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직 언론인, 이렇게 삽니다_영화감독으로 사는 이유_뉴스타파 최승호 PD(MBC 해직 PD)

2012년 6월 어느 날, 집에 있는데 한 후배가 전화를 해왔다. 옆에 있던 아내가 나를 쳐다봤다. 내색을 하지 않으려고 그냥 ‘응, 응’ 하다가 전화를 끊었는데 아내가 묻는다. “ 무슨 전화야? … 잘렸구나?” 이상하게 그때 웃음이 터졌다. 하도 어처구니없어서 그랬을 것이다. 무슨 이야기가 돼야 화가 나든, 슬프든 할 텐데 그저 어처구니가 없었다. 한참 동안 아내와 마주 보며 웃었다.

진정한 우울감은 대선 결과가 나왔을 때 엄습했다. 그때까지도 의연했던 아내는 호프집 TV에 박근혜 당선자가 나와 인사하는 모습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당선자를 맞이하는 아나운서의 흥분된 목소리에 기나긴 어둠의 터널을 느꼈다.

뉴스타파에 들어갔다. 만약 대선 결과가 좋지 않으면 뉴스타파에 가서 일을 하겠다고 진작부터 결심했던 터였다. 새로운 동료들과 만나 새로운 환경에서 일하는 것은 즐거웠다. MBC가 몰락하는 것을 지켜봐야 한 것을 빼면 나의 해고자 생활에는 꽤 새롭고 신선한 체험들이 들어왔다. 무엇보다 조직이 나의 취재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할까를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가장 좋은 면이었다. MBC에서 일할 때는, 가장 시절이 좋을 때도 ‘그만 멈춰줬으면’하는 시선을 항상 느끼면서 살았다. 황우석이든, 검사와 스폰서든, 4대강이든 그런 시선 속에서 충돌과 타협을 거듭한 결과물이었다.

MBC에 있었다면 하기 어려운 것
그런 면에서 간첩조작 사건 취재는 MBC에 있었다면 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3년 동안 국정원을 내리 조지는 것을 허용할 방송사가 어디 있었겠는가. 다들 국정원 보고서를 두려워하는 판에. 유우성 씨 사건 등 간첩조작이 밝혀졌고 법원은 무죄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국정원은 본질적으로 바뀌지 않았다. 조작에 가담한 국정원 직원들 대부분이 선고유예를 받았다. 무죄보다도 더 받기 어렵다는. 조작된 증거를 법원에 낸 검사들은 정직 1개월을 받았다. 그들은 한 달 간 휴가를 즐긴 뒤 다시 현직으로 돌아갔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한계를 느꼈다. 그래서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동안 찍어 놓은 것에 새로운 취재를 더하면 나름대로 괜찮은 영화를 만들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러면 국정원 문제를 공론화할 수 있지 않을까?

영화 만들기는 제일 먼저 프로듀서를 영입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MBC 시사교양 피디를 하다가 일찍이 그만두고 독립한 김재환 씨는 이미 다큐멘터리 영화 3편을 만든 ‘중견’ 감독이었다. 그의 영화 <쿼바디스>에 내가 배우로 출연했을 때 김 감독은 “형님이 영화 만드시면 제가 프로듀싱해드릴게요”라고 했다. 나는 확실히 사람 복이 있다.

영화에 혼을 불어넣으려면 기존에 알려진 사건들만으로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오랫동안 탐문했지만 별 진전이 없던 간첩 자살 사건 취재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2011년 12월 한 탈북자가 국정원 합동신문센터에서 자살한 뒤 국정원이 ‘간첩이 자백한 뒤 자살했다’고 발표한 사건이다. 1970년대 중앙정보부에서 조사 받다 숨진 최종길 교수 사망사건과 비견될 만한 사건이 2011년에 일어난 것이다. 우리는 오랜 취재를 통해 국정원이 사망자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조작해 발표했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는 묘비도 없이 합동신문센터 근처 공설묘지에 묻혀 있었다. 그가 국정원 발표대로 간첩이었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그가 오래 머물던 중국 접경 지역은 물론 북한취재까지 했다. MBC에 있었다면 넘을 수 없었을 선을 넘어 취재했다. 행복했다.

영화 <자백>이 완성됐다. 과연 국정원을 타깃으로 하는 영화를 국내에서 상영할 수 있을까 걱정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해외 영화제부터 갔다 오라는 충고도 들었다. 그러나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받아줬다. 다큐멘터리상과 아시아영화진흥기구상, 2관왕이라는 영예까지 줬다. 영화인들은 이 영화가 많은 관객을 만나기를 기원해줬다. 나머지는 우리 몫이다.

<PD수첩>을 할 수 있었으면 굳이 영화를 만들었을까
요즘은 스토리 펀딩으로 관객을 모으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어제 팟캐스트를 네 곳이나 갔다. 단골로 나오는 질문이 <PD수첩>을 할 수 있었으면 영화를 만들었겠냐’는 것이다. 물론 영화를 만드는 일은 그동안 해본 적이 없는 도전을 하는 것이고 힘들기도 즐겁기도 하다. 특히 관객이 가득 찬 영화관에서 내가 만든 영화를 어마어마하게 큰 스크린으로 보는 관객들 사이에 있는 느낌은 아주 좋다. TV가 주는 것보다 훨씬 깊은 체험을 서로 나누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만약 <PD수첩>을 계속 할 수 있었다면 영화를 만들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만드는 족족 천만 관객이 보게 할 수 있는데 왜 굳이 영화를 만들려 고생하겠는가.

방송이 제자리에 있었다면 지난 수년 동안 대한민국의 행로는 완전히 달랐을 것이다. 국정원 댓글 개입은 철저히 파헤쳐졌을 것이고 국정원은 개혁됐을 것이다. 개혁의 결과 간첩 조작은 아예 처음부터 시도되지 못했거나, 시도됐더라도 남의 나라 공문서를 위조하는 수준까지 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나는 방송이 매와 같은 눈으로 우리 사회를 감시하고 있었다면 세월호 참사와 같은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까지 한다. 설사 참사가 났더라도 이후의 상황이 지금처럼 엉망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방송은 스스로 바로 섬으로써 세상을 다시 정상으로 돌려놔야 한다. 그때까지 나는 영화감독으로 사는 것도 마다하지 않겠다.

Posted in 2016년 7.8월호, 격월간 방송기자, 해직언론인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