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이제는 방송 정상화다 ②_KBS 기자 281명은 왜 총파업을 촉구하는가?_KBS 이재석 기자 (국제부)

요즘 KBS 사정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이미 KBS 소속 기자 281명의 성명서를 대충이나마 읽어보았을 것이다. 물론 공영방송 재건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든가 언론계 종사자들이나 어느 정도 시선을 둘 뿐, 한때 욕이라도 실컷 얻어먹었던 KBS가 이제는 사실상 무관심의 대상으로 전락한 지도 꽤 오래된 것 같아 씁쓸할 뿐이다. ‘무플보다 악플이 낫다’는 세간의 이야기는 이런 맥락에서 맞는 말인데, 여하튼 자신의 실명을 올린 281명의 생각은 성명서에 그대로 담겨 있다. 그게 281명의 뜻이다. 더 보탤 것도 뺄 것도 없다. 사장과 이사장은 마땅히 퇴출되어야 하며, 그렇게 하도록 만드는 실질적이고도 유일한 길은 총파업 또는 제작거부다.

‘13년 차 이하’ 기자들의 주장이라서 방송사 안팎에선 이번 성명서가 ‘젊은 기자들’의 외침으로 읽히는 것 같다. 뭐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281명의 주장이 일정 연령대 기자들만의 독자적인 생각은 아니라고 확신한다. 13년 차 이하든 이상이든 무엇이든 KBS 보도국 기자들이 갖고 있는 어떤 공감대를 표현한 거고, 그것을 가장 먼저 성명서 형태로 표출했을 뿐이다.

왜 고대영인가, 왜 총파업인가
KBS 기자들이 왜 총파업 또는 제작거부를 촉구하는가 하는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서는 질문을 두 개로 나눌 필요가 있다. ①왜 고대영인가 ②왜 총파업인가.
왜 고대영인가. 사실 이 질문은 허망하다. 분명히 말하건대 지난 9년 동안 KBS 추락의 역사에서 딱 한 명의 주역을 꼽으라면 단연 고대영이다. 이병순도 김인규도 길환영도 아닌 고대영이다. 그가 보도국장-보도본부장-사장을 거친 기간은 KBS 저널리즘 몰락의 시기와 고스란히 포개지며, KBS 기자 사회가 무력감과 패배주의에 한없이 젖어들었던 시기와 정확히 겹친다.
이미 성명서에 밝힌 대로, 고대영 사장의 임기를 보장해주는 것이 마치 공영방송 독립성을 사수하는 일인 양 취급되는 건 어처구니없는 형식논리다. 그것은 고대영이라는 인물이 보여 온 행보에 대한 판단을 삭제하고, 그가 KBS에 끼친 악영향을 깨끗하게 살균 포장했을 때만 성립할 수 있는 관념적 명제다. 저널리즘 기본 원칙과 가장 위배되는 사람을 저널리즘 독립의 파수꾼으로 둔갑시키는 꼴이라니. 그것을 우리는 ‘난센스’라 부른다.

왜 총파업인가. 솔직히 고백하건대 KBS 기자들 사이 고민이 없는 건 아니다. 파업이 결코 쉬운 일도 아니고 위험요소가 다분하다는 것을, 특유의 현실감각으로 무장한 기자들이 모를 리 없다. 정확히 계량할 수는 없지만 총파업에 대한 생각도 개개인마다 농도 차이가 있다면 있을 것이다. 하지만 281명은 다른 데로 돌아갈 수 없다는 어떤 큰 원칙에 뜻을 모았다. 고대영 사장을 퇴출시키는 사실상 유일한 길이 그것뿐이라는 것을 직시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역설적인 말이지만, 어찌 보면 이것도 기자들 특유의 현실감각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현실감각은, 파업이 매우 어렵고 복잡한 것이라고 판단하게 하며 스스로를 얼마쯤 주저하게 만들지만, 그러나 또 정반대로 그것만이 우리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게 하는 유일하고도 실질적 방도라고 깨우쳐준다. 우리는 총파업의 양가성 모두를 잘 인식하고 있다.

재건의 기회, ‘쥐어짜듯’ 열어젖혀야
정답은 누구도 모른다. 어떤 길이 현명한 것인지 우리는 그저 나중에 사후적으로 판단할 수 있을 따름이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런 것이다. 우리가 지금 이 시점에서 사실상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그러니까 사장과 이사회의 임기가 마무리되는 내년 말을 기다리며 그냥 하루하루를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소비한다면 KBS 저널리즘은 그 자체로 희망이 없다. 시민들이 만들어준 기회의 공간을 스스로 박차버리는 꼴이기 때문이다. 무능하고 의지박약한 우리들에게 어느 누가 따뜻한 시선을 보내주겠는가. 시간이 자동적으로 가져다주는 한정된 수준의 자유가 KBS 저널리즘을 재건해준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그야말로 착각이다. KBS 구성원들이, 특히 가장 처참하게 무너진 보도국 구성원들이 자발적 행동으로 치열하게 재건의 기회를 ‘쥐어짜듯’ 열어젖혀야 한다. 우리는 그 길을 걷고 싶다.

 

Posted in 2017년 7.8월 호, 격월간 방송기자, 특집-이제는 방송 정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