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2회 지역보도부문 기획보도상_탐사기획 돌직구40-누구를 위한 분사인가_울산MBC 유희정 기자

◎ “기업의 발전이 울산의 발전입니다”

울산시청에 전화를 걸면 흘러나오는 통화연결음입니다. 전화를 걸어오는 누군가에게 울산시의 이름으로 가장 먼저 건네는 말이 ‘기업의 발전’인 셈입니다. 취재를 하다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듣게 될 때도 있지만, 몇 년을 들어도 익숙해지지 않습니다. 왜 이렇게 저자세일까?

포털사이트에 ‘지자체 기업 유치’를 적고 뉴스를 검색해 보면 정답이 나옵니다. 전국 각지에서 기업을 끌어오기 위해 말 그대로 사활을 건 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사람은 줄고 돈줄은 더 빠르게 말라 가는 수도권 바깥에서 이 경쟁은 더 치열해집니다.

울산이라고 예외일 수 없습니다. 손꼽히는 부자 도시라지만, 이 도시의 풍요로움을 떠받치는 건 몇 개 안 되는 대기업입니다. 받침돌 하나만 빠져도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현대중공업이라는 거대한 받침돌이 실제로 흔들리기 시작하자, 지역 사회는 공포에 질렸습니다.

 

◎ “이러다 울산 망합니다”

현대중공업은 이번 달부터 8개 회사로 나뉘어 운영됩니다. 건설기계, 태양에너지 등 조선업과 직접 관련이 없는 분야들이 분리됐습니다. 1500명이 넘는 직원들이 더 이상 현대중공업 소속이 아니게 된 겁니다. 분리된 회사 7곳 중 5곳은 본사를 울산 바깥으로 옮겼습니다. 곧바로 울산을 나가야 하는 직원만 700여 명, 일부 회사는 아예 공장까지 뺄 예정이라 생산 인력도 추가로 빠져나갑니다.

지자체도 다급해졌습니다. 사람이 빠져나가면 당장 세수가 줄어듭니다. 1년에 9억 원씩 세금을 못 걷게 된다는 분석도 나왔습니다. 더 큰 문제는 지역 경제 전체에 미칠 악영향입니다. 이미 조선업 불경기로 유례없는 타격을 입었지만, 잠시 경기가 좋지 않은 것과 아예 회사가 옮겨가 돌아올 기약도 없게 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입니다. 울산은 산업단지를 만들고 공장을 세우며 함께 건설된 도시입니다. 회사가 사라지는 것은 도시의 근간을 사실상 뽑아버리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 경영상의 판단이니 ‘그런 줄 알아라’?

현대중공업은 왜 분사를 결정한 걸까요? 회사가 내놓은 이유는 ‘조선업 불황’입니다. 경기가 좋지 않아 여러 사업부를 거느리고 있기 힘들다는 겁니다. 그래서 회사를 잘라내고, 이 과정에서 직원들의 근로조건이 나빠지거나 지자체에 어려움을 야기할 수도 있지만 불가피한 경영상의 판단이었다는 설명입니다.

그렇지만 본사까지 옮겨야 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지역 사회는 울산 바깥에서 좋은 조건이 나오자 본사부터 옮긴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습니다. 전국에서 기업 유치를 위한 전쟁 수준의 경쟁이 벌어지고 있으니 회사 입장에선 입맛에 맞는 곳을 고르기만 하면 된다는 겁니다. 이 과정에서 울산 지역사회는 완전히 무시됐다는 반발이 끊이질 않습니다. 현대중공업이 울산에 조선소를 세우고 발전하는 과정에서 지역 사회가 혜택을 제공하고 주민들이 수십 년 양보한 몫이 적지 않은데, 기업을 키울 때는 말없이 특혜를 누리다가, ‘단물이 빠지자’ 떠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나마 지자체는 ‘단체’의 이름으로 반발이라도 해 볼 수 있습니다. 갑자기 회사가 바뀌고, 근로조건이 나빠질 지도 모르게 된 직원들은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도 한사코 신원을 밝히지 말아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분사된 회사로 옮겨가기 싫다고 하면 이해할 수 없는 징계가 떨어지고, 회사는 바뀌어도 좋으니 일만 울산에서 하게 해 달라고 요청해도 ‘일일이 사정 봐 줄 수 없다’는 답만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일각에서는 이렇게 무리한 결정을 내린 데 더 중요한 동기가 있다고 의심하고 있습니다. 총수 일가의 경영 세습이라는 동기입니다. 분사는 해법일 수 있습니다. 회사를 잘게 나누고, 나눈 회사마다 총수의 지분을 뿌려놓은 뒤, 나눈 회사 중 하나를 대장으로 삼고, 각 회사에 뿌려진 총수의 지분을 전부 대장 회사의 지분으로 바꿔버리는 겁니다. 회사를 ‘헤쳐 모여’하는 것만으로도 총수 일가의 지배력을 일거에 높이고, 경영 승계도 용이해진다는 겁니다.

여기에는 회사의 공동 재산인 ‘자사주’도 동원됩니다. 회사의 돈으로 산 회사 주식인 자사주는 특정 주주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지 못하게 의결권을 제한받습니다. 하지만 우리 상법에는 허점이 있어서, 이 주식을 다른 사람이나 기업에게 넘기는 순간 의결권이 살아납니다. 총수 일가를 위해 활용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현대중공업은 회사를 나누면서, 13.37%에 달하는 자사주를 나뉜 회사 중 한 곳에 넘겨 둔 상태입니다.

 

◎ 누구를 위한 분사인가?

현대중공업은 이 ‘진짜 의도’에 대해 취재하려 하자 민감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지금 당장 총수 일가의 지분에 아무 변화가 없는데, 경영 세습 운운하는 것은 억측이란 겁니다. 하지만 분사 결정으로 회사의 성장에 기여한 대다수가 손해를 입는 건 분명해졌고, 극소수의 총수 일가가 ‘챙길 수도 있는’ 이익이 무엇인지도 확실해졌습니다. 거창하게 ‘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논할 것도 없습니다. 현대중공업은 울산과 함께 발전했고, 울산시민의 양보로 더 크게 자랄 수 있었습니다. 기업이 받은 만큼의 책임을 다 하는지, 끝까지 지켜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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