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2회 기획보도부문_’조세도피처로 간 한국인들 2016’_뉴스타파 이유정 기자

다시 또 조세도피처를 파헤치는 이유

 

지난해 7월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로부터 메일을 받았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예고하는메일이었다. 그리고 9월, 독일 뮌헨에 있는 일간지 쥐트도이체 차이퉁 본사에 세계 각국의 기자들이 모였다. 일명 ‘프로메테우스’ 프로젝트의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쥐트도이체 차이퉁이 조세도피처 관련 데이터를 입수했고 ICIJ에 국제 협업을 요청했다고 했다. 파나마 로펌인 모색 폰세카에서 유출된 조세도피처 자료는 2.6 테라바이트로 역대 최대 규모였다. 데이터 속에는 아이슬란드 총리,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최측근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의 작고한 부친 등이 조세도피처를 이용한 사실이 담겨있었다. 한국인은 과연 어떤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을지 기대가 커졌다.

ICIJ는 전체 데이터를 검색할 수 있는 서치 플랫폼을 만들었다. 구글 검색을 하듯 검색어를 입력하면 그 단어가 포함된 파일이 모두 검색 결과에 표시되는 형태였다. Korea(한국)로 검색했을 때 15,000 건이 넘는 파일이 검색 결과로 나왔다. 이후 데이터가 추가되면서 한국에 대한 검색 결과는 16.000 건 이상으로 늘어났다. 페이퍼 컴퍼니 설립 관련 문서, 이메일, 페이퍼 컴퍼니 소유주에 관한 정보 등 파일의 종류는 다양했다. 각각의 파일에 어떤 내용이 담겨있는지 알기 위해선 일일이 확인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16,000 건이 넘는 파일을 몇 달에 걸쳐 전수 조사했다. 그 결과 한국을 주소지로 기재한 한국인 195명을 발굴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었다. 2013년 ICIJ와 함께 ‘조세피난처의 한국인들’ 프로젝트를 진행했을 때 전두환 전 대통령의 아들 전재국 씨를 찾아냈는데, 당시 전 씨가 본인의 주거지 주소를 한국으로 기재하지 않은 탓에 어렵게 찾아냈던 기억이 떠올랐다. 모색 폰세카 데이터에서도 한국인 이름으로 보이지만 주소는 한국으로 해놓지 않은 사람들이 꽤 눈에 띄었다. 이런 경우 Korea로 나타나는 검색 결과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놓치지 않고 효과적으로 찾아낼 수 있을지 고민하다 한국인 이름에서 흔하게 쓰이는 글자들을 사용해 검색을 시작했다. Kim, Park, Lee, Jung, Hee 등… 그러다 Jae라는 글자로 검색을 했을 때 “Ro Jae Hun”이라는 이름이 버진 아일랜드에 설립된 3개의 페이퍼 컴퍼니의 이사이자 주주인 것으로 등장했다. 관련 문서를 추적해보니 “Ro Jae Hun”의 정체는 바로 노태우 전 대통령의 아들 노재헌 씨였다.

방대한 양의 조세도피처 데이터를 분석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했던 건 어떤 특별한 데이터 저널리즘 기법보다 결국 끈기와 집념이었다. 이는 취재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데이터에서 찾아낸 한국인들의 신원을 파악한 뒤 이들이 어떤 목적으로 페이퍼 컴퍼니를 만들었는지 확인해야 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취재진과 얘기하기를 거부하거나 피하기 일쑤였다, 이런 사람들의 해명을 어떻게든 듣기 위해 사무실, 혹은 집으로 찾아가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끈기와 집념이 필요한 일이었다. 노력 끝에 이들을 만나도 듣게 되는 건 대부분 철저한 거짓말과 부인이라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노재헌 씨 같은 경우 조세도피처에 페이퍼 컴퍼니를 사업 목적으로 만들었으나 여러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회사를 이용해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취재진은 홍콩 법인 등기부등본을 검색해 노재헌 씨와 연관된 홍콩 페이퍼 컴퍼니 7개를 추가로 발견하고, 이 중 2개는 노재헌 씨가 버진 아일랜드에 설립한 페이퍼 컴퍼니를 통해 간접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사실을 확인했다. 노재헌 씨가 버진 아일랜드에 회사를 설립한 이유 중 하나가 본인이 실소유주임을 숨긴 채 홍콩의 페이퍼 컴퍼니를 만들기 위해서였다고 보여지는 대목이다. 버진 아일랜드 페이퍼 컴퍼니를 만들기만 했을 뿐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는 노재헌 씨의 해명은 거짓으로 드러났다.

2013년 ‘조세피난처의 한국인들’ 이후 다시 조세도피처 문제를 취재하게 됐다. 이번에 느끼게 된 건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보다 은밀한 방법으로 조세도피처를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금융당국이 조세도피처에 대한 감시의 끈을 조일수록 사람들은 감시망을 피할 수 있는 더 비밀스러운 방법을 찾는다. 취재 과정에서 페이퍼 컴퍼니 설립 대행 업체로부터 2013년 이후 버진 아일랜드보다 세이셀이나 사모아 등 대중적으로 덜 알려진 조세도피처를 선호하는 경향이 커졌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는 비단 사회 최상위층에만 해당하는 얘기가 아니다. 목사, 자영업자, 중소기업 대표 등 사회 각계각층의 다양한 사람들이 조세도피처를 이용한다. 이번 ‘파나마 페이퍼스’ 보도가 여전히 만연한 조세도피처 문제를 근절하기 위한 근본 대책을 마련하는데 물꼬를 트는 역할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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