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직 언론인, 이렇게 삽니다_해직 5년 만에 다시 마이크를 잡다_박성제 MBC 해직기자

“이제야 빚을 갚을 수 있게 됐다”
해직 이후 취미로 공방에서 시작한 스피커 제작이 사업으로 발전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걸 한다’는 보람은 있었지만 늘 마음 한구석에 빚을 진 듯한 느낌이 있었다. 해직언론인들이 만든 대안언론 <뉴스타파>에 함께 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 마음의 부담 같은 것이었다.
2012년 이근행 PD와 노종면 기자가 언론노조 사무실 한구석에서 처음 시작한 인터넷 방송이었던 <뉴스타파>는 최승호, 현덕수, 김용진, 최경영 등 기라성 같은 언론인들이 하나둘씩 합류하고 신입사원 공채까지 실시하면서 어느덧 40여 명의 기자, PD를 거느린 중견 언론사가 됐다. 규모만 커진 게 아니다. 끈질기고 집요한 취재로 한 달이 멀다 하고 특종을 터뜨리는가 하면 치밀한 기획취재를 바탕으로 언론 관련 상은 도맡아 수상하는데다, 최근에는 <자백>같은 다큐멘터리 영화까지 흥행시키면서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최고의 탐사보도 매체로 자리 잡았다.
이렇게 훌륭하게 성장한 언론 <뉴스타파>에서 명색이 해직언론인인 내가 무언가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늘 찜찜한 부채의식이 된 것이다. KBS 출신으로 <뉴스타파>에서 활약하고 있는 김경래 기자가 함께 프로그램을 해보지 않겠느냐고 연락해 왔을 때 주저 없이 오케이 했던 것은 ‘이제야 빚을 갚을 수 있게 됐다’는 반가운 심정 때문이었다.

보름 만에 시작한 방송, 무모함과 ‘똘끼’가 힘
김경래 기자의 제안은 ‘딱딱하지 않고 편안한 시사 토크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자는 것이었다. 젊은 PD, 전문 작가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회의를 거듭한 끝에 포장마차에서 소주 한 잔 하면서 세상 얘기하듯, 게스트를 불러 술을 마시면서 뉴스와 이슈를 얘기해보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이왕 술 마시는 김에 아예 세트도 포장마차처럼 만들자는 데 합의가 됐고 자연스럽게 프로그램 이름은 <뉴스포차>로 결정됐다. 뉴스타파 공채 1기 홍여진 기자와 내가 공동 MC를 맡기로 했다.
우여곡절 끝에 작년 12월 19일, 드디어 첫 방송이 유튜브에 업로드됐다. 단 6명으로 팀이 구성되어 기획회의를 시작한 지 보름 만에 첫 방송이 인터넷에 공개된 것이다. 예전에 일하던 지상파 방송이었다면 어림도 없는 작업이었을 것이다. 우선 지명도 높은 진행자를 섭외해야 하고, 수십 번의 콘셉트 회의를 거치고, 전문 디자이너와 세트를 설계하고, 음악도 작곡하고, 파일럿 프로그램도 만들어서 윗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하는 등 프로그램 하나가 전파를 타려면 서너 달의 준비 기간은 기본이다.
하지만 <뉴스포차>는 모든 걸 포기하고 오로지 진정성으로만 승부하기로 했다. 어차피 포장마차 콘셉트이니 세트에 돈을 들일 필요도 없었다. 이틀 만에 뚝딱뚝딱 포차세트를 만들고 바로 첫 번째 게스트를 섭외했다. 바로 최순실 국정농단 게이트를 세상에 알리고 청문회 스타로 떠오른 안민석 의원이었다. 안 의원이 세트에 도착하자 리허설 한 번 없이 바로 녹화에 들어갔다. 지금 돌이켜 봐도 말도 안 되는 첫 녹화였지만 일단 찍고 나면 편집하면서 어떻게 되겠지 하는 무모함과 똘끼로 다들 뭉쳐있었기에 가능했던 방송이었다.
게다가 내 입장에서는 몇 년 만에 하는 방송인 데다 토크 프로그램 진행은 처음 해 보는 거라 바짝 긴장한 탓에 목덜미에 땀이 맺힐 정도였다. 그래도 안민석 의원이 편안한 스타일로 이런저런 흥미로운 비사들을 털어놓아 주어서 다행스럽게도 첫 방송에 대한 평가는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다. 특히 두 번째 방송 <신사와 거지: 표창원과 박주민> 편에서 두 스타 정치인 게스트가 소맥 폭탄주에 취해 진솔한 에피소드들을 가식 없이 펼쳐놓는 바람에 상당한 호평을 받았고 김제동씨가 게스트로 나온 세 번째 방송은 유튜브 조회수만 30만 명을 돌파하고 팟캐스트 순위에서 2위까지 오르는 대박이 났다.

과로에 시달리는 백수… 당당하게 돌아가리라
<뉴스포차> 덕분에 적당히 여유 부리며 지내던 해직언론인으로서의 생활도 끝이 났다. 금요일과 월, 화요일은 <뉴스포차> 준비 회의와 녹화 때문에 정신이 없고 스피커 제작에는 일주일에 2~3일 밖에 시간을 낼 수가 없게 됐다. 게다가 MBC에서는 국정농단과 탄핵 정국에서 바닥으로 추락한 뉴스 탓에 후배들이 사력을 다한 싸움을 시작했다. 당연히 선배로서 1인 시위라도 하면서 힘을 보태줘야 했다. 이달부터는 <뉴스포차>를 인상 깊게 본 모 출판사 측의 제안으로 언론개혁을 주제로 한 책의 집필에도 착수했다. 한마디로 과로에 시달리는 백수가 됐다.
그래도 바쁘다는 건 좋은 거다. 해직 5년 만에 다시 시작한 방송이 새롭게 삶의 활력이 되고 있다. 결코 수월한 일은 아니다. 적당히 해서도 안 된다. 예전처럼 취재를 해서 기사를 쓰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내 이름을 걸고 진행하는 방송으로 시청자들의 냉정한 평가를 받는다는 건 방송언론인으로서 더없이 명예로운 일 아닌가. 게다가 선배 해직언론인들이 세운 독립언론 <뉴스타파>에서 작으나마 내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해직언론인의 행복이 아니고 무엇이랴.
다만 친정 MBC를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무거워진다. 돌아가는 판이 너무 황당하고 한심해서 이제는 분노할 힘조차 사라져 가고 있다. 최근에는 MBC 뉴스 몰락의 책임자로 지목받아온 김장겸 보도본부장이 방송문화진흥회에서 3년 임기의 새 사장으로 선임됐다. 그 밑에서 뉴스를 농단했던 인물들이 대거 고위 간부에 등용됐다. 심지어 탄핵반대를 외치는 이른바 극우 ‘태극기’ 세력들이 MBC를 마지막 거점으로 삼으려는 움직임이 보인다. 피가 거꾸로 솟고 통탄할 노릇이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려야 MBC를 예전의 모습으로 돌려놓을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올해 안에 MBC로 돌아가는 건 기정사실이라고 믿고 있다. 정권교체 여부나 정치적 상황은 중요하지 않다. 옳은 일을 하다 억울하게 해고됐기 때문에 우리는 당당하게 대법원의 최종 판결을 받고 복직할 것이다. 복직하게 되면 모처럼 다시 시작한 방송의 진행도 그만두어야 할 것이다.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간 MBC에 행복하게 돌아가면서 나보다 더 훌륭한 진행자에게 <뉴스포차>의 바통을 넘기게 될 날을 마음속으로 그려 본다.

Posted in 2017년 3·4월호, 격월간 방송기자, 해직언론인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