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3회 뉴스부문_<시사기획 창>일터의 이방인_KBS 최광호 기자

< 내 주변의 이방인들을 위해 >

 

우리 사회에서 비정규직은 오래된 상처다. 워낙 긴 기간을 제대로 치료받지 못해서, 이제는 곪을대로 곪은 상태다. 그런데도 치료 대상이라기보다 오래된 흉터 정도로 여겨진다. 보기에 좋지 않고 안타깝기도 하지만,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투다. 취재를 시작할 때도, 그 점이 고민거리였다. 비정규직 문제 심각한거 누구나 알지, 그래서 뾰족한 방법이 있나? 이런 반론을 어떻게 뚫고 갈 것인가. 낡은 문제지만, 새로운 이야기처럼 풀어낼 필요가 있었다. 또한 그들을 동정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데서 멈추는 프로그램도 만들고 싶지 않았다.

 

– ‘비정규직은 누구인가

먼저 ‘비정규직’에 대한 개념부터 정리해야 했다. 말뜻을 그대로 해석하자면, 비정규직은 정규직이 아닌 사람을 말한다. 그런데 이 개념을 글자 그대로 현실에 적용하면 혼란이 생겨난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 대기업 용역업체 소속 정규직은, 비정규직인가 아닌가. 그들은 법적으로는 정규직이만, 사실상 비정규직이나 다름없다. 용역 관계 자체의 불안정성 때문이다. 어떤 용역업체 정규직은, 대기업에 직고용된 비정규직보다 더 큰 고용불안을 겪는다. 하지만 이들은 법적으로 비정규직이 아니다. 낡은 규정의 한계다.

학습지교사, 자동차 영업사원 등은 어떨까. 그들은 특정 업체에 소속돼 업체의 지시를 받으며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개인사업자로 분류돼 ‘비정규직 통계’에 잡히지조차 않는다. 정상 고용된 비정규직이라면 얻을 수 있는 최소한의 4대보험 혜택도 이들에게는 돌아가지 않는다. 과거 정규직이 하던 일이 조금씩 비정규직들의 업무로 쪼개졌다면, 이제는 비정규직이 하던 일들의 일부가 개인사업자들에게 쪼개지는 단계로 진화된 것이다. 비정규직이라는 규정에서 벗어나야 했다. ‘일터의 이방인’이라는 표현은 그렇게 나왔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이 사회에서 이방인들이 급증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고 있다. 그래서 청년들은 대기업 정규직에 목을 매거나, 노량진 공무원 고시촌으로 몰려든다. ‘직업의 안정성’은 다른 직업가치를 압도한다. 그래서 그렇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갖게 된 누군가는, 그 자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 혈안이 된다. 최근 한 완성차 노조는 비정규직 조합원들을 사실상 조합에서 제명했다. 점차 확산되는 불안감이, 이제 우리 안에 남아있던 최소한의 인간다움마저 파괴시키고 있다. 우리는 달라져야 한다.

 

그들의 주인의식을 기억하며

개인적으로, 방송 제작 과정에서 끊임없이 마음 한켠이 무거워지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내 주변의 이방인들 때문이다. 비정규직을 없애야 한다는 프로그램을, 방송국 비정규직들이 함께 만들어주었다. 취재, 제작 과정 내내 문득문득 찾아오는 죄책감을 비껴가기 힘들었다. 그들이 누구보다 더 강한 주인의식을 갖고 업무에 임해줬기에 더 미안했고, 더 무기력했다. 모든 취재현장에 함께해 준 오디오맨 윤수씨, 프로그램을 풍성하게 해준 서현님, 수민님과 예원님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는 말씀을 드릴 뿐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새로 선출된 대통령이 지속적으로 비정규직 문제 해결 의지를 표하고 있다는 점이다. 제도 개선의 혜택이 하루빨리 내 주변의 이방인들에게도 전파되길 기원한다. 늘 믿고 의지하는 송상엽 선배, 성동혁 님께도 존경과 감사의 뜻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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