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2회 뉴스부문_의문의 죽음에 얽힌 검은 커넥션_뉴스타파 황일송 기자

의문의 죽음에 얽힌 검은 커넥션

 

지난해 11월 인도네시아의 수도 자카르타에서 고 허재원씨가 고층 아파트에서 떨어져 숨졌다. 5일 뒤 허씨와 같은 회사에서 일했던 동료 김모씨가 리모델링 공사로 출입이 차단된 종합경기장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하지만 현지 경찰은 단순한 투신자살로 사건을 종결했다. 그렇게 이 사건은 잊혀질 뻔했다.

 

두 달 뒤, 한 30대 남자가 뉴스타파의 문을 두드렸다. 이들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풀어달라고 했다. 제보자는 허씨의 동생. 형이 죽기 몇 시간 전 한국으로 보냈다는 노트북과 외장하드, 그리고 수십여 장의 송금 영수증 등을 갖고 왔다. 허씨는 지난해 뉴스타파가 보도한‘조세도피처의 한국인들 2016’에서 등장했던 오픈블루 공동 설립자였다.

뉴스타파가 지난 3월 29일 보도한‘의문의 죽음에 얽힌 검은 커넥션’에 대한 취재는 그렇게 시작됐다. 취재진은 2달 여 동안 허씨가 남긴 자료를 분석하고, 회사 관계자와 투자자 등을 만나 이들이 벌인 사업의 실체를 추적했다.

인도네시아 현지 취재와 법의학 전문가의 인터뷰를 통해 단순 자살로 처리된 이들의 죽음이 자살이라고 보기에는 대단히 미심쩍은 부분이 많아 재조사가 필요하다는 점을 밝혔다. 또 페이퍼컴퍼니 설립 이면에 숨겨진 사기성 석탄 무역과 이른바‘작전’을 통해 당시 900원도 안되는 주가를 2, 3만 원대로 올리려다 실패한 주가 조작 사례 등을 파헤쳤다.

나아가 페이퍼 컴퍼니 관계자들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거액의 사례비를 받으며 뒷배를 봐준 한전 발전 자회사 간부와 언론사 임원 등 검은 커넥션의 일단도 들춰냈다.

 

그동안 조세도피처 관련 뉴스타파 보도가 검은 돈을 노리고 조세도피처에 페이퍼컴퍼니를 만든 사람들의 면면을 나열한 것에 그쳤다면, 이번 보도는 왜 조세도피처에 페이퍼 컴퍼니를 세웠고,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어떻게 돈을 빼돌렸지, 빼돌린 돈은 어디에 사용됐는지를 추적 보도했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보도가 나간 뒤 반향은 컸다. 한국서부발전은 뉴스타파 보도 다음날 금품수수 의혹이 불거진 간부를 무보직 발령을 내고 감사에 착수했다. 뉴스전문채널 YTN이 이홍렬 상무를 인사위원장에서 해촉했고, 전국언론노동조합은 이 상무를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처음에는 결백을 주장하던 이 상무는 후속보도가 나가고 며칠 뒤 결국 사표를 냈다.

후폭풍은 더욱 거세졌다. 서울중앙지검과 관세청은 이 사건의 관련자들을 출국 금지하고 압수수색에 나서는 등 전방위 수사에 나섰다. 심지어 대검찰청과 경찰청에서도 독자적으로 수사에 나서겠다며 자료 협조를 요구해왔다.

 

실명 보도에 대한 고민

이같은 반향이 나올 수 있었던 원인은 무엇일까? 기자는 실명보도가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취재를 마치고 기사를 작성하던 중 기자에게 닥친 고민도 바로 이 부분이었다.

우리나라 언론은 범죄사건 보도에서 익명 보도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공적 인물이 범죄를 저지르거나, 연쇄 살인범과 같은 공공의 질서와 안전에 심각한 위해를 가했을 경우 등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는 실명보도를 하지만 대개 익명으로 처리한다.

즉 매스컴에 자주 오르내리는 유명인이나 장·차관급의 고위 공무원이 아니라면 익명으로 보도하는 게 관례인 상황에서 이 사건 관계자들의 신원을 공개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컸다.

이 사건의 주범 격인 이상엽씨와 류순열씨는 중소기업의 사장에 불과하고, 이들로부터 4천만 원의 뒷돈을 받고 주가조작에도 가담한 이홍렬 전 YTN 상무 역시 공인이라고 말하기에는 다소 미흡하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보도가 나가자마자 이홍렬씨는 “실명보도로 인해 자신의 명예가 훼손됐다”며 “기사를 삭제하지 않을 경우 민·형사상 책임을 묻겠다”는 내용증명을 보내왔다. 이상엽씨 등으로부터 뒷돈을 받아 놓고도 엉터리 자료를 기자에게 들이대며 자신의 무고를 주장했던 한국서부발전 관계자 역시 실명을 공개한데 대해 “너무한 것 아니냐”며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들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의 범죄 사실이 실명과 함께 인터넷에 떠도는 게 못 마땅한 게 당연할 수 있다.

하지만 기자는 익명 보도로 인해 이들의 범죄 사실이 묻히는 것보다 명예훼손 소송을 감수하는 게 차라리 옳다고 여겼다. 그것이 진실을 밝혀달라며 죽기 전 자료를 정리해 남긴 고인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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