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반려동물_이별을 각오한 사랑_M B C 김 수 진 기 자 (뉴미디어포맷개발센터)

예삐는 우리 가족의 첫 반려동물이었다. 아직도 예삐를 만난 날이 사진처럼 기억난다. 초등학교 2학년 가을, 학교를 마치고 집에 왔는데 노란 새끼 고양이가 작은 접시 앞에 웅크리고 앉아 흰우유를 할짝대고 있었다. 병아리 같은 솜털이 길게 늘어진 오후 햇살에 반짝였던 것 같다. 세 자매는 고양이의 이름을 예삐라고 지었다. 셋은 예삐를 서로 안겠다며 자주 싸웠다.
예삐가 떠나던 날도 생생하다. 어느 초겨울 아침 엄마가 밥을 주러 갔다가 보일러실에서 싸늘하게 식어있는 예삐를 발견했다. 너무 놀라 달려갔는데, 사후 경직된 예삐는 내가 알던 말랑하고 따뜻했던 예삐 같지가 않았다. 안아주고 싶은데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머뭇거렸다. 그때 동생이 굳은 예삐를 덥석 들고 얼굴을 파묻고 울기 시작했다. 예삐야 엉엉엉. 그제야 나와 언니도 울음을 터뜨렸다. 예삐야 으어엉 예삐야. 아빠는 전날 저녁에 준 생선 가시 때문에 잘못된 것 같다고 사인을 분석했다. 예삐가 누워있던 곳 옆에는 먹다 남은 생선 접시가 있었다. 세 자매는 2년의 짧은 생을 마감한 예삐를 집 앞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었다. 흙을 덮어 봉긋하게 만들고, 나중에 찾을 수 있게 십자가로 표식도 만들었다. 내가 처음 경험한 죽음이었고, 이별이었다.

행복한 만남, 피할 수 없는 이별
88올림픽이 열리던 해 서울로 이주한 우리 가족은 강아지를 키우기 시작했다. 다리가 짧아 귀여웠던 발바리 코지는 우리와 짧게 살았다. 코지는 어느 일요일 오후 부모님과 산책을 나갔다 돌아오지 않았고, 세 자매는 공책을 찢어 ‘코지를 찾습니다’ 벽보를 만들고 온 동네 전봇대와 담벼락에 눈물바람으로 붙이고 다녔다. 아빠는 저녁도 안 먹고 코지를 찾아 헤매던 딸들에게 불같이 화를 냈다. 잃어버린 줄 알았던 코지가 사실은 그날 차에 치여 죽었다는 것을 스무 살이 넘어서야 알게 됐다. 부모님은 코지를 잘 수습해 묻어주었다고 뒤늦게 사실을 전했다.
코지를 찾지 못해 상심에 빠진 아이들에게 부모님은 흰 푸들 한 마리를 안겨주었고, 동네 사랑방이었던 ‘국제미용실’에서 어머니들에게 특히 인기가 많았던 푸들 찰리는 개장수가 훔쳐 가기 전까지 2년을 우리와 살았다. 찰리를 잃은 뒤, 엄마는 더 이상 동물을 들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 결심은 아롱이를 보기 전까지만 유지됐다. 머리털을 묶어도 예쁘고 풀어도 예뻤던 요크셔테리어 아롱이는 내가 중3때 우리 집에 와서 언론사 시험 준비로 바쁠 때까지 우리 집의 귀염둥이 막내로 자랐다.
십여 년을 살고 아롱이는 병에 걸렸다. 암이었다. 내가 취업 준비로 대부분의 시간을 도서관에서 보내던 뜨거웠던 여름에 크게 악화됐다. 복수가 찼다. 병원에서는 안락사를 권유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너무 귀여워서 별명이 아로이, 롱이, 로이, 귀염이, 오야, 귀염둥이 등 수십 가지였던 막내를 보낼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착했던 아롱이는 마지막까지 착했다. 발작 한 번 없이 자기 방석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고 했다. 가족들은 내가 도서관에서 돌아올 때까지 기다렸다. 그날 밤 아롱이를 묻어주고 오는 길에 장맛비가 쏟아졌다. 엄마는 운전대를 잡고 대성통곡했다.
아롱이를 보내고 그해 겨울 나는 MBC에 입사했다. 기대했던 KBS 면접에 떨어진 뒤 엄마는 아롱이를 찾아가 수진이 언니 MBC 되게 해 달라고 부탁했었다며, 아롱이가 도운 것 같다고 과학적인 근거는 없는 소리를 했다. 취직 후 독립해서는 강아지 피비와 고양이 예삐를 가족으로 맞이했다. 갈색 푸들 피비는 사람에게 의존적이었는데, 바쁜 기자생활을 하며 제대로 돌보기가 힘들었다. 끝까지 책임지지 못하고 부모님 댁 아래층에 사는 이웃에게 입양 보냈다. 소식이 끊긴지 몇 해가 됐다. 이제 열세 살이 되었을 것이다. 피비를 생각하면 늘 마음이 아프다.
열두 살 고양이 예삐는 지금도 나와 함께 건강하게 살고 있다. 나의 첫 반려동물 이름을 물려받은 노란 고양이 예삐는 가끔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듯한 표정을 내게 짓는다. 파업 이후 지독하게 이어진 사측의 인사보복으로 시간이 많아진 집사는 예삐에게 동생을 만들어줬다. 2012년 대선 방송을 함께 시청했던 아기 고양이 뚜비는 이제 다섯 살이고, 그때 당선된 대통령은 다섯 해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났다.

“나를 기다려 주겠지”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도깨비>를 보고 내가 울었던 건 주인공의 애절한 사랑 때문이 아니었다. 시각장애인이 저승길을 떠나는 에피소드에서 나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저승길에 마중 나온 안내견, 망자의 반려동물. 반려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먼저 간 반려동물들이 마중 나온다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사람과는 시간의 속도가 다른 아이들과 함께 살다 보니 반려인들은 늘 이별을 겪는다. 안타까움을 달래려 하는 이야기임을 안다. 그러나 나도 그 말을 믿는다. 언젠가 나보다 먼저 떠날 예삐와 뚜비, 그리고 이미 가 있는 어린 시절 예삐와 아롱이, 코지, 찰리 그리고 피비도… 나를 기다려 주겠지. 다시 만나면 정말 행복하겠다. 그런 생각을 하니 동물과 함께할 나의 남은 여명과, 눈 감은 뒤의 시간도 외롭지 않을 것 같다.

Posted in 2017년 5.6월호, 격월간 방송기자, 나의 반려동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