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이제는 방송 정상화다 ⑥_내가 있어야 할 자리는 어디인가?_YTN 조승호 해직기자

내겐 징크스가 있다. 내 딴에는 절박하게 만든 징크스다. 남들은 웃을지도 모른다.
2010년 아내가 뇌출혈로 쓰러졌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뭐라도 해야 했다. 왠지 자리를 뜨면 불길한 일이 생길 것만 같았다. 수술실 앞 나무의자에서 버텼다. 주변에서는 ‘뭐라도 좀 먹으라’ 권했지만 거절했다. ‘수술 끝날 때까지 이 자리에서 버티자’는 생각뿐이었다. 6시간 뒤 주치의로부터 “수술 잘됐다”는 말을 듣자마자 곧바로 화장실로 달려갔다. 어느 후배는 이를 ‘배뇨억제신공’이라 불렀다.
2012년 아버지가 중환자실에 입원하셨다. 연세가 많은 데다 천식을 오래 앓다 보니 폐렴 증세가 심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뭐라도 해야 했다. 왠지 내가 머리와 수염을 깎으면 불길한 일이 생길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냥 놔뒀다. 3개월 뒤 아버지가 일반 병실로 옮긴 날 나도 면도를 했다.

아버지께 복직 보여드리게 돼… 촛불시민들께 감사
아들이 기자 됐다고 그렇게 자랑스러워하고, 하루 종일 YTN만 보시는 아버지였다. 함께 해직된 우장균, 현덕수, 권석재 씨는 끝내 아버님 생전에 복직을 보여드리지 못했다. 나도 그럴 수밖에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이 달라졌다. 지금까지 버텨주신 아버지가 고맙고, 대한민국의 잿빛 상황을 장밋빛으로 바꿔준 촛불이 감사하기만 하다.
지금까지는 ‘어떻게 버틸까’라는 현재가 화두였다면, 이제는 YTN 복직 후의 미래가 화두가 됐다. 내가 YTN에 돌아가는 의미는 무엇이고, 돌아가서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호치민의 일화가 생각난다. 베트남 전쟁 전 호치민은 젊은이들을 모스크바와 평양 등으로 유학을 보냈다. 그들을 보내면서 항상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너희들이 유학을 가 있는 동안 조국에서는 전쟁이 일어날 것이다. 많은 이들이 죽고 국토가 파괴되겠지만, 우리는 결국 승리할 것이다. 승리한 뒤에는 조국을 재건해야 한다. 너희들의 임무는 파괴된 조국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거다. 그러니 전쟁이 났다고 중간에 싸우러 오지 말고 끝까지 공부를 해라.” 실제 전쟁이 났을 때 평양에서 유학생들이 눈물을 머금으며 호치민의 당부를 되새겼다고 한다.
여기에 대입해 생각해 본다. 나는 어떤 자리에 있어야 할까? 뜨거운 가슴으로 총을 들고 싸우는 전사의 자리일까? 냉철한 머리로 전쟁 이후 조국을 재건해야 하는 자리일까? 물론 둘 다 역량이 된다면 가장 이상적일 것이다. 실제로 YTN에는 그런 동료와 후배들이 많다. 하지만 나는 내 그릇을 안다. 9년간의 해직 생활… 뜨거운 가슴으로 버텨왔다. 이제 세상이 바뀌고 있다.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많지만, 총을 들고 싸우는 시기는 지난 것 같다. 뜨거운 가슴을 동반한 냉철한 머리를 필요로 하는 시대가 왔다. 새로운 시대에는 그에 맞는 새로운 주인공이 있게 마련이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짐을 넘어선다면 그건 욕심이다.

“빛나는 과거가 어두운 현재를 합리화할 수 없다”
이제부턴 해직기자 출신이라기보다는, YTN 기자 300명 중에 1명으로, YTN 노조원 400명 중에 1명으로 살아가고자 한다. 해직기자… ‘훈장’일 수도 있고 ‘멍에’일 수도 있다. 과거의 노조 활동이나 민주화 이력을 자랑하는 선배들을 봤다. 비판을 받으면 과거 이력을 내세운다. 그렇지만 “빛나는 과거가 어두운 현재를 합리화할 수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내가 잘못된 길을 가면 후배들이 비판할 것이다. 그때 “나는 공정방송으로 해직됐던 사람이야” 이런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노종면 씨가 ‘꼰대’ 소리 듣지 말자고 했다. 해직 경험을 내세워 방패막이를 하는 순간 나는 ‘꼰대’가 될 것이다. 항상 ‘현재’가 부끄럽지 않는 선배가 되고 싶다.
그동안 후배들에게 미안한 부분이 많다. 밖에서 YTN 보도에 불만이 많았다. 책임지지 않는 입장에서, 시청자의 관점에서 후배들에게 많은 비판과 질책을 했다. 안 그래도 해직 선배들에게 부담을 안고 있을 후배들에게 가슴을 후벼 파는 질책을 했으니 후배들이 느꼈을 아픔이 적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이제는 더 이상 비판자의 관점에 서지 않을 것이다. YTN 보도에 공동 책임을 지는 위치에 서야 한다. 비판을 안 받으려고 최대한 노력하겠지만, 사람이 하는 일이 완벽할 수는 없다. 그래서 YTN 보도가 비판받을 일이 생긴다면, 더 이상 비판하는 위치가 아니라, 이제는 동료와 후배들의 곁에서 함께 비판받는 위치에 서는 것이 내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Posted in 2017년 7.8월 호, 격월간 방송기자, 특집-이제는 방송 정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