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격증_자전거 정비 배워 꿈을 향해 달려간다_KBS 이재강 기자 (심의실)

언제부턴지 시간을 쓰는 데 우선순위가 달라졌다. ‘필요한 일’보다는 ‘하고 싶은 일’에 시간을 먼저 할애하는 식이다. 알고 보면 그 ‘필요한 일’이라는 것도 ‘필요할 것 같은 일’인 경우가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금쪽같은 시간을 내 몸과 마음이 원하는 곳에 쓰기로 했다. 그중에 요즘 빠져 있는 게 자전거 정비다. 그런데 웬 자전거 정비?
자전거 정비는 은퇴 후의 내 꿈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자전거를 타고 세계 곳곳을 여행하는 꿈이다. 유럽의 초원을 가르고, 파미르 고원의 거친 길을 넘고, 황량한 모하비 사막을 지나며 그 땅의 공기를 마시고 그 하늘의 별과 동화되고 싶다.

세계 여행 위해 자전거 정비학원 등록
무릇 모든 꿈이 그렇듯,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현실적 준비가 필요하다. 준비의 1순위는 장거리를 달릴 수 있는 육체적 능력을 유지하는 것이다. 은퇴 시점이 노년기 초입에 해당하는 때이니 응당 체력 관리를 소홀히 할 수 없다. 이를 위해 예전부터 즐겨 온 자전거 타기를 계속하고 있다. 2015년 뜻밖의 발병과 수술을 겪으며 그 전과 같은 과격한 신체 활동은 자제하고 있지만 여행 모드로 자전거를 타는 정도야 가능하니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육체적 준비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 같다.
다음으로 중요한 준비가 바로 자전거 정비다. 국내에서는 본인이 자전거를 정비할 줄 몰라도 큰 어려움이 없다. 물론 다소 불편은 겪겠지만 자전거 트러블 때문에 여행을 아예 중단해야 하거나 심하게 난감한 상황으로 내몰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몽골의 어느 초원을 달리던 중 혹은 파미르 고원을 넘는 도중 자전거가 말을 듣지 않는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꿈을 접어야 할 수도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생사의 문제가 될 수도 있다. 결국 여행 도중 생기는 자전거 문제는 스스로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지금은 펑크를 때울 수 있을 정도의 초보적 정비술만 갖춘 상태다.
‘그래, 자전거 정비를 제대로 배우자!’ 정비 학원을 찾아 나섰다. 다행히 집과 회사에서 멀지 않은 상도동에 규모도 있고 교육 시간대도 다양한 학원을 찾을 수 있었다. ‘고급 자전거 정비 완전 마스터 과정’에 등록했다. 일주일에 세 번 평일 저녁에 가서 3시간씩 배운다. 약 2개월간 이 과정을 거치고 나면 자격증 취득 시험에 도전할 수 있다. 나는 이 과정에 처음 들어갈 때부터 이왕 배우는 거 자격증에도 도전하리라고 마음먹었다. ‘자전거 정비사 1급 자격증’이다.

기계 다루는 데 소질 없어 악전고투
하지만 막상 실습에 들어가니 ‘모태 기계치’의 한계가 그대로 드러났다. 수강생 8명 중 가장 뒤떨어지는 것 같았다. 자전거를 분해했다가 다시 조립하는 데 1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 우수한 수강생도 있지만 나는 2시간을 꽉 채워야 겨우 끝내곤 한다. 정비사 1급 자격증 시험 과목에서 분해 정비의 제한 시간이 2시간이니 나는 간당간당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자전거 정비에서 가장 난이도가 높다는 ‘휠 빌딩’을 배우고 있다. 자전거 바퀴가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바퀴의 림과 허브, 스포크, 니플 등을 정교하게 짜 맞추는 기술이다. 물론 여기서도 애를 먹고 있다. 꼬박꼬박 출석해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천성적으로 기계 다루는 데 소질이 없다 보니 겨우 수업을 따라가고 있다.
자전거 정비를 배우면서 종류가 무엇이든 뭔가를 알아가는 게 큰 기쁨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변속이 원활하지 않을 때 페달을 돌려가며 원인을 찾고 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성취감이 몰려온다. 복잡한 케이블을 순서에 맞춰 장착한 후 정확하게 작동하는 걸 확인하는 것도 나에게는 일종의 경이로운 순간이다. 늘 궁금했지만 굳이 알아보려고 하지 않았던 것들, 자전거의 세세한 작동 흐름이 이제 조금씩 눈에 들어오는 듯하다.
수업이 진행되는 3시간 동안의 느낌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행복감이다. 꿈을 향해 가는 시간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실습에 온전히 몰두한 후 기름때가 묻어 새까맣게 변한 손가락들을 보면 알지 못할 뿌듯함이 솟아오른다. 책과 서류, 펜, 노트북 컴퓨터의 세계에만 머물던 내가 볼트와 너트를 조이고 케이블을 장착하며 기계의 세계를 경험하고 있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자전거 정비 기술로 ‘봉사하는 삶’ 가꿀 꿈도…
자전거 정비를 배우면서 자전거 세계 여행이라는 본래 목적 외에 남을 도울 수 있는 수단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은퇴 후 봉사하는 삶을 살고자 하는 욕구는 누구나 갖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봉사가 자칫 민폐가 되지 않으려면 유용한 지식과 기술을 갖고 있어야 한다. 즉, 봉사도 준비된 사람이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점에서 기자라는 직업은 봉사와는 좀 거리가 있는 듯하다. 실생활에서의 유용함과는 거리가 먼 직업이다. 그런데 자전거 정비 기술을 익힌다면, 코흘리개든 노인이든, 우리 동네에서든 먼 외국 마을에서든, 자전거를 이용하는 사람들 누구에게나 작지만 유용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기름때 묻은 손을 놀리며 아이들의 자전거를 고쳐주는 장면을 떠올리면 자연스레 미소가 번진다.
돌이켜보면 자전거는 내 삶에서 언제나 가까이 있었다. 어린 시절 프레임 사이에 다리를 넣어 어른 자전거를 타기 시작해 중고등학교 때는 상당 기간을 자전거로 통학했다. 대학을 서울로 진학한 후 잠시 멀어졌지만 2학년 여름 방학 때는 혼자 서울에서 고향 전주까지 자전거를 타고 내려갔다. KBS 입사 후에는 10여 년을 자전거와 떨어져 있었지만 결국 산악자전거를 만나고 로드 사이클을 만나 이제는 자전거로 세계를 누비는 꿈을 꾸고 있다. 자전거 정비까지 배우고 있으니 이제 꿈을 실현할 날도 멀지 않았다.

Posted in 2017년 9.10월호, 격월간 방송기자, 나의자격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