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격증_다이빙은 삶 그 자체_MBC 구본원 기자 (뉴스데스크 편집부)

시작은 그랬다
‘피곤한데 휴일에 쉬지도 못하게…’
9년 전 여름 어느 휴일 아침, 수원의 한 수영장으로 운전해 가면서 중얼거렸던 말이다. 한창 일 많던 4년차였기에 달콤한 휴일을 강탈해간 ‘스쿠버 교육’이 짜증스러웠다. 게다가 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라 “한 기수에 한 명 이상은 수중촬영을 해야지!”라는 부장과 캡의 명령이었던 탓이다. 특유의 소독약 냄새와 수영강습 받는 초등학생들이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소리가 가득한 수영장의 한편 다이빙 전용 풀에 들어설 때까지 이어진 짜증은 땀을 뻘뻘 흘리며 장비를 조립하고 간단한 현장 이론교육을 받을 때까지도 사그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머리를 천천히 물속에 담그면서 입에 물고 있던 호흡기로 공기를 들이마시는 순간, 차원이동을 한 듯한 착각에 빠졌다. 순식간에 주변의 소음이 마치 음소거 버튼을 누른 듯 사그라들었다. 들리는 건 숨 쉬는 소리와 내뱉은 공기방울이 올라가는 소리뿐이었다. 평생 공기에만 둘러싸여 살던 몸을 감싸는 물의 적당한 밀도감이 긴장과 평온을 동시에 가져다주고 있었다. 머릿속에선 종소리가 울리는 듯했다. 그렇게 3시간 정도의 첫 강습이 끝나고 몸은 녹초가 됐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귓가에선 호흡기 소리만 맴돌았다. “스읍. 후우. 스읍. 후우.” 그렇게 나의 다이빙은 시작됐다.

조금씩 한계를 넘어선다는 것
늦게 배운 도둑질에 밤새는 줄 모른다고 했었나. 물속에선 오래 머무를 수 없는 태생적 한계를 스쿠버 장비의 힘을 빌려서 극복하고, 걸음마 수준이었던 스킬이 늘면서 각 레벨들이 정한 한계를 넘고 싶은 욕심도 함께 커져갔다. ‘수중촬영이 자유로운 수준’으로 정했던 애초의 목표는 생각지도 못한 수준까지 확장됐다.
다른 사람도 돌봐줄 수 있어야겠다는 생각에 레스큐다이버가, 그러고 나니 다이빙을 조직하고 가이드 할 수 있어야겠다 싶어서 다이브마스터가, 결국은 후배들과 친구들을 직접 가르쳐주고 싶은 마음에 강사가 되었다. 다이빙을 시작한 지 2년 3개월 만에 강사가 된 뒤에도 도전은 멈출 수가 없었다. 수중촬영과 관련한 뉴스제작을 도맡아 하게 되었고 시야가 나쁘고 위험한 바다에 들어가는 일이 잦아지면서 지금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 되겠단 생각이 들었다.
결국 더 깊은 수심에서 더 오래, 더 안전하게 머무르기 위해 테크니컬 다이빙에 입문했다. 감압절차, 트라이믹스(수심의 제한을 넘기 위해 산소함량을 줄이고 헬륨 기체를 추가로 사용하는 다이빙)교육을 받았고, 산호초와 수중생물들의 사진을 찍는 것만으론 만족스럽지 않아, 위험하고 내부가 복잡한 난파선 속을 통과해 나오는 난파선 다이버Advanced Wreck Diver가 됐고, 지난해 가을엔 수중 동굴 속을 탐험하는 동굴다이버Full-Cave Diver 자격을 갖게 됐다.
수심 18미터, 체류시간 40분 남짓의 한계는 수심 65미터, 120분 정도로 늘어났고, 아름다운 바닷속으로 한정됐던 환경은 좁고 어둡고 위험하지만 짜릿한 난파선과 동굴로 옮겨갔다. 누구나 즐겁게 바다를 접하게 해주고 싶은 강사로서의 마음은 그대로이면서도 누구나 쉽게 할 수 없는 도전에 마음을 빼앗긴 바보 다이버가 되어버렸다.

Meditation
물속에선 이따금 들리는 다른 이의 신호음이나 보트의 모터 소리 외에 내 숨소리 밖에 들리지 않는다. 자신의 숨소리에 집중해 물속 생물들을 관찰하고 있으면 폭우가 내리는 숲 한가운데서 우산을 쓰고 쪼그려 앉아 양치식물을 감상하고 있는 기분과 비슷해진다. 새끼손톱보다도 작은 산호의 폴립이 꼬무락거리는 모습, 손바닥만 한 물고기들이 영역 다툼을 하며 치고받는 모습, 작은 물고기 떼가 큰 물고기의 사냥을 피해 이리저리 달아나며 만드는 먹구름 형태의 군영群泳을 바라보다 보면 머릿속은 깨끗이 비워진다.
물속은 거친 야생이다. 생물들 저마다의 치열한 삶으로 시끌벅적하지만 그들 누구도 상관하지 않는 외부 생명체로서 고립된 존재인 나는 명상에 잠긴다. 칠흑 같은 동굴 안을 손에 쥔 손전등 빛 한 줄기에 의지해 천천히 핀킥fin-kick을 차며 앞으로 나아갈 땐, 가이드라인이나 동료를 잃어버렸을 경우라든지 라이트가 꺼졌을 경우와 같은 비상상황 매뉴얼의 책장이 머릿속에서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어간다. 긴장감에 가슴은 떨려오지만 한없이 차분하게 상황을 판단하고 길을 더듬어 나간다. 그리고 마침내 환한 동굴 밖으로 나왔을 때의 성취감과 안도감에 취한다.

Diving is my Life
8~9년 전, 필리핀의 발리카삭이란 섬 아래에서 머리가 하얀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목격한 적이 있다. 어림잡아도 일흔 살은 훌쩍 넘어 보이는 두 분이 손을 맞잡고 바닷속 정원을 거닐고 있었다. 노인이 되어서도 즐길 수 있는 레포츠란 걸 그때야 깨달았다(부력 때문에 스쿠버장비는 물속에선 1~2kg정도의 무게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안전하게 다이빙할 계획을 세우고, 바다를 느끼고, 명상하고, 각자의 경험을 나누며 힐링받는 이 삶을 백발이 성성해져서도 내 아내와 친구들과 함께 계속 이어갈 것이다. 틈나는 대로 장비와 카메라를 수선하고 새로운 곳의 정보를 모으면서 다음 다이빙 갈 날을 기다린다.(지금은 공영방송 정상화를 외칠 때이니 정상화 이후에 항공권을 구해봐야겠다)
우리가 밟고 사는 육지는 지구의 30%밖에 되지 않는다. 나이가 들어 체력이 약해질수록 새로운 배움에 대한 망설임은 커진다. 70%를 조금이라도 맛보고 싶다면 지금 당장 바다에 뛰어드시라고 감히 권유 드린다.

Posted in 2017년 9.10월호, 격월간 방송기자, 나의자격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