는 것처럼 심각한 수준으로 정권에 순치됐던 당시 언론들은 세월호 침몰 원인에 대한 자체적인 분석 취재도, 검찰 수사 결과에 대한 검증도 시도하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일부 팟캐스트와 네티즌의 지그재그 운항과 닻 투하, 잠수함 충돌 등 무리한 가설들이 폭발적 관심을 끌었다. 이렇듯 세월호 침몰에 대한 음모론들을 만들어낸 건 정부의 부실한 조사와 기성 언론의 역할 방기였던 것이다.

 

세월호 침몰 순간의 상황이 담긴 유일한 증거물인 화물칸 차량 블랙박스는 금번 보도된 것 외에 추가 복구 가능성도 있는 상황이다. 세월호선조위가 면밀한 분석에 나서겠지만, 언론 역시 지금까지처럼 검증에 손을 놓고 있어선 안 된다. 대중들의 인식 속에 잘못 자리잡고 있는 사실관계를 바로잡는 것도 새로운 사실을 발굴해 보도하는 것 못지않은 언론의 중요한 사명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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