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_북한에서 열린 첫 축구 공식 경기를 가다_KBS 박선우 기자 (스포츠취재부)

10년 만의 방북 취재…달라진 분위기
10년 만에 밟는 북한 땅이었다. 지난 2007년 개성에서 열린 남북복싱대회를 취재했으나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그 사이 남북 관계는 확 달라져 있었다. 이용하는 승객이 많지 않아 쓸쓸하기만 한 평양 순안공항에 내리는 순간부터 묘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공항에서 노트북과 카메라, 휴대전화 등에 무슨 내용이 들었는지 일일이 검사하는 일은 처음 겪어보는 경험이었다. 하지만, 입국 심사를 하던 여군의 밝은 미소에 마음이 약간 놓였다. 동행한 선수단의 입국 모습을 촬영하면서 평양 취재 일정은 시작됐다.

북한 안내원, “정유라는 언제 돌아오나?”
숙소는 양각도 국제호텔, 도청이 될지도 모른다는 30층 객실이다. 출장 기간 6일 내내 우리의 동선은 철저히 통제되었다. 식사는 호텔 내부에서 해결해야 했고, 이동은 민족화해협의회(민화협) 소속 북한 사람들과 늘 함께 했다. 호텔에서 김일성경기장까지는 미니버스로 이동했는데 가까운 거리를 일부러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잘 꾸며진 과학자 거리와 여명 거리 등 자신들이 보여주고 싶은 길로 우리를 이끌었다. 평양 시내는 생각보다 고층 건물들도 많았지만, 가까이서 보면 건물들 상태가 좋지는 않았고, 사람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거리를 오가고 있었다. 중국의 영향으로 미세 먼지가 심한 편이었는데 나무가 많지 않아 공기는 생각보다 좋지 못했다. 안내원이라 불리는 민화협 인사들은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고 촬영했다. 개선문 앞에서 ‘스탠드 업’을 잡는 모습도, 출고된 기사 오디오를 읽는 모습도 어김없이 그들의 카메라에 담겼다. 차 안에서는 우리에게 이것저것 물어봤는데 특히 대선 향방에 관해 가장 궁금해했다. 나중에는 정유라가 언제 한국에 입국하는지까지 물어왔다. 정보 수집 차원으로 보였는데 출입처가 다르고, 담당 분야가 아니라 잘 모르겠다는 말로 대답을 피해가곤 했다.

북한 관중, 우리나라 아닌 인도 응원
마침내 예선 첫날 경기가 펼쳐졌다. 처음 마주친 북한 관중의 관전 태도는 매우 흥미로웠다. 우리나라와 인도의 경기에선 인도를 응원했다. 약팀에 대한 연민인가 싶었는데 인도 선수들이 궂은 날씨 때문에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할 때는 폭소를 터트리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축구 경기를 마치 코미디 영화를 보듯 즐기는 모습이었다. 우리나라가 인도에 10대 0 대승을 거뒀는데 골이 터질 때마다 경기장은 침묵에 휩싸였다.

남북 대결…5만 관중의 일방적인 응원
운명의 남북 대결은 이번 출장의 하이라이트였다. 킥오프 30분 전 경기장에 들어서 바라본 5만 관중의 일방적인 응원은 예상보다 훨씬 압도적이었다. 황금색 종이 나팔과 짝짝이에 취주악단까지 등장했고, 함성과 구호, 파도타기 응원이 이어졌다. 내가 선수라면 두 다리가 그만 얼어붙고, 발이 땅에서 떨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힘찬 파이팅 소리와 함께 선수들이 나란히 입장했고, 태극기와 인공기가 나부꼈다. 평양 하늘에 애국가가 울려 퍼지는 역사적인 순간, 우리 선수들이 힘차게 따라 불렀다. 과거 북한이 태극기 게양과 애국가 연주를 이유로 개최를 거부해 남자축구 대표팀 월드컵 예선 경기를 두 차례나 중립지역에서 열었던 기억을 떠올리자 감회가 새로웠다. 곧이어 북한 국가가 연주되자 5만 관중이 합창하며 기세를 올렸다.

선수들의 투혼…‘평양의 기적’ 만들다
뜨거운 응원 탓인지 초반 북한이 공격을 주도했다. 북한의 슛이 골대를 맞고 나왔고 이어 페널티킥까지 내줬다. 하지만 우리에겐 베테랑 김정미 골키퍼가 있었으니… 김정미 선수는 심리전으로 키커를 흔들었고 결국 든든한 선방을 펼쳤다. 막아낸 뒤 다시 공을 움켜쥐는 상황에서 북한 선수가 김정미 선수의 얼굴을 차자 화가 난 우리 선수들이 북한 선수에게 강하게 항의하면서 팽팽한 신경전이 벌어졌다. 분위기를 바꾼 전환점이 된 듯 수세적으로 몰리던 우리 선수들의 역습이 시작됐다.
전반 추가시간 북한 승향심 선수에게 선제골을 허용했지만, 우리 대표팀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일방적인 응원으로 평양 원정이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을 비웃듯 후반 30분 장슬기 선수가 극적인 동점골을 넣었다. 값진 1대 1 무승부로 경기가 끝나자 북한 관중들은 실망한 듯 일제히 경기장을 빠져나갔고, 우리 선수들은 부둥켜안으며 서로를 격려했다. 결국, 우리 대표팀은 골득실에서 북한을 제치고 조 1위를 차지하며 내년 아시안컵 본선 진출권을 따냈고, 2019년 프랑스 월드컵 출전 가능성도 크게 높아졌다. 방북 기자단의 취재도 잊을 수 없는 ‘평양의 기적’과 함께 막을 내렸다.

Posted in 2017년 5.6월호, 격월간 방송기자, 현장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