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5회 뉴스부문_박 전 대통령, 최순실 뇌물 직접 개입…안종범 3차 수첩 연속보도_MBN 한민용 기자

상상에서 시작된 취재

 

‘안종범 3차 수첩’ 취재는 상상에서 시작됐다. 우리는 안종범 전 수석이 아직 검찰에 제출하지 않은 수첩이 있고, 그 안에는 청와대가 숨기고 싶어 한 무언가가 반드시 담겨 있을 것이라는 상상으로 이 취재를 시작했다.

우리의 상상은 안종범 1차·2차 수첩 56권을 분석하며 시작됐다. 분석 과정에서 특정시기에 작성된 수첩들이 빠져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사초’라는 평을 받을 정도로 은밀한 내용까지 세세히 적은 수첩을, 그것도 포스트잇까지 붙여가며 정리해놨는데 유독 몇 권만 잃어버렸다는 건 쉽게 납득이 가지 않았다. 오히려 누군가 수첩을 선별해 검찰에 제출되면 안 되는 것들을 따로 숨겨놨다고 보는 게 더 타당했다. 실제 1차 수첩은 철저히 선별돼 검찰에 제출된 것으로, 특검은 안 전 수석을 추궁한 끝에 청와대에 숨겨져 있던 2차 수첩 39권을 추가로 확보한 바 있다.

우리는 우선 이 ‘공백 시기’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확인했다. 공백 시기에는 2015년 9월, 최순실 씨가 독일에서 직접 삼성의 돈을 받기 시작한 시기와 롯데로부터 추가 출연금을 받았다가 검찰 수사가 임박하자 돌려줬던 시기 등이 포함돼 있었다. 당시 청와대 입장에서 충분히 숨기고 싶어할만한 내용들이었다.

물론 우리가 이러한 상상을 입 밖으로 내뱉었을 때 고개를 끄덕여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숨겨진 수첩이 또 있을 것이라는데 초점을 맞춰 수개월 동안 뛰어다닌 끝에 안종범 3차 수첩을 단독으로 입수할 수 있었다. 수첩에는 우리의 상상대로, 삼성이 독일 최순실 씨 측에 돈을 보내기 하루 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안 전 수석에게 내린 특별한 지시가 담겨 있었다. 박 전 대통령이 최 씨가 삼성 돈을 받는 데 얼마나 깊숙이 관여했는지 보여주는 ‘한 방’이었다. 이 밖에도 SK-CJ 헬로비전 합병에 관한 지시나 플레이그라운드에 대한 지시 등도 찾아볼 수 있었다.

수첩을 확보한 이후부터 또 다른 차원의 취재가 시작됐다. 수첩에 적힌 내용을 단순 보도하는데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관련자들을 취재해 사실 관계를 확인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보도할 만큼 확인이 되지 않아 쓰지 못한 부분도 많았고, 수첩에 적힌 ‘단어’보다 ‘진실’이 더 큰 경우도 있었다.

 

불충분한 자료로 만들어지는 역사

 

63권의 수첩에는 수많은 얼룩진 날들이 기록돼 있었다. 삼성 등 대기업을 위한 특혜, 특정 수사에 대한 특별한 관심, 세월호 참사에 대한 놀라울 정도로 무관심한 태도, 또 유리한 여론형성을 위해 우리가 든 펜을 어떻게 움직이려 했는지까지 들여다 볼 수 있었다. 휘갈겨 쓴 글씨들을 읽어가다 참담한 마음에 눈을 감은 적이 수차례였다.

안종범 3차 수첩에 대한 보도 이후 수첩에 대한 논란은 다시 불거졌다. 일각에선 안종범 수첩은 어떠한 사실도 입증할 수 없는 불충분한 자료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제까지 역사는 불충분한 문서와 부정확한 기억이 만나 씌어졌다. 우리가 보도한 안종범 수첩은 불충분한 문서일 수 있으나, 향후 검찰의 수사나 계속되는 언론의 취재를 통해 관련자들의 기억과 만나 박근혜 정권의 면면을 써내려갈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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