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반려동물_반려동물이 깨닫게 해주는 몇 가지 것들_KBS 송형국 기자 (경제부)

생후 2개월 입양 때 사랑이는 8kg 남짓이었다. 3살인 지금은 43kg을 넘는다. 래브라도 리트리버 중에서도 골격이 크고 근육도 좋은 편이다. 8남매 가운데 맏언니로 태어나 형제들 사이에서 단연 대장 노릇을 했다는 게 사랑이를 입양 보낸 견주의 말이다. 사랑이의 친모인 린이 역시 40kg이 넘는 우량견이다. 린이네는 강원 홍천에서 애견 펜션을 하고 있어 가끔씩 모녀 혈육 상봉이 이뤄진다. 대개 애견 펜션이란 이름이 붙어있어도 사랑이처럼 거대한 아이를 받아주는 곳은 많지 않다. 몸집이 작은 고객견들이 깔려 다칠 수 있기 때문이다. 린이네 펜션은 대형견 전문인 데다 기막힌 경치를 배경 삼은 풀장까지 갖추고 있다. 린이네에 찾아가면 다른 곳으로 입양 간 동생들을 만나거나 소식을 전해 들으며 사랑이 모녀가 부둥켜 뛰노는 걸 볼 수 있어, 얼굴에 절로 웃음이 밴다. 얼마 전에는 파주로 입양 간 사랑이의 동생이 새끼를 출산했으니 린이는 이제 할머니다. 린이가 엄마가 된 2014년 6월, 린이 견주는 인터넷에 8남매의 입양 광고를 내면서 수컷 한 마리는 보내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속으로 ‘상태가 가장 좋은 아이여서 견주 본인이 키우려나 보다’하고 지레짐작했다. 녀석의 이름은 울버린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태어날 때부터 앞발 한 쪽이 성치 않은 조짐이 보여 다른 사람에게 보내지 않은 것이었다. 증상이 나타난 건 몇 개월 뒤였으므로 모른 척 내보낼 수 있었겠지만 견주는 그러지 않았다. 나머지 7마리는 지금도 린이네에게 소식을 보내오고 있다. 린이 견주는 자신이 키우는 개뿐 아니라 자신에 의해 세상에 태어난 새끼들까지도 유기견이 되지 않도록 마음을 쓰고 있다. 울버린은 지금 한쪽 다리를 조금 절지만, 공기 좋은 홍천의 드넓은 뜰에서 엄마 린이와 함께 충분히 행복하게 살고 있다.

사람은 보고 개는 맡는다
사랑이도 좁으나마 마당에 산다. 아파트보다는 괜찮은 환경이겠지만 녀석 덩치에 우리 집 작은 마당이 성에 찰 리가 없다. 산책을 생고기만큼이나 좋아한다. 집 뒤편 산책 코스는 남쪽으로 북악산이 바라보이는 북한산 자락이다. 나는 보고, 사랑이는 맡는다. 잡초가 무성하거나 낙엽이 썩어가거나 동족이 일주일 전에 오줌을 눴거나 하는 곳을 만날 때마다 킁킁킁, 습습습, 사랑이 코는 한껏 신이 난다. 인간의 후각수용세포는 약 5백만 개, 개는 2억 2천만 개쯤 된다. 코로 세상을 보는 개들에게 재미나고 맛있고 새로운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산책은 잘 만든 할리우드 영화처럼 즐거운 놀이다. 수많은 미생물들이 투쟁하고 사랑을 나누며 생로병사 하는 모습을 죄다 코로 볼 수 있으니 얼마나 흥미로울까. 어떤 케이블TV 채널은 사람이 아닌 개를 위한 전용 방송을 표방하는데, 이건 참으로 인간스러운 ‘개소리’다. 개의 시각은 사람의 그것과 달리 잔상이 거의 남지 않기 때문에 1초에 24번 깜박이는 TV영상을 24개의 정지화면으로 인식할 수 있다. 결정적으로 TV에는 냄새가 없다. 개들이 TV를 통해 감흥을 느끼리라 기대하는 것은 귀를 막은 채 오케스트라 연주를 들은 다음 기사를 쓰라고 요구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개가 뚫어져라 TV를 쳐다본다면 이상한 빛의 움직임을 신기해하는 것일 뿐이다.
개와 함께 사는 것은 이처럼 나와 다른 입장에 한 발짝씩 다가서는 일이기도 하다. 개가 카펫에 똥을 누거나 리모컨을 씹어 잡숫거나 옆집에서 신고가 들어갈 정도로 하울링 하는 등, 문제 상황을 겪는 가족도 적지 않다. 대부분의 경우 해답은 산책에 있다. 온갖 간식에 장난감을 안겨봐야 그때뿐, 스트레스성 정서불안 증상은 해결되지 않는다. 주말이면 우리 가족 4명이(나, 아내, 딸, 그리고 사랑이) 함께 동네 산책에 나선다. 사람으로 치면 한창 청년 나이인 사랑이의 걸음걸이는 늘 내가 내는 최대한의 도보 속도를 초과한다. 유산소운동 효과가 상당하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사랑이의 푸짐한 엉덩이를 구경하며 가족끼리 농담을 따먹다 보면 1시간이 훌쩍이다. 사랑이는 좋아하는 냄새를 따라 길을 재촉하면서도 우리 가족의 위치를 수시로 확인한다. 사회적 동물인 개에게 있어 함께 산책하는 사람과의 교감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신뢰의 축적 과정이다. 함께 먹이를 찾아나서는 동료 본성이 생겨나는 것 같다. 사랑이는 ‘앉아’ ‘엎드려’ ‘일어서’ ‘기다려’ ‘먹어’라는 5개 초급 단어뿐 아니라 ‘이리와’ ‘뛰어’ ‘천천히’ ‘가자’ ‘안 돼’에 이르기까지 10개 중급 어휘를 정확히 알아듣고 따른다. 맹훈련을 거친 것도 아니고 그저 산책하며 조금씩 가르친 것뿐인데 말이다. 사랑이는 나를 완벽하게 믿고, 우리 가족은 그런 사랑이를 보며 든든한 충만함을 느낀다.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기
다른 생명체와의 의사소통을 그린 문학작품 가운데 결정판으로는 테드 창의 SF소설 「네 인생의 이야기」가 있다. 최근 드니 빌뇌브 감독의 <컨택트>(Arrival)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됐다. 어느 날 갑자기 지구를 찾은 외계인들의 방문 목적을 알아내기 위해 언어학자와 물리학자가 투입된다. 언어학자가 외계어를 얼마간 파악하는 동안 물리학자는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다. 세상을 인식하는 조건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질량이나 속력 등을 따지는 물리적 법칙들이 소용없는 것이다. 주인공인 언어학자가 외계인들과 조금씩 소통하게 되는 작품 속 과정은 한편으로, 우리가 반려동물의 생각을 얼마나 모르고 있는지를 깨닫게 해주는 가르침이기도 하다. 원작 소설에선 인간들의 고난도 수학 법칙이 외계인들에겐 상식으로 묘사된다. 반려동물에게도 비슷한 경우는 허다하다. 조금 노력한 끝에 개의 몸짓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어렴풋이 알게 되더라도 나의 행동이 개에게 뭘 말하고 있는지는 모르는 이들이 많다. 따지고 보면 미래를 걱정하지 않고 현재만을 살아가는 개들이 사람보다 행복할 뿐 아니라, 어쩌면 더 많은 걸 알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허황된 공상만은 아닌 것 같다.

Posted in 2017년 5.6월호, 격월간 방송기자, 나의 반려동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