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이제는 방송 정상화다 ④_경력기자가 본 MBC 보도국_2012년 파업 이후 입사한 MBC 경력기자

MBC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2012년 파업 이후 내부 갈등이 아무리 심각하더라도 공영방송으로서 품격과 자존심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였다. 이를 테면 대범함 말이다. 봐야 할 것을 보고, 때론 보기 싫은 것도 보는 대범함. 성역이 없고 논쟁적 주제를 피하지 않는 자세, 공영방송의 책임이기도 하지만 특권이라고 내심 부러워했다. 공영과 민영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태생적 매력을 가진 매체는 드물다. 하지만 순진한 기대였다.
지금은 평범함 혹은 그 이하의 것들이 보도국을 감싸고 있다. 시청자와 MBC 스스로에 대한 의무를 저버린 뉴스, 불편하고 불공정한 뉴스, 극단적인 특정 세력이 칭송하는 뉴스를 보다 보면 가슴이 막막해진다. 스테이션 이미지가 무너지니 예능과 드라마 PD들도 회사를 떠난다. MBC가 하루아침에 이렇게 되진 않았을 것이다. 누가? 왜?

불순물이 걸러지지 않는다
게이트키핑 과정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 취재 아이템이 선정되고, 기자가 취재를 하고 데스킹 과정을 거치면서 소위 이야기 안 되는 것들, 불순물이 걸러져야 한다. 그러나 걸러지지 않는다. “설마 이런 아이템이 뉴스데스크에 나가겠어. 오후에 큐시트에서 빠지겠지” 하지만 편파와 왜곡, 지상파 뉴스라고는 믿기 어려운 낯 뜨거운 아이템들이 전파를 탄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탄핵 과정에서 보여준 MBC 뉴스가 그 결정체다. 모든 언론사가 국정농단에 놀라 ‘이게 나라냐’고 탄식하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파고들 때 박근혜 정권을 미화했다. <방송기자> 지난 호에 자세히 실렸듯이, 대선에서는 노골적인 편파보도가 이뤄졌다. 어느 언론사이던 공정 보도를 못하는 일이 발생한다. 하지만 도를 넘으면 자정 작용이 일어난다. 그래야 공공 영역으로 신뢰받는 언론사의 수명을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MBC는 자정능력을 잃었다.

MBC 보도국에서는 문제를 제기하면 해당 부서에서 또는 보도국에서 제거된다. 대신 간부들이 일방적으로 기사를 고치고 취재를 지시한다. 복잡한 사안이 더 복잡하고 더 불공정하게 변질되는 일, 지금 MBC에서 일어나고 있다.

누구에게 충성하나
황당한 이야기가 있다. 파업 이후 입사한 경력기자는 뽑아준 현 경영진에 의리 혹은 충성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언론사 특히 공영방송은 ‘위임된 권한’을 행사한다고 믿는다. 기자는 시청자와 국민을 대신해서 권력자에게, 또는 죄지은 사람에게 질문할 권리와 책임이 있다. 공영방송 MBC에 입사했다면 뽑아준 사람에 대한 인간적 고마움을 느낄 수 있지만, 그 이후에는 시청자와 국민에게 대한 책임이 먼저다. 누군가는 대통령의 지시에 너무 순응했다며 법정에서 후회하지만 들어주는 사람이 없고, 다른 누군가는 위법한 지시를 어떻게 따르냐며 당당히 말해 울림을 남긴다. 우리 기자들 스스로 돌아봐야 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사실 내가 아는 경력 기자 대부분은 MBC 뉴스의 문제점을 깊이 공감하고 있다. 열심히 일하고 있는 한 기자는 최근 “정말 이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보도국에 있는 다른 경력 기자는 “갈수록 막 나간다. 빨리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보도국은 조용하다. 각자가 행동하는 방식과 배경에는 흑백 논리로 재단하기 힘든 복잡함이 있다. 낯선 조직, 여러 가지 감정적 불편함이 주는 현실적 어려움도 크다. 그러나 MBC가 추락한 지금은, 뉴스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때다.
물론 경력기자 누군가는 데스크와 충돌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다른 누군가는 촛불집회 취재 현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로 악몽을 꾸며 분노하고 고민했다. 또 다른 누군가는 노조 가입으로 인사 보복을 당하거나 탈퇴를 요구받았다. 또한 사장 퇴진 성명에 동참한 사람들도 적지 않다. 앞으로 더 많은 경력기자들이 이러한 노력들에 동참했으면 한다. 그것이 MBC가 다시 시청자의 품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정상화 시작은 사장 퇴진
경영진은 최근 방문진 업무보고에서 MBC뉴스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보도로 균형을 잡아왔다”고 했다. 평범한 사람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본다고 한다. 경영진의 판단이 딱 그러하다. 최근 만난 유력 언론사 기자는 “야근할 때 MBC뉴스를 모니터링 안한 지 오래됐다”고 했다. 시청률도 숫자를 언급하기 부끄러울 만큼 바닥을 친지 오래다.
MBC 보도국의 쪼그라든 자존심, 추락한 공영방송의 품격, 멀어진 시청자와의 간격. 그러나 아직 늦지 않았다. MBC 개혁의 시작은 방송 사유화와 편파 왜곡 보도, 바닥을 친 뉴스경쟁력을 자초한 김장겸 사장의 퇴진이다.

 

Posted in 2017년 7.8월 호, 격월간 방송기자, 특집-이제는 방송 정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