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대선 보도 몇 점? ⑦ TV토론 보도_언제까지 ‘오려붙이기’만?_방송기자편집위원회

<방송기자 편집위원회>

“서민정책이 무엇이냐를 놓고 격론이 벌어졌습니다.
날선 신경전도 벌어졌습니다.
중도사퇴 문제도 제기됐습니다.
‘보수세력을 궤멸시켜야 한다’는 문재인 후보 측의 발언도 논란이 됐습니다.”

5월 2일, 마지막 대선 후보 TV토론회 직후 한 방송사의 리포트에서 녹취를 뺀 기사의 전문이다. 앵커멘트를 포함해 리포트의 전체 길이가 2분 1초인데, 기사문장은 단 4문장. 문장의 사이사이에 후보들의 토론 육성을 ‘오려 붙였다’. 녹취 길이는 개당 5~10초. 짧은 건 3초도 되지 않았다. 리포트의 제목은 <복지 방법·재원 놓고 날선 공방>이었다. 그러나 이 리포트만 봤을 땐 복지 방법과 재원을 놓고 ‘어떤’ 날선 공방이 오갔는지 파악하기 어렵다. 기자의 설명과 분석은 전무하다시피 하고, 후보들의 육성도 자극적인 공격과 방어 위주로 편집돼 내용이 충실하지 않다.
토론회가 끝나자마자 뉴스가 시작됐으니 촉박한 제작 시간 때문에 그랬다고 이해할 수도 있겠다. 그러면 다음날(5월 3일)은 어땠을까. 토론회가 2일 밤 10시에 끝났으니 3일 밤에 방송될 뉴스라면 제작시간은 충분했을 것이다.

“안철수 후보의 학제개편안을 문재인 후보가 비판했습니다.
안 후보도 역공에 나섰습니다.
문 후보의 반값등록금 공약을 홍준표 후보가 문제 삼자 문 후보도 되받아쳤습니다.
4대강 논쟁도 뜨거웠습니다.
여성가족부 존폐도 논란이 됐습니다.”

이 기사는 ‘마지막 TV 토론회, ‘공격·역공’ 치열한 정책토론’이라는 제목의 리포트다. 형식 면에서 앞의 기사와 아무런 차이가 없다. 길이는 1분 48초. 기자가 읽은 문장은 5문장이다. 역시 각 문장이 끝나면 거기에 맞는 공방 성격의 후보 육성이 5~10초의 길이로 ‘오려 붙여졌다’. 학제개편, 반값등록금, 4대강, 여성가족부 폐지 등

무엇 하나 가벼운 쟁점이 아님에도 짧은 문장과 앞뒤 툭툭 잘라내고 오려 붙인 ‘싱크’들로 리포트가 구성돼 토론 당일 리포트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24시간 가까이 더 주어진 제작 시간이 무색할 정도다.

토론은 없고 파편만 남아
단 2개의 사례를 제시했을 뿐이지만 이번 대선에서 지상파 방송사들의 TV 토론 보도 문법은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1차부터 6차까지 대동소이했다. 제작시간이 촉박하건 그렇지 않건 ‘기계적 오려 붙이기’의 틀을 탈피하지 못했다. 길이 2분 내외의 3~4꼭지, 최대한 쟁점을 간략하게 소개하는 리포트 문장, 그리고 ‘늘어진다는 이유로’ 10초를 넘지 않게 편집되는 후보들의 발언. 이렇게 짧아야 하니 오고 가는 정책 이슈들이 무슨 의미인지, 어떤 맥락에서 그런 토론이 벌어지는지 맥락이 제시될 자리가 없다. 가십에 가까운 공방, 감정 대결과 같은 ‘기사 쓰기에 편리한’ 파편적 장면들이 기자들의 눈길을 더욱 끌었다.
이러한 관행은 제작시간이 부족해서 발생한 게 아니다. 가령 4월 19일 <2차 토론>의 경우를 보자. 당시 토론은 자정쯤 종료됐고, 후보자들의 주요 발언은 20일 조·석간신문과 인터넷, 종편 등에서 하루 종일 회자됐다. 그럼에도 방송 3사는 20일 밤 메인 뉴스에서 유사한 방식의 문법으로 토론회 관련 리포트들을 제작해 톱 블록에 배치했다. 새로울 것도 없고 늦기까지 했으니 ‘news’일 수 없었다. 형식과 내용도 타 매체와 전혀 차별화된 바 없다.
물론 토론 리포트의 경우 기자의 말수를 줄이고 현장 육성을 최대한 들려주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기사 문장이 육성과 육성을 잇는 짧은 다리 역할에만 그친다면, 이 정도 작업에 굳이 ‘취재기자-데스크-부장-부국장-국장’의 의사결정 라인이 필요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 대학생 아르바이트를 시키면 결과물이 다를까, ‘로봇 기자’에게 맡겨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상상도 해 본다. 취재현장에서 짧게는 수 년, 길게는 수십 년 경험을 쌓은 기자들의 공력이 고작 이 정도 ‘오려 붙이기’를 하는 것에 쓰여야 하는지 의문이다.

TV토론 보도 혁신 필요
역대 대선 토론회는 모두 중요했고 많은 화제를 낳았지만, 이번 19대 대선은 그 의미가 더욱 특별했다. 탄핵 이후 두 달 만에 치러진 대선이었고, 주요 정당의 대선 후보는 선거일을 한 달여 앞두고야 확정됐다. 물론 각 후보들이 그동안 국민들에게 충분히 노출돼 온 인물이긴 했지만, 정말 대통령으로서 적격인가를 꼼꼼히 검증해 볼 시간과 기회는 부족했다고 봐야 한다. 그런 와중에 6차례 치러진 TV 토론회는 제한적 여건 속에서도 유권자들에게 판단의 근거와 기준을 제공했고 실제로 그 효과가 발생해 판세 변화에 끼친 측면이 적지 않다. 게다가 토론회 운용에 있어서도 주최 방송사와 후보자 간 합의에 따라 프리젠테이션, 시간제한 규정 변경 등 예전과 다른 측면들이 나타나면서 후보자들의 특성이 더욱 드러나고 화제를 낳는 등 흥미를 더했다. 마지막까지 높았던 시청률이 이를 방증한다.
그렇다면 이를 보도하는 뉴스도 좀 혁신할 필요가 있지 않았을까? 가령 ‘취재기자-전문가 패널’을 구성한 뒤 각 후보자에 대한 평점을 매기고, 패널 가운데 한두 명을 스튜디오에 출연시켜 심층적인 분석을 공유하는 보도 같은 것은 어땠을까? 어차피 2분짜리 리포트를 서너 개 하면 그것도 8분 가까이 되니 짧지 않은 시간이다. 그러니 24시간 지나서 하이라이트식 다시보기 형태로 전하는 것은 과감히 생략하는 대신 토론에 나타난 특징을 뽑아내 유권자들이 간파하기 힘들었던 부분들을 들춰내고 평가하는 데 집중했으면 어땠을까? 혹은 각 후보 캠프의 관계자들을 불러 솔직한 평가와 향후 전략 등을 들어보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가운데 일부는 이미 일간지나 종편에서 실험한 방식이다. 왜 지상파 방송의 뉴스만 계속 뒤처지고 있나? 뉴스는 기계적 중립에 따라 기계적 중계만 하고 평가는 시청자에게 맡긴다는 논리로 관행을 합리화하다 흐름을 놓치는 것은 아닌가?

Posted in 2017년 5.6월호, 격월간 방송기자, 특집-대선 보도 몇 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