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직 언론인, 이렇게 삽니다_내 생애 그처럼 아름다운 날 또다시 올 수 있을까?_조승호 YTN 해직기자

함께 해직된 노종면 씨가 만든 ‘일파만파’에 합류했다. 시민편집단이 많이 선택한 기사나 글들을 ‘짧고 임팩트있게’ 요약하는 게 주된 일이다. 예전에 뉴스편집 팀에서 헤드라인 뽑을 때와 비슷하다. 글을 읽고 야마(핵심)를 잡아내 한두 문장으로 축약하는 것. 기사의 흐름을 알아야 하기 때문에 뉴스 모니터도 꾸준히 해야 한다.
새벽 4시 반에 일어난다. 30분간 준비하다가 5시부터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간다. 밤새 선택된 글들을 놓고 요약 글을 쓰다 보면 어느새 7시다. 수습 때 아침 마와리 돌고 나서 정신없이 보고하고 깨지고 하다 보면 하루 일을 마친 듯한 기분이었는데 지금 그렇다. 아침 기사 정리가 끝나면 한숨 돌린다. 아이들을 깨우고 아침 먹고 차로 데려다주고 다시 돌아오면 9시. 이제부터는 동료들과 함께 작업한다. 9시, 11시, 오후 1시… 저녁과 밤 시간에는 돌아가며 당번을 맡고 있다.
노종면 씨는 새벽 업무도 돌아가며 맡자고 했다. 내가 우겼다. 새벽 업무는 내가 고정으로 맡고 싶다고… 해직되기 전까지 기자 생활 17년을 돌아봤을 때, 내 스스로 가슴 벅찼던 시간들이 있다. 사건기자 때, 법조 때, 통일부 출입 때, 새벽 뉴스 편집팀장 때… 새벽 뉴스 하던 때를 그리워하며 새벽만큼은 내가 맡고 싶다고 우겼다.

공포의 일심동체주… 동료들과 함께 했던 시절
많은 사람이 YTN의 전성기라고 기억하는 때였다. 뉴스팀장들에게 무한한 권한을 줬다. 대신 시청률에 책임을 지라고 했다. 내가 선택한 마음 맞는 후배들과 함께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했다. 모두 새벽 3시에 출근해 일심동체주(?)를 마셨다. 커피 자판기 앞에 모여 각자 마시고 싶은 것 하나씩 뽑는다. 밀크커피, 블랙커피, 코코아, 율무차 등등… 뽑은 다음 한꺼번에 다 섞었다. 그리고 다시 사이좋게 나눠 마시면서 오늘 뉴스의 순서와 방향을 논의했다. 처음에는 여러 음료를 섞었는데 조금 지나다 보니 밀크커피와 블랙커피 2개로 줄었다. 그래도 낄낄대고 섞어가면서 ‘우리는 하나’임을 확인했었다. 당시의 팀원들은 지금도 일심동체주의 기억을 많이 얘기한다. 정말 괴로웠다고… 내 기억에는 다들 재미있어했던 것 같은데…
그때와 지금, 차이가 있다면 그때는 5~6명이 함께 했고, 지금은 나 혼자 한다는 사실이다. 지금은 함께 일심동체주를 만들어 마실 동료가 옆에 없다. 낄낄거리며 의논하고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소리소리 지르던, 심지어는 팀장인 나와 멱살잡이 일보 직전까지 갈 정도로 의욕적이던 동료들이 옆에 없다. 새벽의 적막 속에서 나 혼자 일하고 있다. 새벽의 고요함이 좋으면서도 싫은 이유이다.

지금은 나 혼자 새벽 근무… 기억만으로 행복하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 이선희의 ‘인연’ 한 구절을 흥얼거린다. ‘내 생애 이처럼 아름다운 날 또다시 올 수 있을까요?’ 이따금 생각한다. 그때의 열정을 다시 가질 수 있을까? 그때 우리의 의기투합을 또 경험할 수 있을까? 당시 새벽 뉴스팀 멤버들의 운명도 지금 제각각이다. 누구는 나와 함께 해직됐다 다행히 복직했고, 누구는 특파원으로 나가 있고, 누구는 회사를 그만뒀고, 누구는 ‘매력적인 대통령’을 외치며 부역자의 길을 선택했고… 이제 그 시절로 돌아가지는 못하리라. 그렇지만 치열하게 산 내 인생 어느 한 시기를 아름답게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낀다.


밤 11시 당번을 하는 날이 있다. 그러면 12시 반쯤 끝난다. 다음날 새벽 4시 반에 일어나니까 4시간 남짓 잔다. 아침에 피곤하다. 그러다 문득 생각한다. ‘지금 내가 피곤하게 일할 수 있다는 걸 행복해해야 하지 않을까?’
주변에서 건강을 많이 걱정한다. 최근 6kg이 빠졌다. 좋은 원인과 나쁜 원인이 하나씩 있다. 좋은 원인은 운동을 많이 한다는 것. 여름 내내 하루 5km씩 달렸고, 가을에는 풀코스를 2번 완주했다. 나쁜 원인은 당뇨약을 먹기 시작했다는 것. 누나가 말했다. ‘무병단명, 일병장수’. 그래. 건강 챙기면서 장수하자.

해직자에게 마지막 명령 ‘복직을 준비하라’
최근 해직 3,000일 행사 때 최상재 선배가 오셨다. 내가 해직될 때 언론노조 위원장이었다. 최 선배는 자신이 지금도 언론노조 위원장이라고 했다. 그때 해직당한 언론인들이 모두 복직하기 전까지는 자신도 언론노조 위원장의 짐을 벗어버릴 수 없다고… 그 언론노조 위원장이 해직자들에게 마지막 명령을 내렸다. ‘복직을 준비하라’. 그 말을 듣고 맨 처음 든 생각은 ‘뭐야? 영화 <암살>도 아니고…’ 암살 마지막 부분의 대사 “16년 전 임무, ‘염석진이 밀정이면 죽여라’, 지금 수행합니다.”
최선배의 명령은 머지않아 복직할 테니 다시 열심히 일할 준비를 하라는 것이었다. 기사 감각을 잃지 말고 건강 잘 챙기라는 것일 게다. 기사 감각은 일파만파 업무로 유지되는 것 같다. 건강은 아픈 만큼 더더욱 몸 챙기고 열심히 운동을 해야겠지. 최선배에게 마음속으로 대답했다. ‘복직을 준비하라는 명령, 열심히 수행하겠습니다.’ 명령을 직접 받은 나보다 옆에 있던 동료들이 그 명령에 더 기뻐한다.

Posted in 2017년 1.2월호, 격월간 방송기자, 해직언론인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