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기자가 만난 방송기자_집요하게 취재하는 냉철한 의사_SBS 조동찬 의학전문기자

 

 

SBS 조동찬 의학전문기자

 

SBS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에는 선임들의 집단구타를 피해 탈영했다가 숨진 병사의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외부 충격으로 인한 장 천공 때문에 수술을 받지만, 수술 후 처치 도중 숨진 이 병사의 사망진단서 속 사인을 놓고 병원 최고위층과 주치의는 갈등을 빚는다. 회유와 협박을 견뎌내고 ‘병사’가 아니라 ‘외인사’라고 기록한 주치의가 숨진 병사의 부모에게 사망진단서를 건네자, 그 부모는 ‘외인사’의 의미를 바로 알아채고 오열한다.
필부필부匹夫匹婦도 ‘병사’와 ‘외인사’가 얼마나, 어떻게 다른지, 그 의미를 잡아채는 이 상황. 모두 故 백남기 농민의 사인을 둘러싼, 모두를 분노하게 했던 그 논란이 낳은 의도치 않았던 결과다. 의무 기록과 사망진단서를 꼼꼼히 분석하고 비교해 그 길고 숨 막히는 논쟁에 마침표를 찍었던 기자가 바로 신경외과 전문의인 조동찬 의학전문기자다.

 

 

 

 

일시  2016년 12월 22일  
장소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함춘관 기자실  
인터뷰  SBS 남주현 기자(정책사회부)

너무 식상해서 피하고 싶었지만, 하지 않을 수 없는 질문이기도 하다. 의학전문기자가 된 지 만 9년이 지났다. ‘기자’라는 직업 어떤가?
질문한 사람이 의사라면, 일단 후회한다는 말씀을 드린다. 기자가 되면 신경외과 의사보다는 편할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의사는 연륜이 쌓이면 후배 의사들이 많아지고 일이 줄어드는데, 기자는 계속 일이 늘어난다. 그리고 일상에 리스크가 너무 많다. 예컨대 특정 질환에 대해 기사를 쓸 때도 어떤 약이 더 좋냐, 그 약에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게 맞느냐, 이런 부분에 대해 제약회사 등등의 이해관계 엇갈려서 취재원들이 상당히 민감하다. 의혹을 제기하는 기사를 쓸 때는 말할 것도 없다. 의혹의 대상자는 목숨 걸고 보도의 빈틈을 찾고 시비 걸 각오를 하고 있기 때문에, 매일매일의 취재와 보도가 상당히 위험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해야 하는 꼭 필요한 일이고, 제대로 하면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는 이야기를 꼭 덧붙인다.

의사라는 직업을 그만뒀을 뿐, 의사로서의 아이덴티티를 줄곧 유지하고 있다. 그것이 취재하고 기사를 쓰는 데 어떻게 도움 되나?
SBS는 물론이고 언론계 전체로 봐도 의학전문기자를 뽑은 것은 다양성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자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기자는 이미 충분히 많다. 그런데 내가 의사의 시각을 버린다면 나를 뽑았던 회사의 의도에 어긋날 수 있다. 사안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치열하게 팩트를 수집하는 취재 방식은 의사와 기자가 크게 다르지 않다. 현대의학은 논리가 상당히 중요해서 논리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있고 흐름대로 가야 결론에 도달하는 학문인데, 기사를 쓰는 방법도 상당히 유사하다. 물론 기사는 완벽한 근거가 없더라도 정황만으로 의혹을 제기하는 부분도 있다는 점에서는 다르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취재하고 기사를 쓰는 방식은 의사가 연구하거나 환자를 진료하는 방식, 결론을 내리고 환자에게 설명하는 방식과 다르지 않다. 그래서 생각했던 것보다 어렵지 않았다.

그래도 기자가 된 뒤 힘들거나 후회되는 순간이 있을 텐데?
계속 의사를 하는 친구들에 비해 소득은 확실히 적다. 그렇지만 기자가 된 뒤 내 인생은 아주 다이내믹해졌고, 무언가 하나에 갇혀 살지 않는다. 기자가 되지 않았다면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이 지금 같지 않았을 것이고, 故 백남기 농민의 사망진단서 사건도 지금처럼 보지 못 했을 거다. 군의관 시절은 물론이고, 병원 의국에서도 의사들은 조선일보를 주로 봤고, 그 신문의 논조대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기자가 된 뒤 여러 신문을 두루 보고 SBS 기자들이 내는 다양한 의견을 접하면서, 시야가 넓어지고 생각도 훨씬 풍성해졌다. 이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소중한 가치다.

방향성만 옳다면 힘든 취재란 없다

최근 까다롭고 어려운 기사를 유독 많이 썼는데, 체력적으로나 여러 가지로 힘들지 않았나?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라면 힘들 것 없다. 내 의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가야 할 때 힘들다고 느끼는 것이다. 의사 시절 내 판단과 다른 방식으로 치료해야 할 때 힘들었다. SBS에서 기자 생활을 하면서도 내 뜻과 다르게 취재하고 기사를 쓸 때도 있었다. 다만 그런 순간도 트레이닝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지나고 나면 힘들지 않다. 지난 9월부터 유독 바쁘긴 했지만, 그전에도 각종 시리즈를 포함해 많은 일을 했고 작년에는 메르스(MERS)를 겪기도 했다. 메르스 당시에는 한 달 넘게 하루도 쉬지 못한 채 매일매일 취재하면서 10개 넘는 꼭지를 설계하는 등 기획까지 했는데 그때도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몸은 힘들어도 생각하는 대로, 치열하게 취재한 대로 보도할 수 있었으니까.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힘든 건 취재가 어렵기 때문이다. 의혹은 많은데 당사자들이 다 부인하고 있고, 그들이 거짓말하고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지만 그걸 입증하기가 어려워 힘든 것이다. 다른 외부적인 요인 때문에 힘들진 않다. 물론 지금 이 순간 힘들어도, 이것도 지나고 나면 괜찮을 것이다.

두고두고 정말 잘 썼다, 스스로 칭찬해주고 싶은 기사는 무엇인가?
사실 대표작이라고 할 만한 기사는 제법 많다. 2011년 가습기 살균제 참사 당시 일반적인 폐 질환이라는 정부의 입장을 뒤엎고, 새로운 질환이라 역학조사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기사화했다. 그런데 단독기사에 대한 자부심 못지않게, 중간에 그 사안을 놓았다는 후회가 크다. 피해자들을 계속 접촉하고 사안을 추적했어야 했는데, 취재 과정에서 불거진 여러 가지 상황 때문에 접었다는 것이 가장 후회되는 부분이다.
자부심을 갖고 있는 또 하나의 단독 기사는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인 개인의료 정보 불법 판매 관련 기사다. 불법 수집한 개인의료 정보 300만 건을 제약회사에 판매한 행위가 극악무도한 범죄라고 생각했는데, 내 생각만큼 큰 이슈가 되지 않고 지금도 해결이 지지부진하다는 점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내가 미숙해서 이슈화되지 않은 것인지, 기사화하는 과정에서 방법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계속 고민하고 있다.

비선 진료는 불법…개인의료 정보 보호 주장은 어불성설

개인의료 정보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많이 강조해왔다. 최근 국정농단 의혹 보도 과정에서 대통령의 개인의료 정보가 공개된 걸 문제 삼는 의사도 있었는데?
불법 진료, 이른바 비선 진료에 대해 보도하는 과정에서 개인의료 정보를 공개했다며 의사 선배인 대학교수가 비난한 사실이 있다. 그러나 합법적으로 정상적인 진료를 받은 경우에만 개인의료 정보를 보호받아야 하는 거고, 불법인 의료 행위는 불법이기 때문에 낱낱이 밝혀줘야 한다. 그 자체로 말이 안 되는 비난이라고 본다.

끈질긴 취재로 정평 났지만, 특히 국정농단 의혹을 집요하게 취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세월호 때문이다. 2014년 4월 16일, 그날을 우리가 어떻게 기억하느냐에 관련된 문제다. 모든 사람이 배가 가라앉는 걸 TV를 통해 실시간으로 봤다. 나중에 아이들이 촬영한 동영상을 보니, 아이들은 기울어진 상태에서 그렇게 가만히 있는 게 가장 안전한 거라고 믿고 있었다. 그 순간에라도 누군가 빨리 내리라고 했으면 다만 몇 명이라고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우리가 왜 우리 아이들을 저렇게 허망하게 보냈느냐 하는 부분이고, 그 세대에 대한 미안함이 있다. 그래서 세월호 침몰 원인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돼있는 이번 사안에 대해서는 타협할 수가 없다.

많은 의사 선생님들이 “네가 왜 여기 나서냐?”며 만류한다. 의사가 관여한 부분은 얼마 되지 않는데 왜 의료계 쪽을 집요하게 취재하느냐고 하는데, 그렇게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문제다. 아이들을 그렇게 허망하게 보낸 것의 이면에 온갖 부조리한 것들이 깔려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는데도 하나도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월호 당시 단원고 아이들이 했던 말이 두 가지였다. 사과하라, 그리고 잊지 말아 달라. 뭐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네가 그렇다면 미안해, 그건 진정한 사과가 아니다. 어떤 이유 때문에 이렇게 됐고, 그 부분을 어떻게 잘못해서 미안하다, 이게 진정한 사과다. 사실 관계를 명확히 밝힌 다음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 사과해야 하는데 지금 이게 안 되고 있다. 당시 온 국민이, 언론과 정치인이 미안하다, 잊지 않겠다고 했다. 잊지 않는다는 것은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한다는 것이기도 한데, 그전 단계인 제대로 된 반성과 사과도 안 이뤄졌다는 거다.
진정한 사과를 하기 위한 과정이기 때문에 집요하게 달려들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우리가 한 게 뭐가 있나? 성과는 대단히 미미하다.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의혹을 밝혔나? 고위 관계자 누구 하나 처벌받은 사람이 있나? 벌써 염증 내는 사람도 있지만, 냉정하게 말하면 아무것도 한 게 없다. 세월호에 대한 인식이 다르다는 것도 알지만, 그렇게 아이들이 허망하게 죽은 것에 대해 어른이 그냥 넘어가려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의학전문기자로서 꼭 쓰고 싶은 기사나, 취재 방향이 있다면?
방향성을 제대로 잡는 게 진짜 실력 같다. 우리 의료계가 가야 할 방향, 이 부분에 대해서 계속 고민하고 그 방향에 부합하는 기사를 써서 작은 디딤돌이라도 놓고 싶다. 이를테면 서울대병원을 어떻게 만들 것이냐 하는 문제다.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병원이자 국공립병원인 서울대병원에서 외래 환자를 더 보고 건강검진을 많이 해서 자체적으로 수익을 내도록 할 것이냐, 아니면 어디서도 치료받기 어려운 희소난치성 질환이나 중증질환자들이 이 병원에서 진료받을 수 있도록 할 것인가? 이때 발생하는 적자는 세금으로 부담할 것인가? 지금은 양쪽이 다 혼재돼있다 보니, 이도 저도 제대로 안 되고 있다.
더 크게 보면 보건의료 시스템을 어떤 도구로 쓸 것이냐의 문제다. 보건의료를 미래 성장 동력의 한 축으로 쓸 것이냐, 돈은 못 벌더라도 국민의 건강을 책임지도록 할 것이냐. 방향성이라는 건 무엇을 먼저 하느냐의 우선순위와 관련된 것인데, 정답은 없다. 철저하게 국민의 의견을 물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국민 다수가 어떤 가치를 지향하느냐를 묻고 치열하게 고민해야 하는 부분이다.

기자로 언제까지 일할 생각인가.
정해 놓은 시기는 전혀 없다. 그저 할 수 있는 데까지, 쓸모 있는 때까지 열심히 하겠다.

Posted in 2017년 1.2월호, 격월간 방송기자, 방송기자가 만난 방송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