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7회 뉴스부문 특별상_최순실 게이트_JTBC 특별취재팀 손용석 기자

“우리는 뭐부터 해야 될까요?”

보도국에 미르팀이 꾸려진 건 지난 9월 말이다. 타매체에선 이미 특종기까지 지면에 쓰던 마당이었다. 처음 회의실에 모인 팀원들이 하나같이 물었다. 일단 화이트보드에 등장인물과 주체를 하나씩 그리며 선을 이어갔다. 대기업-전경련-미르재단-청와대-차은택-최순실-대통령까지. 막상 그림을 그리고 보니 실제로 끝난 게 아니었다. 서로를 잇는 연결고리는 말 그대로 비선이지, 정작 실선이 없었다. 전경련이 대기업에 강제 모금한 정황, 청와대의 배후 의혹, 그리고 비선 국정 개입까지. 모든건 아직 점선이었다. 비선을 실선으로 만들어 준 건 다름아닌 현장이었다.

“비선이 또 있었어요. 대통령 가방이라고…”

우선 국회와 법원, 기존 보도를 통해 확보한 정보를 바탕으로 새벽부터 뻗치기, 전화인터뷰, 현장취재를 매일 이어갔다. 아침이면 국회와 ‘비선’들의 회사로, 그리고 저녁에는 뉴스 제작을 위해 회사로 모였다. 최씨가 지나간 곳을 샅샅이 뒤졌지만 저녁이 되면 기자들의 보고는 똑같았다. “다른 매체에서 싹 훑고 갔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운 인물과 회사가 나타났고 엉켜있던 실타래가 조금씩 풀려나갔다. 특히 미르재단 전 사무총장, 그리고 ‘비선의 비선’인 고영태 씨의 존재를 확인하면서 비어있던 퍼즐이 맞춰졌다. 차은택-고영태-최순실의 관계가 실선으로 변했던 것이다. 고씨로 인해 찾아가야 할 현장이 눈에 띄게 늘면서 팀 분위기는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처음 도착한 현장에서 입수한 문건과 증언이 하나하나 기사가 됐다. 하지만 고씨에게 직접 들었던 증언 중 하나는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최순실이 대통령 연설문도 고친다더라고요.” 설마했지만, 이번 사건처럼 ‘설마’가 사실로 이어진 취재는 없었다. 문제는 팩트였다.

 

“선배, 최씨 사진 같아요.”

최순실씨가 사용한 태블릿PC 입수가 결정타였다. 최씨 셀카 사진부터, 대통령의 미공개 휴가 사진까지. 특히 대통령 연설문과 국가 기밀 문건이 담긴 이메일 캐쉬 폴더를 열어볼 때는 손이 떨렸다. 열람 시간을 확인한 결과 최씨는 이 모든 파일을 사전에 받았다. 셀카 사진이 최씨가 맞다는 전문가의 분석과 최씨가 태블릿PC를 사용했다는 증언까지 확보했다. 하지만 이 때가 가장 큰 위기였다. ‘만약 최씨가 사용한 태블릿PC가 아니라면…’. 전진배 사회2부장을 비롯해 팀원들이 상암동에 새롭게 만든 아지트에 모여 수많은 가능성을 검토하며 매일 격론을 벌였다. 결국에는 태블릿PC 속 최순실 파일이 모든 걸 말해준다고 믿었다. 아지트에서 200개가 넘는 파일의 흔적을 분석하는 작업에 나섰다. ‘한글’ 문서정보에서 청와대 실세 이메일 아이디, 최순실씨 딸의 개명 전 이름 ‘유연’으로 확인하면서 처음에는 희열이 찾아왔지만 곧이어 밀려온 건 상실감과 자괴감, 분노였다. 그들은 왜 그랬을까? 판도라의 상자는 열렸고 물러설 곳은 없었다. 미르팀도 보안상 최순실과 청와대를 의미하는 ‘C&BLUE’팀으로 바뀌었다.

 

“회장(최순실)이 잘하는 건 연설문 수정”

파일 분석을 마치고 찾아온 고민은 보도 그 이후였다. ‘그들이 모든 걸 부인한다면…’.

먼저 10월 19일 고씨 발언인 “회장(최순실)이 잘하는 건 연설문 고치는 것”을 토대로 보도한 뒤 반응을 기다렸다. 최순실 파일을 통해 팩트는 확인한 뒤였다. 청와대에선 “지금이 봉건시대냐”는 입장을 내놓았다.

10월 24일 ‘대통령 연설문 수정’을 시작으로 최순실 파일을 본격 보도했다, 당일 개헌 카드를 꺼낸 대통령은 다음날 사과했지만 최씨 개입이 연설이나 홍보에 그친다고 했다. 다음날 우리는 ‘국가기밀도 사전 입수’를 보도했고, 결국 100만명의 시민이 광장으로 나왔다.

일각에선 이번 JTBC 보도를 상대 대응에 따라 대처하는 ‘신개념 보도’라고 했다. 그 상대가 지난 4년간 국정을 농단해 온 최씨였던 만큼 우리 역시 치밀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차움의원을 통한 대통령 대리처방, 김영재의원 특혜의혹, 최순실씨의 외교인사 개입 등 단독 후속 보도를 이어가고 있다.

JTBC의 최순실 보도는 가이드라인 없이 현장 취재기자의 의사를 중시하는 내부 시스템 덕분에 나올 수 있었다. 우리는 이 시스템에서, 우리 사회 어디까지 비선들이 침투했는지 성역없이 끝까지 추적할 것이다. 10월 31일 뉴스룸의 앵커브리핑처럼 지난 10월은 우리에게 그저 잊혀진 계절이 아니라 결코 잊을 수 없는 계절로 기억될 것 같다. 미르팀에서 출발해 지금은 최순실팀이 됐지만 아직도 끝날 때까지 끝난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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