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돌아와요, 마봉춘·고봉순 ④_파업 현장에서_유배지에서 ‘나쁜 기자’였음을 깨닫다_MBC 김민욱 기자 (뉴미디어포맷개발센터)

 

간보다 기자가 아니었던 기간이 어느새 더 길어졌다. 경인지사, 뉴미디어포맷개발센터 등 정체를 알 수 없는 조직의 이름들로 내 인사기록은 지저분해졌다. 뉴스를 거들떠보기조차 싫었다. 내가 쫓겨난 자리에서 마이크를 들고 있는 사람들, 한때는 선배라고 불렀던, 기자 자격도 없는 사람들이 텔레비전에 나오는 것을 쳐다보는 것은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세월호 참사 보도의 깨달음
그래도 세월호 참사까지 외면할 수는 없었다. 일산 MBC 드림센터 구석의 사무실에서 뉴스특보를 텔레비전으로 지켜봤다. 취재기자가 아니라 시청자였다. 처음에는 내 처지가 어색하고 서러웠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비굴한 안도’의 마음이 들었다. 현장에서 쫓겨나고 욕을 먹는 MBC 기자들 중 하나가 나였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나의 기자생활을 돌아봤다. 한 번도 스스로를 ‘좋은 기자’라고 여겨본 적이 없다. 기억나는 단독 기사 하나 없다. 취재원과 가깝게 지내지도 못했다. 그래도 ‘나쁜 기자’는 아니었다고 생각해왔다. 틀렸다. 세월호 참사 보도를 보며 깨달았다. 나 또한 ‘나쁜 기자’였다.

의심과 공감이 없는 기자
브리핑을 받아치기에만 급급했다. 듣고, 곱씹고, 생각하고, 의심하는 버릇은 갖지 못했다. 탄핵 심판중인 대통령 옆에 팔짱을 끼고 서서 고개만 끄덕이던 그 기자가 떠올랐다. 나와 다를 게 없었다. 몇 달 혹은 몇 년 씩 계속되던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투쟁을 애써 외면했다. 그들도 직을 걸고, 삶을 걸고 거리에 나섰다는 점을 미처 가슴으로 깨닫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벌써 여러 차례 MBC 파업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거리에서 소리치고 다녔다.

유배지에서 다듬은 단단한 다짐
2012년 그 긴 파업이 없었다면, 그래서 보도국 밖으로 쫓겨나 이리저리 떠돌지 않았다면 아마 몰랐을 것이다. 인천, 일산, 구로로 쫓겨 다니며 나는 작지만 단단한 다짐으로 그 깨달음을 다듬어 놓았다. 힘들 때마다 옆에서 어깨를 내어준 유배 동지들의 눈빛에서도 나와 비슷한 어떤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다들 쉽게 깨지지 않을 다짐 하나씩을 가슴에 품고 있다.
그동안의 고생을 알아달라고 투정하기 위해 시작한 파업이 아니다. 처절한 자기반성을 견디지 못해 시작한 몸부림이다. 격렬하게 몸부림칠 것이다. 빼앗겼던 자리로 끝내 돌아갈 것이다. 우리에게는 그래야 하는 이유가 있다. 꼭 실천해야 할 다짐이 있다.

 

Posted in 2017년 9.10월호, 격월간 방송기자, 특집-돌아와요. 마봉춘.고봉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