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9회 지역보도부문 기획보도상_日강제동원, 사라지는 역사의 기록 20부작_KBS부산 장성길 기자

강제동원 피해는 과거가 아닌 오늘 우리의 문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나이는 대부분 90세 이상이다. 100만명 넘게 해외로 징용됐다. 현재 생존해 있는 사람은 9000여명에 불과하다. 10년 후면 이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이 질문과 함께 강제동원 보도 기획은 시작됐다. 아픈 역사지만, 반드시 기억해야 할 역사. 돌이키고, 반복해 성찰하고, 후세대에 기록으로 남기지 않으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이런 위기감이 기획을 구상하는 내내 떠나지 않았다. 강제동원의 출발지이자 귀국 후 첫 기착지인 부산에서 이 보도를 해야 한다는 책임감도 배경이 됐다.

 

강제동원 취재, 커다란 벽 넘는 과정의 연속

 

취재는 커다란 벽을 하나씩 넘어가는 지난한 과정의 연속이었다. 대일항쟁기 피해조사위원회가 2015년 말 해체되면서 모든 자료는 행자부로 이관됐다. 민감한 대일관계를 의식해서 행자부는 철저히 비공개 원칙을 고수했다. 피해자를 만나는 것부터가 벽이었다. 각 지자체들을 상대로 수십 장의 공문을 보냈다.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설득과 자료 조사를 이어나갔다.

생존자 리스트를 받는다고 끝난 문제가 아니었다. 피해자들은 지병과 노환으로 대부분 의사소통이 불가능했다. 자료조사원의 도움을 받아, 수백 통의 전화를 돌렸고, 자택 방문을 이어갔다. “아픈 역사지만 남기지 않는다면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취재진의 진심에 10여명이 만나겠다는 뜻을 밝혔다. 강제동원 20회 보도는 힘들게 첫발을 뗄 수 있었다.

‘짓밟힌 인간 존엄 찾고파’ 힘겨운 소송하는 피해자 2세대들

 

피해자의 가슴 아픈 사연을 남기는 것과 함께 중요한 문제는 현재 진행형이 소송이다. 해방 이후 수십 건의 소송이 제기됐다. 지금도 11건의 소송이 힘겹게 이어오고 있다. 하지만 한 번도 제대로 된 사과와 배상을 받아내지 못했다. 일본 정부는 무시와 시간 끌기 전략으로 일관하고 있다. 소송의 가장 큰 걸림돌은 1965년 체결된 한일협정이다. 일본 정부는 당시 우리나라에 지급한 배상금으로 전쟁 피해에 대한 책임이 끝났다고 주장하고 있다. 소송은 그야말로 ‘메아리 없는 외침’이다.

왜 이들은 이토록 승산없는 싸움에 매달릴까? 답은 간단했다. 강제동원 소송을 제기한 피해자와 유가족들은 한결같이 배상금의 액수는 중요하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짓밟힌 인간의 존엄을 배상을 통해 조금이라도 회복하고 싶은 마음뿐인 것이다. 소송전에 직접 뛰어들 수는 없지만, 아픈 그들의 상처를 위로해주면서 오히려 취재진이 더 힘을 얻었다.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강제동원의 아픔들

 

강제동원이 남긴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사할린 미즈호 주민 학살사건, 우키시마호 참사는 대표적인 미제 사건들이다. 진상규명에 대한 요구에 일본정부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1세대들은 이미 사망해 이러한 목소리는 차츰 사그라지고 있다. 수백만 건에 달하는 강제동원 기록물을 유네스코로 남기는 문제도 조사위의 해체로 인해 지지부진하다. 똑같은 강제동원 피해를 입고도 국내라는 이유로 외면당한 소수의 피해자들의 목소리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강제동원 피해는 과거가 아니다.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세대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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