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로봇이 기자를 대체할까?_김대원 카카오 정책지원팀

로봇을 논하기에 앞서 모바일 시대 도래 후 ‘핫이슈’로 부상했던 인터랙티브 기사에 대한 국내 미디어의 전략을 살펴보자. 인터랙티브 기사는 텍스트 중심의 서사에서 탈피하여,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시·청각적 효과를 가미한 콘텐츠다. 2012년 12월 미국 뉴욕타임스가 스노우폴snowfall을 선보인 이후, 인터랙티브 기사는 새로운 뉴스 콘텐츠 방식의 대안으로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국내에서는 2014년 1월을 기점으로 신문사를 중심으로 봇물 터진 듯 쏟아졌다. 당시 필자는 아래와 같은 전망을 한 바 있다.1)

“인터랙티브 기사의 상시적 생산을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체계를 갖춰야 한다. 조직 구축에는 자금력이 소요된다. 이러한 변화를 감행하지 못하는 언론사를 중심으로 디지털 콘텐츠 생산을 위한 프로그램 이해 없이도 사진과 텍스트 배열만으로 간단하게 생산이 가능한 카드 뉴스card news 방식이 활성화될 것이다.”
2016년 현실은 어떠한가? 스노우폴처럼 깊이 있는 인터랙티브 기사를 찾긴 어렵다. 대신, 소셜네트워크 등의 온라인에서 스낵컬처snack culture로 소비되기 적당한 카드 뉴스만 범람하고 있다. 현재의 모습을 국내 미디어를 옹호하는 방향에서 설명하자면, 언론사가 심층적인 인터랙티브 뉴스를 만들기는 해야겠는데 지속적으로 만들 여력이 되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이 비용이 덜 들고 손쉬운 카드 뉴스에 집중한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반면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수지 타산 측면에서 카드 뉴스가 시쳇말로 ‘가성비’가 높다는 전략적 판단의 산물로 볼 수 있다. 결국 국내 언론 환경의 기술 도입은 그것이 저널리즘의 질質을 견인할 수 있는 능력보다는 경영활동 유지의 필요성에 의해 갈음된다.

이론적으로 로봇은 기자가 될 수 없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로봇이 기자를 대체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 대한 필자의 답은 이렇다. “온전한 대체는 절대 불가능하다.”
온라인에서 정보를 찾는 능력이 뛰어나지 않아서, 혹은 계산기처럼 셈을 빠르게 할 수 없어서 좋은 기자가 되지 못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IT 기기를 다루는 데 능통하고, 통계 프로그램을 자유자재로 쓰는 수습기자 30명과 현장 경력 10년의 기자 1명 가운데 당장 함께 일할 동료로 선택하라고 할 때, 기자 생활을 1년이라도 해 본 사람은 후자를 택할 것이다. 지식수준과 기자로서의 직무 능력 간 상관성이 유의하지 않음을 기자들은 몸으로 알고 있다. 동일한 소재라도 시간과 상황에 따라 헤드라인 뉴스가 될 수도 있고, 데스크에 의해 ‘킬kill’ 될 수도 있다. 이러한 차이를 이해하고, ‘미생’에 불과한 아이템을 ‘완생’으로 바꾸는 과정 속에 필요한 ‘판단’ 능력이 지식수준에 의해 보장되지 않는다.

이러한 주장을 반박하며 ‘로봇 역시 학습된 지식으로 통찰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주장의 논거로서 자주 언급되는 것이 미국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House of Cards’의 사례이다. 넷플릭스가 만든 이 드라마는 어떤 배우에 대중이 빠져들며, 어떤 대목에 시청자가 몰입하는지를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확인했고, 그것을 적용해 흥행에 성공했다고 평가된다.
그렇다면 책으로만 연애를 배워도 실전에 연애 고수가 될 수 있다고 가정해 보자. 빅데이터 분석의 결과 혹은 책에서 알려준 연애 지식을 각 상황에 연결하는 동물적인 판단을 로봇이 할 수 있을까? 물론, 기자 중에서도 이 판단을 잘 하는 기자는 많지 않다. 그러나 경험과 지식을 변주할 수 있는 사고 체계 측면에서 ‘인간’ 기자는 대체적으로 로봇보다 낫다. 로봇의 기계학습은 기본적으로 이진법 체계 하에서, 옳고 그름에 의해 지식을 축적하는 방식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로봇에게 정반합正反合의 변증법 사고는 불가능하다.

로봇의 기자 대체는 경영전략에 의해 좌우
세상은 변했다. 정통 저널리즘의 좋은 기사가 ‘병맛’ 느낌 나는 ‘짤방’보다 콘텐츠 경쟁력 측면에서 우월하다고 단언하기 어려워졌다. 매체 전반에 생존의 위기가 거세지는 환경이며, 극단적으로 말하면 저널리즘의 본령과 본연의 가치를 외치는 것에 공허한 메아리조차 없는 것이 오늘의 우리 언론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글의 품격보다는 글의 흥행성이 우선시되며, 그 콘텐츠를 만들어서 거둘 수 있는 이윤 추구를 우선하는 경영진의 전략이 강화된다.

인공지능 알파고가 ‘인간계’의 현역 바둑 제왕인 이세돌 9단에게 5판 중 4판을 이기며 일으킨 신드롬으로 로봇에 지적활동 능력에 대한 불신은 예전에 비해 크게 희석됐다. 프로야구, 증권 시황 등을 전하는 기사에서 지정된 형식에 맞춰 사실을 전달하는 능력자로서 로봇의 가치는 인정받고 있다. 단순 사실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기사가 유려流麗할 필요까지는 없다. 사건의 개괄적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요건만 채워 전달하면 된다. 즉, 로봇이 문장을 잘 쓸 필요는 없는 것이다. 변화된 미디어 환경 하에서 소비자들도 변했다. 다수의 소비자들은 긴 글을 꺼려한다. 한 줄, 혹은 소수의 단락만으로 된 뉴스 콘텐츠를 소비하고 싶어 한다. 미디어 레퍼토리가 모바일 중심으로 심화되는 현상은 이러한 경향성을 더욱 공고하게 만들고 있다.

요컨대, 로봇 기술에 대한 신뢰는 높아졌고, 생존의 위기는 심화되어 비용 구조의 변화가 요구되고, 다수의 소비자가 찾는 콘텐츠의 깊이는 얕아도 되는 국면이 됐다. 당신이 경영진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국내 신문사 경영진을 대상으로 한 필자의 연구2)에 따르면, 로봇 도입에 대한 다수 매체의 의사결정 구조는 다음과 같을 것으로 분석됐다. “소비자 반응 등 시장 환경이 우호적이고 경영 성과에 긍정적 기여를 한다면, 로봇을 도입할 것이며, 이 과정에서 기존 인력에 대한 인위적인 구조조정이 진행될 수 있다.”
미디어 콘텐츠 소비는 모바일 위주로 수렴되고 있다. 시장 내 칸막이가 없어지고, 신문·방송·통신·인터넷 기업까지 한데 뒤섞여 경쟁하는 구도로 미디어 환경이 변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방송사 경영진이 로봇 저널리즘을 바라보는 관점은 앞서 언급한 신문사 경영진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로봇이 기자를 대체할까? 로봇의 기자 대체는 저널리즘 본연의 가치를 추구하는 매체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다만 ‘대중에 의해 팔리는 뉴스’만을 좇는 매체에서 로봇의 기자 대체는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말랑말랑한 뉴스를 찾는 수요에만 영합하는 저널리즘이 우리 미디어 시장에서 심화된다면, 로봇의 기자 대체 속도는 생각 보다 빠르게 전개될 것이다. 이러한 구도 하에서 로봇은 저널리즘의 ‘파괴적 혁신’ 도구가 아니라, 혁신이란 미명 하에 침투할 ‘저널리즘 파괴자’가 될 것이다. 필자의 슬픈 예감이 이번에는 틀리기를 희망한다.

 

 


1) 김대원·박지은·우혜진·김성철(2015), 한국 언론의 인터랙티브 기사 도입의 의미와 가능성에 대한 연구, <한국 언론학보>, 59권 4호, 74-101. 원문의 구성 및 표현을 일부 수정하여, 큰따옴표에 인용했다.

 

Posted in 2016년 5.6월호, 격월간 방송기자, 특별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