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이제는 방송 정상화다 ⑤_다시 살아있는 뉴스, 깨어있는 방송을_YTN 현덕수 해직기자

 

옷장 한 편에 걸어 놓았던 양복을 오랜만에 꺼내본다. 먼지가 쌓였다. 9년 전 스타일이라, 재킷은 헐렁거리고 바지통은 또 어찌나 넓은지… 어색하다. 새로 장만해야겠다.  9년에 가까운 해직 기간이 곧 끝날 것이라는 기대가 어느 때보다 높다. 직업인의 세계로 다시 발을 들여놓는 것이다. 옷은 돈을 주고 다시 장만할 수 있겠지만, 어떤 모습과 내용으로 다시 사람들 앞에 설 것인가? 기대 못지않게 두려움이 앞선다. 2008년 이후 YTN에는 대통령 선거 캠프출신 낙하산 사장이, 정권에 충성스러운 사람이, 방송 문외한인 은행장 출신이 사장으로 왔다 갔다. 이제 지난 9년간 우리가 그토록 외쳤던 ‘공정방송’의 외침은 잦아들지 모른다. 부도덕한 정권을 촛불로 심판한 유권자가 만들어낸 정권이 들어섰고, 때마침 새로운 사장을 선임하기 위한 절차가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시청자로서 바라본 YTN… 생기를 잃다
요즘 부쩍 24번으로 채널이 자주 돌아간다. 내가 돌아갈 직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YTN은 생동감을 많이 잃었다. 시청자들에게 보이는 저 화면 이면에는 많은 동료들이 힘겹게 그리고 바쁘게 방송을 이어가고 있을 테지만 말이다. 시청자의 입장으로 다시 YTN을 바라본다. YTN에는 현장과 기자가 사라진 듯하다. 전성기 때 보여줬던 날 것 위주의 생생함으로 무장한 ‘살아있는 뉴스, 깨어있는 방송’라는 모토가 퇴색된 지 오래다. 채널을 이리 돌리고 저리 돌려도 그 나물의 그 밥이다. 종합편성 채널과 뉴스전문 채널이 추가로 출현하면서 각 채널의 뉴스 스튜디오는 전문가들, 심지어는 정치 지망생들의 인지도를 높이는 도구로 전락해 버렸다. 평론 중심의 뉴스 진행이 대세가 돼버렸다. YTN도 예외가 아니다. YTN해직기자가 아닌 시청자로서 바라본 오늘의 YTN의 모습이다.

변화와 혁신을 통해 신뢰를 되찾고 싶다
이제 다시 시청자가 아닌 직업인으로서 YTN으로의 복귀를 앞두고 있다. 다행히 회사 안에서는 후배들을 중심으로 콘텐츠 혁신의 기운이 꿈틀대고 있다. 그동안 방송에 반영되지는 않았지만, SNS 등에서 보도인 듯, 보도가 아닌 듯, 게릴라처럼 치고 빠지는 콘텐츠 제작의 시도들이 있었다. 낙하산 사장, 정권에 충성스러운 사장, 은행장 출신 사장이 허용하지 않았지만, 조바심을 태우면서도 꺼뜨리지 않았던 속내와 고민들을 간직해왔던 동료들이 적지 않다. 이들과 함께 변화와 혁신을 꾀하고 싶다. 그리고 다시 시청자들의 신뢰를 되찾고 싶다. ‘어디선가 무슨 일이 터지면’ YTN으로 채널을 돌리게 만드는데 일조하고 싶다.

현장에 답이 있다
결국 현장에 답이 있을 것이다. 미디어 환경의 변화는 수많은 현장을 만들어내고 있다. 기자가 뉴스의 현장을 취재해 대중에게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매스미디어의 시대는 저물고 있다. 뉴스와 수용자들의 접촉 방식도 다양해지고 있고, 수용자들은 점점 더 분화되고 있다. 뉴스 수용자들은 수동적인 소비자로서가 아니라, 능동적인 뉴스 전파자로서의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게이트키핑은 뉴스 제작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닌 시대가 도래했다. 데이터를 활용한 뉴스 발굴과 시각화도 중요해지고 있고, 뉴스와 수용자가 어떤 방식으로 관계를 맺는지에 대한 데이터 수집과 분석도 중요하다. 이 모든 것이 현장이고, 이 현장을 통해 뉴스는 생산되고 공유되며 확산될 것이다. 인공지능과 알고리즘을 통해 개별 수용자에게 최적화된 콘텐츠를 추천하고, 우리의 플랫폼에서 머무르고 즐기게 하는 일도 중요하다. 한편으로는 플랫폼의 한계를 넘어 디지털 환경에 최적화된 SNS를 활용하는 것 역시 과제다. 이처럼 디지털 미디어 환경은 급변하고 있다. 이곳 역시 현장이다.
회사 밖에서 막연하게나마 듣고 배운 현장들에 대한 고민을 동료들과 함께 풀어내고 싶다. 쓰러져가는 YTN의 브랜드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디지털 퍼스트’에 대해 앞서 고민해온 동료들에게서 배우고 싶다. 덧붙여 방송의 매력은 협업에서부터 나온다는 소중했던 경험을 다시 확인하고 싶다. 해직기자가 되기 전 14년여의 현업 경험 중에 유독 중계나 뉴스 진행에 대한 기억이 오래 남아있다. 취재와 카메라 기자, 기술 스텝들이 한데 어우러져 만족할만한 방송을 해냈을 때의 희열을 다시 느끼고 싶다. YTN은 지난 9년의 해직 기간에도 단일노조를 유지하고 있을 만큼, 구성원들 간의 유대는 돈독하다. IMF때, 월급을 받지 못하면서도 회사를 살려낸 저력이 있다. 그로부터 10년 뒤 낙하산 사장과 대량 해직, 징계라는 아픔을 겪었다. 다시 9년을 넘기면서도 우리는 ‘제대로 된 뉴스’를 만들어보자는 꿈과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팀 안에서 미뤄왔던 성취의 기쁨을 누리고 싶다. 팀이 천재를 이긴다. 기다려라 YTN.

Posted in 2017년 7.8월 호, 격월간 방송기자, 특집-이제는 방송 정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