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기자가 만난 방송기자_‘예술가의 술 이야기’ 책 펴낸 MBC 조승원 기자_ MBC 장준성 기자

책 <열정적 위로, 우아한 탐닉 : 예술가의 술 사용법>을 펴낸 MBC 조승원 기자를 만났다. 인터뷰는 밤과 낮, 두 번이었다. 한 번은 술기운, 다른 한 번은 제정신. 조승원 기자는 에둘러 얘기하지 않았다. 기자 경력(20년) 절반 이상이 사회부 기자인 그의 답변은, 잘 쓴 사건사고 기사 같았다. 솔직하고, 경쾌하고, 분명했다.
책도 그랬다. 존 레논을 사고 치게 만들었던 칵테일 브랜디 알렉산더, 오아시스 갤러거 형제가 중독된 맥주 기네스, 밀주 위스키를 소재로 노래까지 만든 노벨 문학상 수상자 밥 딜런, 와인 사랑 때문에 이탈리아 토스카나에 자기 와이너리를 차린 스팅… 전설적인 뮤지션들의 ‘술 사랑’ 이야기는 새롭고, 흥미진진하고, 경쾌했다.

그런데 왜, 신해철 때문인가.
“2004년 11월, 인터뷰 때문에 서래마을에서 신해철을 처음 만났다. 그리고 밤을 새웠다. 솔로 기타 연주 배틀을 하듯, 술과 음악인에 얽힌 이야기보따리를 서로 경쟁하듯 풀어냈다. 마지막으로 신해철이 한마디를 던졌다. ‘우리 둘이서 한 얘기, 책으로 내면 재미있지 않을까? 시간 되면 언제 이런 거 한 번 책으로 써봐.’ 나는 가볍게, 그러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

“정신없이 살았지만 2010년에는 칵테일 공인 자격증(조주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2011년에는 <술에 대하여>라는 다큐멘터리를 연출했다. 술과 예술을 접목하는 작업을 좀 더 하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혔다.신해철 씨로부터 이런저런 조언을 받았고, 2012년 한 해를, 음악인들의 술 얘기를 찾아내는 자료조사에만 썼다. 1년 내내 해외 잡지와 신문을 뒤졌고 그들의 영문 자서전과 평전을 일일이 구해 읽었다. 2013년부터 2014년 초까지 일기 쓰듯 글을 써서 원고의 절반 이상을 완성했다. 하지만, 포기했다.”

포기한 이유는?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당시 나는 사회부 데스크이자 MBC 기자협회장이었다. 개인적 슬픔은 말할 것도 없고, MBC 기자로서의 분노와 자책감, 안에서 벌여나가야 하는 싸움 때문에 다른 건 생각할 수 없었다. 아이들이 그렇게 말도 안 되게 죽어갔는데… ‘딴따라들이 술판 벌인 얘기’ 따위, 쓰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때 우리는 죄인이었으니까.”

다시 글을 쓴 계기는 또 다른 비극 때문이었다. 2014년 10월 27일 신해철의 죽음.

“신해철 형은 내 청춘의 아이콘이었다. 그가 세상을 떠난 다음날, 차를 몰고 성산대교로 넘어가는데 라디오에서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가 흘러나왔다. 그럭저럭 잘 참고 있었는데, 차를 갓길에 세우고 엉엉 울었다. 그는 왜 떠나야 하고, 우리는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가. 서럽고 원통했다. 그 때… 씩 웃으며 그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책 한 번 써봐.’”

그는 “음악과 술의 공통점은 아픈 기억, 기쁜 추억을 모두 소환하게 만든다는 것, 그리고 조금이나마 위로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책의 제목 <열정적 위로, 우아한 탐닉 : 예술가들의 술 사용법>도 그렇게 정해졌다.

‘예술가의 술 사용법’은 예술가에게만 해당되는 건가.
“술에는 크게 두 가지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묘하게 정반대 효과를 지녔다. 진정제와 자극제. 전설적인 애주가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글을 쓸 때만큼은 절대 술을 입에 대지 않았다. 그날 글을 완성한 다음에 술을 마셨다. 한껏 예민해진 감수성을 정리해주는 술, 위로해주는 술, 그건 진정제다.
예술가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기자들도 마찬가지이고 다른 직장인도 마찬가지다. 그날 있었던 긴장된 일과를 끝낸 다음, 극도로 고양돼있는 정신 상태에서 스트레스와 근심을 좀 사라지게 해주는 술은 진정제다. 그때 술은 어떤 것이든 상관없고, 실제로 보통 ‘소주+맥주’가 선택된다.
술의 두 번째 효과 또는 기능은 자극제다. 진정제와 반대로 감성을 확 일깨워주는 기능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술을 딱 한 잔 걸치고 음악이나 영화를 감상하는 것. 쉽게 말하자면 필feel을 받기 위해 마시는 술이다. 그렇게 딱 한 잔 곁들이며 음악을 들어본 경험이 있는가? 그때 음악은 정말 다르게 들린다. 우리는 술을 너무 진정제로만 쓴다. 자극제로 쓰는 습관을 들이면 삶의 공간을 더 넓힐 수 있을 텐데.”

자극제로 쓰기 좋은 술은 뭘까?
“나에게 맞는 향香이 있는 술. 가끔 술 관련 강의를 나가면 내가 강조하는 얘기가 있다. 술맛을 보기 전에 향부터 맡아보고 나에게 가장 좋은 술을 찾으라고. 술의 진가는 향에서 드러난다. 배우 조니 뎁의 최고 술은, 라가불린Lagavulin 위스키다. 그런 조니 뎁이 이런저런 스캔들 때문에 한동안 술을 끊었다. 그 술꾼이 어떻게 버텼을까? 분위기 좋은 바에 가서 라가불린 한 잔을 주문했다. 마시지는 않고 향만 맡았다. 향이 어느 정도 날아가면 그 잔을 버리고 다시 한 잔을 주문했다. 조니 뎁은 그런 식으로 수 십 잔의 향만 맡고 술을 느꼈다. 고수 중에 고수인 거지. 술을 마시지 않고도 술을 느끼는 단계.”

조승원 기자도 비슷한 사람이다. 허리 디스크로 입원 중이던 시절, 자기가 좋아하는 위스키 병을 입원실 창가에 배열했다. 술 생각날 때마다 그 위스키로 가글을 했다. 환자복을 입은 그가 벌인 ‘기행(?)’은, 간호사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술에는 좋은 술과 더 좋은 술이 있을 뿐, 나쁜 술은 없다. 술을 느끼는 방법만 잘 알면 된다. 예를 들어 맥주는 오감五感으로 마시는 술이다. 시원한 맥주를 집어 들 때 촉각, 병뚜껑을 따고 잔에 따르고 목으로 넘어갈 때 나는 청각, 그리고 맥주의 빛깔. 나는 단언한다. 마네, 피카소가 환생한다 해도 페일에일의 빛깔은 제대로 그려낼 수 없을 거라고. 우리는 가끔 술 만드는 사람들한테 미안해하면서 술을 마셔야 한다. 술을 그냥 ‘원샷’해버리면, 오감이 주는 매력을 포기하는 짓이기 때문이다. 술 만드는 사람은 그러지 말라고 술을 만든 것이다. 편의점에서 2,500원짜리 맥주를 사서 집에서 한 번 해보시길. 입 속에 1초라도 더 머물게 하고, 빛깔도 느긋하게 감상하고 향도 한 번 더 맡아보고. 음악을 들을 때 베이스 라인과 드럼 비트 등을 의식해보는 것과 비슷하다.”

술과 음악인을 엮은 책은, 의외로 세상에 없었다. 제대로 된 참고서적이 없었던 그는 “무식하게” 자료조사를 했다. 술을 좋아한 것으로 알려진 아티스트, 좋아할 것 같은 아티스트들을 골라낸 뒤, 그 아티스트들의 연관 검색어로 주류 용어(술, 위스키, 칵테일, 와인, 맥주 등등)를 하나하나 따로 입력해 ‘구글링’을 했다. 우리가 몰랐던 술과 음악의 천일야화는 그렇게 완성됐다.
그는 기회가 된다면 국내편도 쓰고 싶다고 했다. 일단 책이 많이 팔려야겠지만, 신해철 씨 유족이 운영하는 인디 뮤지션 지원 재단에 인세를 모두 기부하기로 했다. 그는 이 책을, 신해철의 부인과 두 자녀에게 제일 먼저 보냈다.

 

“조금이라도 보답하고 싶었다. 우리를 위로하고 격려해준 술과 음악에게. 또 신해철에게. 내 경험도 조금이나마 공유하고 싶었다. 나는 거창한 메시지를 남기려고 이 책을 쓴 게 아니다. 이 책을 그저 술안주로 생각해주면 제일 좋겠다. 기네스를 마시면서 오아시스나 비틀즈의 리즈 시절을 떠올리듯 말이다.
우리는 평생 익숙한 술만 마시고 익숙한 음악만 듣다가 끝난다. 그것도 나쁘지 않지만, 살다가 한 번쯤은 뭔가 다른 술도 한 번 마셔보고, 가끔은 다른 음악도, 다른 얘기도 들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우리는 너무 익숙한 것만 즐기다 간다. 그런데 그러기엔 술과 음악의 세계가 너무나 넓다. 한 번도 안 가본 세계에 발 디딜 용기를 내는 것도 좋지 않을까? 내 책이 그런 단초가 돼주면 너무나 영광이겠다.”

 

 

조승원 기자가 칵테일을 한 잔 만들었다. 책에 등장하는 칵테일, 존 레논이 사랑했다는(그러다 사고쳤다는) 브랜디 알렉산더Brandy Alexander. 전설적인 메이저리그 투수 피트 알렉산더Pete Alexander를 응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승리의 술’이다. 그는 MBC와 YTN 등의 해직 언론인들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날, 승리의 술을 돌리고 싶다고 했다. 그가 쓴 책의 초판1쇄일은, 2017년 5월 9일이다.

Posted in 2017년 5.6월호, 격월간 방송기자, 방송기자가 만난 방송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