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직 언론인, 이렇게 삽니다_오직 간절한 소망所望뿐입니다!_정영하 MBC 전 노조위원장, 강지웅 MBC 전 노조사무처장_강지웅 (MBC 해직PD)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것을 보고 우리 싸움이 길어지겠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되자 좌중이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던 그 순간. 가슴은 먹먹하다 못해 미어지기까지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때 일은 흐릿해져갔지만 총에 맞은 듯 쓰라림은 아직도 가시지 않습니다. 170일간의 파업을 이끌었던 집행부로서 믿고 따랐던 MBC 구성원들에게 패배만 안겨준데 대한 죄책감마저 들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노동조합 집행부 일을 마치고 오롯이 해직자로 돌아가서는 애써 MBC를 외면하려 했습니다. 파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중징계에 대기발령에 강제휴직에 강제인사발령까지 믿기 힘든 탄압의 소식들이 들려왔지만 울분은 가슴속에 삼킬 뿐 고통받는 MBC 구성원들에게 격려의 말, 위로의 말 한 마디 건네지 못했습니다. 면목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가끔 만나게 되는 MBC 선후배와 동료들은 오히려 우리의 해직생활의 고통을 염려하고 아픔을 함께 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을 건넬 따름이었습니다. 참 염치없는 세월이었습니다. 늘 MBC와 노동조합에 빚을 진 심정이었습니다.

재작년 10월이었습니다. MBC 사측이 간신히 명맥을 이어가던 노동조합의 숨통을 끊으려 칼을 들이댔습니다. 조합 집행부 전임자들에게 원직복귀 명령을 내린 것입니다. 갖은 탄압에도 조합원 숫자가 줄지 않자 아예 노동조합을 궤멸시키려 든 것이죠. 집행부만 해체하면 구심점이 사라질 거라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노동조합의 부름에 우리는 냉큼 달려갔습니다. 2012년 파업 때 각각 위원장과 사무처장을 맡았던 정영하 위원장과 저는, 새로 사무처장과 홍보국장의 직함으로 새 집행부에 복귀했습니다. 일계급씩 강등됐다고 깔깔대던 후배들의 모습이 지금도 선합니다.
늘 멀리서만 그리워했던 MBC에 발을 들였을 때 그 첫날의 감회는 말로 표현하기 힘들었습니다. 여의도에서 파업을 해서 해직된 후 본사 사옥이 여의도에서 상암으로 옮겨졌습니다. 상암동 사옥에 들어간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낯선 곳, 낯선 분위기. 본사 사옥은 마치 재벌 그룹의 사옥처럼 거대해지고 번듯해졌지만 예전에 제가 다녔던 회사가 아니었습니다. 정영하 위원장과 저는 ‘보호관찰자’가 돼버렸습니다. 행여 회사가 허락한 구역 이외의 곳을 출입할까 봐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은 감시당했습니다. 정영하 위원장과 제가 재작년 10월부터 올 2월까지 14개월간 MBC 상암동 사옥을 출입했지만 저희가 다닐 수 있었던 곳은 오직 노동조합이 자리 잡고 있는 미디어센터라는 건물뿐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조합원들이 근무하는 경영센터와 방송센터에는 단 한 번도 들어가 보지 못했습니다. 구내식당에서 밥 한 번 먹지 못했으니 더 말할 필요가 없겠죠. 이상호 기자가 대법원에서 승소하여 복직한 후 구내식당에서 밥 먹다 오열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그럼직하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습니다.

MBC는 ‘동토凍土의 왕국王國’이었습니다. 밖에서 말로만 듣다가 직접 들어와서 겪으니 21세기 대명천지에 어찌 이런 무도한 일이 벌어질 수 있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상명하복上命下服. 단 한 치의 문제 제기도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약간만 저항해도 바로 상암동 본사를 떠나 소위 ‘유배지’라 불리는 곳으로 강제인사발령 됐습니다. 보직을 맡게 되면 노동조합에서 자동탈퇴 되는 규약이 있는 데도 불구하고 경영진은 사전에 노동조합을 탈퇴하고 충성서약을 할 것을 강제했습니다. 인간으로서의 자존감을 무너뜨리려 했습니다. 진급과 인사고과에 불이익을 주는 것은 차라리 애교에 가까웠습니다. 2012년 파업 적극 가담자들을 따로 체크해서 관리하는 ‘블랙리스트’가 있다는 소문도 있었습니다. 회사가 노무사들을 하도 많이 뽑아서 MBC가 보유한 노무사 숫자만 보면 어지간한 전문 노무법인 뺨칠 정도라고들 했습니다. MBC의 현실에 절망한 조합원들이 눈물을 머금고 MBC를 떠나는 일까지 비일비재했습니다.
그런데 풀 한 포기 자라기 힘들 정도로 척박해진 MBC에서 우리는 ‘희망의 싹’을 보았습니다. 다른 회사 같았으면 노동조합이 배겨나기 힘들었을 겁니다. 노동조합만 벗어나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갈 수 있는 데도 MBC 구성원들은 노동조합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1987년 ‘공정방송’의 기치를 내걸고 노동조합이 창립된 이후 30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무수히 많은 파업이 있었습니다. 다 공정방송 제대로 하자고 싸웠습니다. 시원하게 이긴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불패不敗의 신화’는 애초에 MBC 노동조합에 없었습니다. 그냥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없어서 떨치고 일어나 싸운 것입니다. 뒤를 살필 겨를도 없었죠. 그렇게 질렀고 조합원들은 묵묵히 따라와 줬습니다. 2012년, 그동안의 파업을 다 합친 것보다도 더 오래 싸웠고 그럼에도 그 결과는 기대 이하였지만 MBC 구성원들은 아직도 노동조합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MBC 구성원들의 마음속에 공정방송에 대한 열망이 여전히 타오르고 있다는 증거였습니다.

작년 10월 이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지고 촛불이 점화되고 탄핵과 조기 대선까지 기적과 같은 현실이 펼쳐졌습니다. 아마 권력과 그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해야 할 언론의 사명에 대해 이 기간만큼 치열한 논쟁과 현장학습이 벌어졌던 적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없었을 겁니다. 슬프게도 MBC는 이 역사적 순간에 전혀 존재감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거꾸로 폭주하는 모습이 사람들의 비웃음거리만 됐습니다. 모든 MBC 구성원들이 수치심으로 몸 둘 바를 모르고 있습니다.

지난 2월 새 노동조합 집행부를 출범시키고 정영하 위원장과 저는 노동조합을 떠났습니다. 다시 ‘홀가분한’ 해직자의 일상으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세상이 대선으로 분주한 가운데 우리도 쉴 짬이 없습니다. 그동안 다시 들여다보기 두려웠던, 그래서 외면했던 2012년 파업의 뜨거운 열기 속으로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170일간의 파업이라는 엄청난 기록들을 정리하고 있는 중입니다. 우리가 지난 14개월간 노동조합 집행부로 다시 복무하면서 안에서 목격하고 확인했던 MBC 구성원들의 소중한 바람 하나하나가 2012년 파업의 현장 사진들에서 솟구쳐 나오고 성명서 글귀에서 튀어나왔습니다. 4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하지만 변한 것은 없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5월 7일)에서 대통령 선거가 이틀 남았습니다. 이 글이 인쇄되어 나갈 즘엔 결과도 나와 있겠죠. MBC의 부활을 그 누구보다 바라 마지않는 저희로서는 오직 간절한 소망所望뿐입니다.
강지웅 (MBC 해직PD)

Posted in 2017년 5.6월호, 격월간 방송기자, 해직언론인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