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반려동물_거북이는 의외로 짧게 잠수한다_K B S 최 건 일 기 자 (과학재난부)

꺼비와 뿌기. 애완용으로는 생각해 본 적이 없던 거북이 두 마리가 거실 책꽂이에서 살기 시작한 지 이제 1년이 돼 간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청거북이, ‘페닌슐라’라는 품종인데, 반半수생 거북이라고 한다. 아마도 물에서만 살 수도 없고, 물이 없어도 못 사는 상당히 까다로운 습성의 파충류인 듯하다. 적어도 2주에 한번 물을 갈아주고, 날이 좋으면 베란다로 옮겨 햇빛을 보게 해주라는 대형마트 매장 직원의 조언도 있었지만, 어항은 무겁다.
어린 시절, 강원도 최북단에서 반공 글짓기와 전단 줍기에 혈안이 돼 있던 나는 많은 동물과 어울려 살 수 있었다. 서울 도심의 학교 앞에서 파는 허약한 병아리가 아니라, 튼튼한 병아리를 잘 키워 가족과 먹었다. 큰 대접에 밥과 갖은 반찬이 비벼진, 아버지의 식사와 거의 흡사한 ‘개밥’을 먹고 쑥쑥 자라는 강아지는 할머니의 용돈벌이였고, 뒷마당에는 토끼가 토끼풀을 뜯어먹고 자랐다. 마당에는 아버지가 파놓은 연못에 대체 어디서 왔는지 모를 물고기들이 살고 있었다. 물이 증발하면서 따라 올라간 물고기가 비가 올 때 함께 떨어지는 경우가 있다고 지금도 믿는다.
식생활과 밀접한 동물들만 보던 내가, 강아지를 가족으로 처음 맞이한 게 고등학생 때다. 사고로 ‘똘이’를 잃고 어머니는 자리에 누우셨다. 아버지는 자기 탓이라며 술로 지새우셨다. 직업을 갖고 다시 ‘푸푸’를 만났지만 녀석도 떠났다. 다시는 나와 다른 종을 가족으로 만들지 않기로 했다.

토끼의 재도전에 당황한 거북이
6살 터울인 두 딸은 꼭 같이 자려고 한다. 만날 툭탁하지만, 아빠가 둘 중 한 명만을 재워주는 리스크Risk를 헤지Hedge하기 위해서다. 결국 우량주 아빠는 비좁은 방에서 두 딸 사이 누워 천장을 보며 애들을 재운다. 한쪽으로 몸을 돌리면 하나는 삐친다. 혹여나 깊이 잠들어 안방으로 복귀하지 못하면 안방 투자자도 삐친다.
허밍만 해줘도 잠들던 아이들이 훌쩍 자랐다. 단 네 곡뿐인 아빠의 자장가 가사를 다 외워, 함께 부르며 잠을 쫓을 만큼 ‘어른이’가 됐다. 그리고 이제는 노래 말고 재미있는 얘기를 해 달란다. 책을 많이 읽지 않아 떠오르는 이야기가 별로 없지만, 기자인 아비는 ‘구라’에는 상당한 자신이 있어 즉석에서 이야기를 지어내기 시작했다. 물론 모티브는 ‘이솝우화’였다.
제1화, ‘아빠판 토끼와 거북이’는 과거 ‘이솝이 지어낸’ 패배의 기억을 사실인 양 알고 살아온 토끼 후손이 거북이 후손에게 재경기를 요청하면서 시작된다. 토끼의 방심으로 거북이가 승리한 결과를 두고 ‘노력하면 이긴다’는 교훈으로 탈바꿈시키는 억지가 늘 불만이던 아빠는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똑똑한 후손 거북이가 과거 도착 지점이었던 산꼭대기 나무를 출발 지점으로 바꾸자고 제안했다. 경기는 시작됐고 앞다리가 짧은 토끼는 내리막길에서 속도를 낼 수 없는 신체 구조라서 꾸물꾸물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반면, 거북이는 머리, 팔, 다리, 꼬리를 모두 쏙 넣고 구르기 시작했다. 거북이는 토끼보다 빨리 산 아래 개울가 결승점에 도착했다.”
과학적 지식과 치밀한 전략으로 완벽한 승리를 거둔 거북이. 아이들은 거북이를 좋아한다.

거북이는 십장생이다?
초등학생쯤 되면 친구 집에 놀러가 다양한 걸 보고 온다. 과자가 만들어지는 오븐, 곡면TV, 엄청나게 큰 단지 내 놀이터, 그리고 강아지와 고양이, 햄스터. 애완동물을 사달라고 끊임없이 요구하는 아이들에게 아빠는 단호하게 말했다. “너희보다 먼저 죽어, 그럼 무지 슬퍼!”
애들은 많은 걸 학교에서 배운다. 혹은 어린이집에서. 인간보다 오래 사는 동물 중에 거북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 아이들의 공세는 거세졌다. 냄새도 없고, 털도 안 날린단다. 짖지도 않는단다. 먹이는 자신들이 줄 테니, 물만 갈아 달란다. 그게 힘든 건데. 결국 대형마트로 갔다. 사실 청거북이도 수명이 길어야 6년이다. 얘들아.

거북이와 애들은 의외로 잘 논다
2016년 9월 16일: 첫 번째 잠수 기록, 꺼비는 몸집도 크고 식성도 좋으니 가장 좋은 기록은 31초이다. 뿌기는 꺼비랑 차이가 많이 난다. 21초로 꺼비보다 10초 더 적게 참는다.
2016년 9월 27일: 두 번째 잠수 기록, 꺼비는 역시 예상했던 대로 훨씬 좋은 기록이었다. 2분 28초이다. 뿌기는 아무리 해봐도 26초가 최고 기록이었다. 이번 실험으로 거북이는 반짝이는 것을 따라간다는 걸 알았다.(예: 핀셋, 동전 등)
2016년 10월 4일: 마지막 결론, 꺼비와 뿌기는 암컷이다. 앞발과 뒷발의 발톱 길이가 똑같기 때문이다. 드디어 성별을 구별하게 되었다. 그래서 암컷 청거북이는 21초~2분 28초 사이로 숨을 참을 수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청거북이는 반짝이는 것을 따라간다는 사실도 최고의 발견이다.
아이들에게 배운다. 초등학생 딸의 관찰일지다. 과학자가 되는 것 아닐까 싶었지만 걸그룹이 꿈이다. 그래도 덕분에 청거북이의 암수구별도 하게 됐다. 거북이가 폐호흡을 하며 30분 정도 물속에 있다가 밖으로 나와 숨을 쉰다는 것도 알게 됐다.
꺼비와 뿌기가 십장생의 대표주자답게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 늦은 퇴근, 거실 전등을 슬쩍 켜고 들어가면 두 녀석이 마른 새우를 달라고 어항 유리벽에 붙어서 팔다리를 버둥거린다. “새우라구!! 새우라니까!!” 아침에 줬는데…하루 한 번 주랬는데…또 준다.
거북이답게 오래오래 살았으면 좋겠다. 퇴근하고 물이나 갈아줘야겠다.

Posted in 2017년 7.8월 호, 격월간 방송기자, 나의 반려동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