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_사드 배치_SBS 김태훈 기자

7월 8일 전격적으로 미국의 고고도 요격 체계, 사드THAAD의 주한미군 배치가 결정됐고 닷새 후인 13일 경상북도 성주에 주한미군의 사드 기지가 들어선다는 정부의 공식 발표가 나왔습니다. 그로부터 한 달 이상 지났지만 성주 주민들은 흔쾌히 사드 배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고 성주 밖 반대 여론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습니다.
정부 설명대로라면 전자파가 없어 안전하고 요격 성능이 빼어난 사드의 배치를 반대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정부의 그동안 주장에는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지점들이 수두룩합니다. 사드의 성능과 전자파 위험성을 투명하고 객관적으로 공개하면서 북한의 현실적인 위협에 맞춰 사드의 주한미군 배치론을 담담히 펼쳤더라면 찬반 대립은 지금보다 덜 했을지도 모릅니다.

북한의 중장거리 미사일 발사 때마다 나타난 사드
사드는 한미 정부가 여러 차례 확인했듯이 단거리와 준중거리 미사일 요격용입니다. 북한 미사일 중에는 단거리 스커드와 준중거리 노동 미사일이 사드의 요격 대상입니다. 정부는 북한이 스커드와 노동 미사일을 잇따라 발사했을 때 사드의 주한미군 배치 필요성을 제기했어야 했습니다.
그랬을까요? 정부가 처음으로 사드의 주한미군 배치 필요성을 발표한 날은 지난 2월 7일입니다. 북한이 장거리 로켓 광명성 4호를 쏜 날입니다.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 개발을 위한 장거리 로켓을 발사했는데 사드 배치 필요성이라뇨. 사드는 장거리 즉 대륙 간 탄도 미사일을 못 잡습니다.

그때의 발표는 또 ‘사드는 대 중국 압박 카드’라는 선언이었습니다.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안 채택을 앞두고 한미가 꺼내든, 광명성 4호와는 전혀 무관한 사드 카드는 결의안 채택에 미온적이었던 중국에 ‘사드에 반대하라’라는 친절한 시그널이었습니다.
한미가 5개월 간 사드의 주한미군 배치 필요성을 논의하다가 배치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한 날은 7월 8일입니다. 북한이 중거리 미사일인 무수단 발사에 성공한 6월 22일로부터 2주 뒤 일입니다. 국방장관이 나서 “사드로 무수단을 잡을 수 있다”라는 발언으로 분위기를 띄우더니 전격적으로 배치 결정을 내렸습니다. 국방부는 “사드는 준중거리 미사일 요격용”이라고 밝히면서도 사거리는 길고 낙하 속도는 훨씬 빠른 중거리 무수단을 사드로 잡을 수 있다고 큰소리친 것입니다.
국방장관은 무수단의 대기권 재진입 속도만을 단순하게 따졌습니다. 북한은 실전에서는 채택하지 않는 기형적인 고각 발사 방식으로 무수단을 쐈고 탄두도 좀 색다르게 떨어졌습니다. 발사를 고각으로 한 만큼 낙하각도 컸습니다. 낙하 속도가 사드 요격 범위 안에 간신히 들어왔다고는 하지만 낙하각이 커서 단위 거리를 통과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반감됐습니다. 그만큼 요격할 시간은 줄어듭니다. 사드로 무수단을 잡는다는 논리는 허술하기 짝이 없습니다.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전자파 논란
사드의 레이더 AN/TPY-2의 전자파 강도는 우리 군이 이미 전력화한 패트리엇 요격 체계의 레이더, 그린파인 레이더보다도 약합니다. 지난 2월 사드의 주한미군 배치 필요성을 발표했을 때부터 사드 레이더의 전자파 강도가 패트리엇, 그린파인보다 약하다는 점을 알렸으면 됐을 텐데 군은 패트리엇과 그린파인 배치 지역 주민들의 때늦은 반발을 우려했는지 미 육군 교범에 적시된 사드 레이더 전자파 설명인 “100m 이내 위험”, “3,600m 이내 비통제인원 출입제한” 사실도 처음부터 있는 그대로 공개했어야 했습니다. 몇몇 국방부 출입기자들은 군에 대고 “어차피 사드 레이더는 고지대에 설치될 테고 그렇게 되면 배치 지역 주민들 건강과 무관할 테니 사드 레이더의 전자파 위험성을 가장 보수적으로 알리자”라고 여러 차례 호소했지만 소용 없었습니다. 정부의 입장은 일관되게 “사드의 전자파는 미미하다”였습니다.
북한이 단거리 스커드와 준중거리 노동미사일을 쐈을 때 한미가 담담하게 사드의 주한미군 배치 필요성을 내놨으면 지금처럼 반대 여론이 컸을까요? 스커드와 노동이 날아다닐 때 사드 카드를 꺼내들었어도 중국이 반발했을까요? 애초에 사드 전자파의 위험성을 보수적으로 설명했더라면 성주의 반발이 이토록 거셌을까요?

Posted in 2016년 9.10월호, 격월간 방송기자, 현장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