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한국형 인공지능’ 그렇게 빨리?_SBS 임찬종 기자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국 이후 ‘인공지능’은 익숙한 단어가 됐다. 컴퓨터 과학자가 아니면 이해하기 어려운 딥러닝Deep learning의 개념을 설명하는 기사가 쏟아지고, 인공지능 때문에 사라지는 직업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 이어졌다. 다른 나라는 인공지능 개발에 앞서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뒤처지고 있다는 지적도 빠지지 않았다.

정부 “3-4년 안에 세계수준 따라잡겠다.”
정부는 빠르게 대응했다.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국이 끝난 지 1주일이 채 지나지 않는 3월 17일, 미래창조과학부는 ‘지능정보산업 발전전략’을 발표했다. 인공지능을 포함한 지능정보 산업 발전을 위해 앞으로 5년 동안 1조원을 투자하고, 5개 민간기업과 공동으로 인공지능 연구소를 설립하겠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2019년~2020년까지 인공지능 각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하겠다는 구체적 목표도 밝혔다.

기자회견 현장에서부터 질문이 쏟아졌다. 갑자기 불거진 1조 원이라는 숫자에 대한 질문이 많았다. 마치 인공지능 개발을 위해 정부가 새로이 1조 원이나 되는 돈을 만들어 낸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는 “(인공지능을 포함한) 지능정보 산업 관련 예산으로 정부가 올해 확보하고 있는 예산이 1,398억 원 있다. 여기에 기획재정부와 합의도 있었기 때문에 (예산 확보가 추가로 가능하다고 판단해) 5년 동안 1조 원을 투자할 것이라고 발표했다.”라고 말했다. 새로운 예산이 아니고 이미 쓰고 있는 예산의 이름표를 살짝 바꿨고, 앞으로 더 확보할 것이란 설명이었다. 그렇다면 마치 새로운 투자계획을 발표하는 것처럼 기자회견을 하는 것은 조금 과장이 아닌가 싶었다.

특허건수 따라잡는 데만 71년
마치 3-4년 안에 인공지능 분야에서 세계 정상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표 내용도 의심스러웠다 [그림 1] 모든 공학 기술 발전의 가장 중요한 지표는 ‘특허’다. 우리나라가 지난 10년 동안 출원한 특허는 2,638건이다. 반면 인공지능 선진국으로 꼽히는 미국은 24,054건, 일본은 4,208건이다. 우리나라의 9.1배와 1.6배 수준이다. 미국 과학자들이 단 한 건의 특허도 출원하지 않는다 해도, 우리나라에서 지난해 출원된 수준(301건)이라면 미국을 따라잡는데 71년이 넘게 걸린다. 3-4년 안에 빠르게 따라잡을 수 있는 과제가 아니다.

과거 사례를 찾아보니 정부가 오랜 기간 일관적으로 계획을 추진할지도 의심스러웠다. 정부 산하 연구기관인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는 1990년부터 7년 동안 9백억 원을 들여 한국어를 알아듣는 컴퓨터를 개발하겠다는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그러나 성과가 나지 않자 정부 지원이 끊어졌고 연구도 중단됐다. 당시 인공지능을 전공했던 연구자들은 생업을 위해 어렵게 전공을 바꿔야 했다. 인공지능 분야에서만 이런 일이 벌어진 것도 아니다. 한국형 닌텐도 개발 사업, 한국형 리눅스 개발 등 정부가 야심 차게 발표했지만 결국에는 흐지부지된 개발 사업도 부지기수다.

현실성 없는 계획은 신뢰만 무너뜨려
인공지능은 분명히 지금 가장 중요한 정보 기술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대중적 관심사로 떠오른 직후에 발표된 거창한 계획과 무리하고 성급해 보이는 목표는 오히려 정책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릴 우려가 있다. 정부 지원금을 타내기 위해 ‘인공지능’이란 단어를 급하게 제목에 추가한 부실한 연구 성과가 속출할 가능성도 있다.

알파고를 공개하기 전까지 구글은 인공지능 분야 기업 인수에만 15년 동안 33조 7천 억원을 썼다고 한다. 3-4년 안에 그렇게 쉽게 따라잡을 수 있는 기술이라면 구글이 그 오랜 시간 동안 그 많은 돈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조금 더 현실적이고, 조금 더 성숙된 정책이었다면 좋았을 것이란 아쉬움을 지우기 어렵다.

Posted in 2016년 5.6월호, 격월간 방송기자, 현장에서.