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이제는 방송 정상화다 ③_매일 고쳐 써야 할 반성문_MBC 곽동건 기자 (사회2부)

지난달 MBC 보도국 동료 몇과 함께 글을 썼다. “2017년 6월, 희한한 시대입니다”로 시작하는 글이다. 애써 종이에 손으로 꾹꾹 눌러 적은 것은 그 글이 ‘대자보’였기 때문이다. 한 자리에 모인 동료들이 그간 MBC에서 느낀 것들은 저마다 달랐지만, 몇 가지 통하는 점은 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기사들이 끊임없이 전파를 타는 이 순간에도 고요하기만 한 보도국을 견딜 수 없다는 것. 이곳에 불편한 균열을 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대자보를 쓰기 직전, 회사는 사내 게시판에 올라온 ‘사장 퇴진 성명’을 모조리 삭제했다. 나는 지금까지도 사내 게시판에 접속조차 할 수 없다. ‘조직 내 건전한 의사소통’을 해쳤다는 이유다. ‘건전한 의사소통’이 무엇인지, 공지에 적힌 ‘조직’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도 좀처럼 짐작해내기 힘들다. 앞서 동기들과 함께 MBC 보도 참사에 대한 반성문을 써서 읽고, 공공연한 곳에 게시했다는 이유로 징계 처분을 받았다. 시대를 역행하는 회사에 저항하기 위해 우리는 가장 오래된 방식을 택하기로 했다.

‘침묵한 죗값’ 어떻게 갚을까
대자보는 쉽게 쓰이지 않았다. ‘사장 퇴진과 공영방송 정상화’를 내건 2012년 MBC의 최장기 파업. 당시 나는 냉소적인 시청자였다. 5년이 지난 오늘, 멀찍이 떨어져 관전만 했던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고 믿는다. MBC에 들어온 뒤로는 죄를 더 많이 지었다. 세월호 가족들에게, 고 백남기 농민에게, 국정농단에 분노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온 시민들에게. 부채감은 좀처럼 씻기지 않는다. 원죄로 남았다.
그 죄는 결국 침묵한 죄다. 코앞에서 불의의 향연이 벌어지고 있음을 두 눈 똑똑히 뜨고 지켜보았지만, 때로 그 사태에 양심을 속여가며 가담하였지만, 끝내 그것이 ‘그르다’고 외치지 않은 죄다. 수습 시절, ‘기자는 기사로만 말한다’고 배웠다. 배운 그대로 언젠간 내 기사로 말할 수 있을 거라며 목소리 내는 일을 유예했다. 하지만, 솔직히 난망한 일이라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었는지 모른다.

엄청나게 부끄럽고, 믿을 수 없게 무거운
막내라고 하기도 민망한 4년 차가 됐다. 내 일 하나 똑바로 한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도 힘들다. 그러나 스스로를 탓하며 보낸 시간 끝에 ‘이러다 아무 말도 못 하고 인생 끝나겠다’는 확신이 찾아왔다. 처음 맞서야 했던 건 아이러니하게도 ‘다치지 말라’ 말하는 선배들이었다. ‘막내’라는 이름은 특권인 동시에 그래서 늘 무거운 짐이기도 했다.
다행히도, 최근 MBC는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그것이 단순히 외부 환경이 변했기 때문이라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이다. 때로 그것이 말뿐인 것이라 믿고 싶은 이들도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최소한 말로도 안 하는 사람이 무언가 행동하는 법은 없다. MBC는 지금보다 더 들끓어야 한다. 그 어지러운 소란 속에서 지난날의 자신을 지금의 MBC에 다시 비춰볼 힘이 남아 있다면, 그래도 희망이 있다고 믿는다.

추락한 공영방송의 염치
희망을 뜻하는 한자어 희希에는 ‘드물다’는 뜻도 있다고 한다. 희망은 간절히 바라는 것이면서 동시에 말도 안 되게 희박한 것이기도 하다. MBC의 앞날은 아주 희미한 무엇을 건져 올려 그것을 굳건히 자리 잡게 하는 싸움의 과정이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김장겸 사장 퇴진’을 아주 하잘것없는 목표로만 여긴다. 쫓겨난 선배들이 돌아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일뿐이다. 단지 누구 한 사람을 내쫓고, 누군가를 돌려놓기 위해 여태 이 모멸을 견뎌온 것은 절대 아니기 때문이다.
부끄러움을 알아야 인간이다. 그 덕에 우리는 힘겹게나마 염치를 지키며 살아갈 수 있다. 공영방송의 염치는 우리가 모두 참사의 공범임을 자각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권력과 불화하지 않았던, 그래서 이 세상이 돈과 힘을 가진 이들의 입맛대로 돌아가게 내버려 두었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출발점이다. 또 한 번 누구도 시키지 않은 숙제를 스스로에게 낸다. MBC 기자로 사는 것이 떳떳할 때까지 매일 이 반성문을 고쳐 쓰겠다. 말과 글, 진실의 힘을 다시 붙들어 놓치지 않을 것이다.

Posted in 2017년 7.8월 호, 격월간 방송기자, 특집-이제는 방송 정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