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원내 1당의 몰락 : ‘기-승-전-선거’_YTN 강정규 기자

起: ‘배신의 정치’
“배신의 정치는 반드시 선거에서 국민들께서 심판을 해 주셔야 할 것입니다.”
대통령의 노기 어린 목소리가 전파를 타고 전국으로 방송됐다. 국회 새누리당 원내대표실에도 같은 화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당시 원내대표실 앞을 지키고 있던 기자들도 TV 앞에 모여들었다. 대통령의 서슬에 다들 혀를 내둘렀다. 원고의 일부를 대통령이 손수 고쳤다는 말도 나왔다. 대체 무엇이 ‘역린’을 건드린 걸까?

발단은 ‘국회법 개정안’이었다. 정부의 세월호법 시행령이 특별조사위원회 활동을 무력화하고 있다고 판단한 야당은 국회법 개정을 통해 이를 바로잡으려고 했다. 청와대는 삼권분립 위반이라며 즉각 반발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결국 거부권을 행사했다. 그리고 개정안 처리에 합의해 준 원내지도부를 겨냥해 ‘배신의 정치’라고 매섭게 몰아붙였다. 유승민 원내대표에 대한 친박계 의원들의 집요한 사퇴 압박도 이때부터 시작됐다. 유승민은 버텼다. 끝내 물러날 때도 동료 의원들의 사퇴 권고를 받아들이는 형식을 빌렸다. 퇴임사로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헌법 1조 1항의 지엄한 가치를 지키고 싶었다고 말했다. 행정부의 수반이 입법부에서 활동하는 여당 원내대표를 내치는 것은 헌법 정신에 어긋난다는 완곡한 항의였다.

‘국회법 파동’이라고도 불린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총선을 앞두고 여당 내 친박계와 비박계 간 권력투쟁의 신호탄이 됐다. 2013년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로 들어간 뒤, 당권은 비박계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2014년 7월 전당대회에서 재보선으로 살아 돌아온 비박계 김무성 의원이 친박계의 좌장 서청원 의원을 누르고 당대표로 선출됐고, 이듬해 치러진 원내대표 경선마저 비박계인 유승민 의원의 승리로 끝났다. 앞서 치러진 서울시장과 국회의장 후보 경선에서도 당원들은 비박계의 손을 들어줬다. 위기를 느낀 친박계는 뒤집기에 나섰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그 지렛대가 됐다.

承: 공천 파동
다음 수순은 공천권 다툼이었다. 친박계가 원내에서의 수적 열세를 극복하려면 선거를 통해 확실한 내 편을 국회에 입성시켜야 했다. 그 사전 작업이 당선 가능성이 높은 지역에 공천을 주는 것이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쇄신을 명분으로 기성 정치인을 쳐내고 (cut off) 새 인물을 꽂아 넣기도 한다. 이른바 ‘전략공천’이다. 비박계인 김무성 대표는 전략공천은 없다고 못 박았다.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주겠다며 ‘국민공천제’로 방어에 나섰다. 여론 조사 경선을 통해 국민의 선택을 받은 후보를 공천하는 형식이었지만, 결과적으론 ‘컷오프’로부터 현역 의원들을 보호하는 장치가 됐다. 여론 조사에선 아무래도 인지도가 높은 현역 의원이 유리했기 때문이다.

친박과 비박의 수 싸움은 치열하게 전개됐다. 현역 컷오프 명단인 이른바 ‘공천 살생부’가 당 대표에 의해 공론화되기도 했고, 친박 실세 윤상현 의원의 막말 전화 녹취가 언론에 공개돼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하이라이트는 ‘옥새 투쟁’이었다. 김무성 대표는 후보 등록 마감을 하루 앞두고 마지막 남은 6곳의 공천안에 도장을 찍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상향식 공천 원칙에 어긋난다는 이유였다. 그리고는 고향인 부산으로 내려가 버렸다. 원유철 원내대표가 부랴부랴 부산으로 쫓아갔다. 시간은 김무성 대표의 편이었다. 이대로 후보 등록 마감 시간을 넘기면 6명의 친박 후보들은 무소속 출마 기회조차 박탈당할 처지였다. 친박과의 공천 싸움 내내 수세에 몰렸던 김무성 대표 나름의 카운터펀치였다. 이밖에도 박근혜 대통령의 사진을 놓고 벌어진 ‘존영 반납 분쟁’ 등 잡음은 끊이지 않았다. 모두 친박과 비박이 진흙탕에서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빚어낸 촌극이었다.

공천 실무를 담당할 공천관리 위원장은 결국 친박계 이한구 의원이 맡게 됐다. 국민공천제는 유명무실화되는 듯 했다. 뜨거운 감자는 이번에도 유승민 의원이었다. 공천에서 탈락시키자니, 수도권 중도 보수층이 눈에 밟혔다. 자칫 전체 선거판에 재를 뿌릴 수도 있었다. 공천위와 최고위는 서로에게 결정을 떠넘기며 시간을 끌었다. 스스로 나가라는 쪽과 차라리 내치라는 쪽이 맞서는 상황이 재연됐다. 맞다. 지난해 거부권 정국이다. 이번에도 버티던 유승민은 무소속 후보 등록을 위한 탈당 시한을 한 시간 남짓 앞두고 탈당을 선언했다. ‘유승민계’로 분류되던 의원들도 우수수 공천에서 떨어졌다. 박근혜 정부 초기 복지 공약 이행 문제에 책임을 지고 스스로 물러났던 진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청와대 정무특보를 던지고 나왔던 주호영 의원 등도 같은 처지가 됐다.

 

轉: 사죄 유세
대구의 친박 후보들이 유권자들 앞에 무릎을 꿇었다. 머리가 땅에 닿을 만큼 넙죽 엎드렸다. 한 후보는 종아리를 걷고 시민들에게 회초리를 맞겠다는 시늉까지 했다. 여론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당 지도부는 공천 과정에서 추태를 보여 죄송하다고 앞으로 잘하겠다고 사죄와 읍소를 이어갔다. 보수층 결집을 노린 엄살 작전이란 말이 나올 만큼 비굴했다. 어제까지 서로 으르렁대던 친박과 비박 의원들은 손을 맞잡고 화합의 노래를 불렀다. 반전도 이만한 반전이 없었다. 공식 선거운동에 돌입하면서 권력을 얻기 위한 방식이 밀실에서 광장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생긴 변화다.

이번 총선에 투입된 예산은 3270억 원, 선거 관리 인력도 34만 명이나 됐다. 개별 후보들의 법정 선거 비용만 평균 1억 7천만 원, 여기에 선거사무소 임대료나 선거 기탁금, 경선 비용을 비롯해 예비후보 시절에 쓴 돈은 별도다. ‘50당 30락’은 이제 옛말이라지만, 여전히 선거 한번 치르는데 5~6억 원은 필요하다고 한다. 20대 총선에 공식 등록한 후보자만 944명. 천문학적인 돈과 노력이 동원되는 곳이 선거판이다. 그나마 당선이라도 되면 다행이지만, 낙선하면 비참해진다. 정치 낭인으로 4년을 사는 동안 마땅한 벌이라도 없으면 재기는 물론 생계조차 어렵다. 한 국회의원은 선거철마다 피가 마른다고 했다.

정치인들에게 권력은 국민이 바라는 이상을 대신 구현해 나가는 수단이 돼야 한다. 그러나 현실 정치에선 주객이 뒤바뀌는 경우가 많다. 국회의원의 의정활동이 다음 선거를 위한 요식행위가 되는 것이 대표적이다. 하물며 선거를 코앞에 둔 시점이랴. 서민 코스프레의 단골 장소인 재래시장 방문, 떡볶이·어묵 먹고 생선 주무르기. 혹자는 허리를 굽히는 각도가 당락을 결정한다고도 하고, 같은 시간 동안 더 많은 사람과 악수를 나눌 수 있는 비법이 회자되기도 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선 편법이나 흑색선전 등 반칙도 서슴지 않는다. 가장 큰 문제는 알맹이는 없고 기교만 있다는 점이다. 정치꾼은 다음 선거를 걱정하고 정치가는 다음 세대를 고민한다는데, 권력을 달라고 조르는 정치꾼은 보여도 자신에게 왜 권력이 필요한지 설득하는 정치가는 보이지 않는다. 유독 이번 선거가 그랬다. 정책 이슈가 실종된 선거로 평가받는다. 해를 넘겨 진행된 여야의 선거구 획정 협상과 각 당내 공천 싸움에 시간과 노력을 다 쏟아부은 탓이다. 여야를 불문한 사죄 유세는 빈 껍질뿐인 우리 정치권의 민낯을 여실히 보여줬다.

結: 선거
새누리당 선거 상황실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당 지도부는 하나둘씩 자리를 떴다. 대참패였다. 목표했던 과반은 고사하고, 원내 1당의 지위마저 잃었다. 집권 여당이 2당으로 전락한 건 헌정사상 처음이었다. 특히 철옹성 같던 대구의 13개 선거구 가운데 4곳이 새누리당을 등졌다. 그중에서도 2곳은 야권 후보가 당선됐다. ‘일여다야’ 구도로 쉽게 이길 수도 있던 선거였다. 무엇이 ‘표심’을 건드린 걸까?
중국공산당의 아버지 격인 마오쩌둥은 권력이 총구에서 나온다고 믿었다. 그럴지도 모른다. 우리도 불과 얼마 전까지 그런 정치 환경에 놓여 있었다. 이제는 어느 정도 형식적 민주절차를 갖췄다곤 하지만,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권력의 속성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지난 1년 동안 여의도를 취재하면서 지켜본 것도 정글 같은 권력의 생태계였다. 그러나 이번 선거 결과는 악다구니 같던 권력 투쟁을 모두 부질없게 만들었다. 유권자들은 투표를 통해 권력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 일깨워줬다. 정치권이 국민으로부터 잠시 빌린 권력을 사유화하고 아귀다툼하느라 정작 본분을 망각한 것에 대한 심판이다.

앞으로 4년 동안 막중한 권한을 갖고 나라를 운영할 대표자들은 투표함에 차곡차곡 쌓인 민심에 의해 탄생했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1조 2항의 원칙은 선거를 통해 실현됐다. 절차적 민주주의를 가볍게 여길 수 없는 이유다. 비록 4년에 한 번 반짝 피고 질지언정, 선거가 민주주의 꽃은 꽃이다. 막연한 정치 혐오나 무관심은 ‘정글정치’를 되살아나게 하는 온상이 될 것이다. ‘기-승-전’까지 권력 다툼이 통할지 몰라도 결론은 선거라는 것을 정치권에 확실히 보여줘야 한다. 가장 쉽고도 중요한 건 투표 참여다. 정치는 복잡해도 투표는 간단하지 않은가.

Posted in 2016년 5.6월호, 격월간 방송기자, 현장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