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_KBS 보도국장단이 막은 군 댓글 공작 특종_KBS 이재석 기자 (국제부)

댓글 부대의 축은 두 개다. 국정원이 하나, 군사이버사령부가 또 다른 하나다. 지금 언론이 날마다 국정원발 기사를 조각조각 내놓고 있는 건 국정원 내부에 마련된 ‘적폐 청산 TF팀’에서 정보가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국방부는 그런 게 없다. 그러니 기사도 없다.
KBS 파업뉴스팀과 인터뷰를 한 김기현 전 530심리전단 총괄계획과장은 군관을 통틀어, 그러니까 국정원과 군사이버사령부의 댓글부대 가담자 전체 가운데 처음으로 실명으로 폭로를 한 사람이다. 그는 일개 말단 대원이 아니라 댓글부대 심리전단의 사실상 부단장이었다.
폭로 내용은 구체적이다. 일화가 점점이 박혀 있다. △청와대 국방비서관실이 댓글 공작 결과를 날마다 보고받았다는 것 △김관진·한민구 등 군 수뇌부에게도 날마다 보고가 들어갔다는 것 △국정원 돈 25만 원을 자신도 매달 받는 등 국정원과의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는 것 △부실했던 초동 수사 △박근혜 정부 때도 진행된 이른바 ‘김병관 보위 작전’ 등등.

최초 실명 폭로에 KBS보도국장단 “증거 가져오라”
기사 가치가 있다는 건 이 바닥에선 상식이다. 그러나 KBS보도국장단(보도국장과 주간단)의 생각은 많이 달랐다. 물증이 필요하단다. 증언만으로는 곤란하다는 뜻이다. 폭로자가 지난 대선 때 문재인 캠프에서 선거운동을 한 전력을 문제 삼았다. 폭로자는 말한다. 진정한 군 개혁을 위해 정권교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2015년 퇴임 이후 자신에게도 직업 선택의 자유가 있다, 폭로 내용이 맞는지 틀리는지는 수사를 통해 입증될 것이다.

물론 이 폭로자가 특정 캠프에서 선거운동을 했다는 사실을 취재기자들이 유념할 필요는 있다. 염두에 두고 들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사실이 인터뷰 내용이 갖고 있는 공익적 성격 및 기사로서의 가치를 희석시키는 건 아니다.
다른 곳도 아닌 정보당국의 내부고발자가 A4용지로 된 무엇을 손에 들고 나왔어야 했단 말인가. 이 사람은, 다시 말하지만, 군 댓글 부대의 부단장이다. 본인이 처벌을 감수하고까지 폭로를 결심한 거다. 이 사람 자체가 증거요, 이 사람의 증언이 사실상 물증이다. 중요한 것은 폭로자가 댓글 부대에서 했던 역할의 비중과 발언 내용의 구체성, 일관성이다.
내부고발자들의 증언만으로 기사가 성립하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엄격한 법리를 따지는 법원에서조차 증거 없이 발언만으로도 뇌물죄를 판단하는 판국에 ‘합리적 의혹’이라면 유연하고 자유롭게 제기해야 할 언론사가 물증이 없다고 보도가 안 된다니. 요즘 KBS의 현실을 너무도 잘 드러내주는 사례다.

지난 9년간 KBS 보도국에선 ‘지극히 자연스러운’ 사례
하기야 ‘오버’할 것 없다. 이번 사례는 KBS에서 지난 9년 동안 누적된 수많은 사례에서 하나가 추가된 것일 뿐이다. 50년 만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최순실 게이트’가 터졌을 때 보도국장 입에서 “최순실이 대통령 측근이라고 장담할 수 있냐?”는 말이 나오는 판에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그랬던 보도국장은 대형 낙종에 그 흔한 유감 표명 한 마디 없이 대전총국장으로 영전됐다. 그게 지금 고대영 체제의 실상이다.
결국 국방부에도 댓글공작 TF팀이 생겼다. 이제 후속 기사들이 생산될 것이고 실체가 조금씩 드러날 것이다. 물론 흐지부지될 공산도 있다. 언론이 계속 감시해야 할 이유다. 권력과 국가기관에 대한 감시와 견제를 사실상 못해왔던 게 지난 9년간 KBS 보도국이 겪은 굴종의 흑역사였다. 권력이 민감하게 생각하지 않을 이슈들만 키웠고, 자화자찬했고, 특종이라 자위했다. 이제 이런 거 끝장내야 한다. 고대영 축출이 첫걸음이다. 파업 승리는 최종 목표가 아니라 시작일 뿐이다. 갈 길이 너무 멀다.

Posted in 2017년 9.10월호, 격월간 방송기자, 현장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