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반려동물_오늘도 ‘물멍’하고 있습니다_S B S 권 영 인 기 자 (뉴미디어 제작2부)

후배가 던져 준 새 세상
여느 때와 다름없던 평범한 야근 날이었다. 진한 물 생활은 그날 시작됐다. 야근하러 앉았던 후배 자리엔 배달 죽 케이스만한 플라스틱 통이 있었다. 그 통엔 꼬물꼬물 헤엄치고 있던 새끼 물고기 열한 마리가 있었다. 그때는 이름도 모르는 물고기였는데, 그건 구피였다. 야근을 끝내고 돌아가려는데 자리 주인이자 물고기 주인인 후배가 왔다. 오랜만에 만난 후배라 안부를 묻다가 물고기 이야기를 꺼냈다. 일상적 인사가 싫어서 꺼낸 물고기 안부였는데 대뜸 그 후배는 괜찮으니 가져가란다. 당시 아이가 어린이집을 다닐 나이였던 걸 알고 있던 기특한 후배는 현물로 선배를 기쁘게 할 줄 아는 재주가 있던 선수(?)였다.
사실 여러 ‘잡기’ 중 하나는 물고기를 잡는 거였다. 꽤나 푹 빠져 있기도 해서 전국 이곳저곳 누비고 다녔다. 물고기를 잡던 내가 물고기를 기르게 될 줄은 그때만 해도 예견하진 못했다. 물고기를 잡는 지식은 딱히 부족하지 않았지만, 기르는 지식은 거의 전무했다. 먹이는 뭘 주는지, 얼마큼 주는지, 물은 어떻게 갈아주는지, 뭐가 그리 복잡하고 어려운지… 우연히 접한 신세계는 접근 불가 수준이었다.
주인을 잘못 만난 구피는 한 녀석씩 떨어져 나갔다. 그럴수록 아이와 내 상처는 점점 커져갔다. 그러던 중 마지막으로 남은 암컷 한 마리가 잔뜩 부른 배를 털었다. 극적인 첫 출산이었다. 남의 새끼를 받아 키우는 것과 내 새끼를 받아 키우는 건 천지차이였다. 출산을 확인한 후 새끼를 격리시키고 곧바로 청계천으로 아이와 함께 갔다. 두어 번 검색하니 청계천이 물생활하는 사람들 성지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유일한 어항이었던 우리 집 유리 물병은 감당하기 힘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미안한 말이지만, 그 암컷이 출산하지 않고 죽었다면 나의 물생활은 거기서 끝났을 확률이 99%였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그때 청계천엔 가지 말았어야 했다. 간단한 어항 하나 사자고 갔던 청계천은 낙원이자 최고의 테마파크였다. 녹이 슬고 낡아빠진 간판뿐이었지만, 수십 년 된 수족관 안에 있는 열대어들을 처음 본 순간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정신 나간 손님을 알아챈 사장은 이것저것 끼워 팔았다. 난 그저 그 양반 지시대로 충실하게 주워 담았다. 작은 어항 하나 사러 간다더니 양손에 짐을 가뜩 쥐고 들어온 남편에게 던져진 와이프의 공격적인 시선도 하나도 두렵지 않았다.

결국에 알아버린 아마존 물생활
그렇게 어항을 하나 만들어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바닥에 심어둔 수초는 쑥쑥 컸고, 어항에 들어간 물고기 종류도 하나둘 늘어났다. 구피, 테트라, 플래코, 새우 등등. 입문 후 4년이 지난 지금 일본과 동남아, 중국을 거쳐 아마존 물고기들이 우리집 어항에 자리를 잡고 있다. 아마존의 신사로 불리는 코리도라스가 가장 애정하는 물고기가 됐다. 대략 100종이 넘는 코리도라스가 우리 집 어항을 거쳐 갔다. 마릿수로는 3, 4백 마리는 됐던 것 같다. 다 커봐야 어른 손가락 두 마디 조금 넘는 크기지만, 십만 원이 넘어가는 종류도 허다했다. 돈이 조금 모일라 치면 수족관 사장한테 새로운 들어온 코리도라스가 있냐고 묻기 바빴고, 호구 손님이 생긴 사장은 아마존에서 물고기가 비행기를 타기도 전에 현지 사진을 카톡으로 날려 주머니를 털어갔다. 이 녀석들은 바닥 생활을 하는 물고기인데 바닥에 떨어진 먹이를 ‘촙촙촙’ 집어먹는 모습을 보면 그게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다.
물생활에 빠져든 또 하나의 재미는 레이아웃(어항 꾸미기)이었다. 이것저것 검색하다 넋을 놓고 바라본 사진이 있었다. 사진 속 주인공은 ‘다카시 아마노’란 일본 수조 레이아웃 장인이었다. 사진작가였던 그는 자연을 수조 속으로 옮겨온 역사적 인물이었다. 물생활하는 사람에겐 최고의 명품으로 알려진 ADA 회사 설립자이기도 하다. 그 사람의 작품을 정신없이 수집하면서 레이아웃에 푹 빠졌다. 돌과 나무, 수초가 가장 기본 재료인데 레이아웃을 하게 되면서 바다나 산으로 놀러 가면 그냥 바닥만 보고 다녔다. 예쁜 돌, 특이한 나무뿌리를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나름 이 바닥에 국제대회도 있어서 국제 수초항 레이아웃 대회에 사진 몇 장 호기롭게 보냈다가 예선 탈락하기도 했다.

오늘도 ‘물멍’하고 있습니다
물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쓰는 말 중에 ‘물멍’이란 단어가 있다. 어항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다고 해서 생긴 말이 물멍이다. 집에 가면 매일 한번은 하는 게 물멍이기도 하다. 특히, 전쟁 같은 하루가 지나간 날이면 어항 조명만 하나 켠 채 거실 조명을 끄고 수조를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두 팔 벌린 것보다 좁은 어항 속 세상이지만, 그 안은 전혀 다른 세상이다. 한없이 한가롭다가도 극도의 긴장감이 흐르기도 한다. 수조만 바라보고 있으면 한 시간 정도는 금방 지나가곤 한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생활을 자주 추천하는데 그건 바로 이 이유 때문이다. 매일매일 전쟁 치르듯 살아가는 기자들에게 물생활은 짧지만 강한 평화를 가져다줄 것이라 확신한다. 어항이 크고 작은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치열한 일상과 완전히 단절된 또 다른 세상을 내 곁에 두고 보는 건 생각보다 재미가 쏠쏠하다.

Posted in 2017년 7.8월 호, 격월간 방송기자, 나의 반려동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